[여행] 속세의 근심을 씻어내는 천년 숲, 오대산 선재길 (6월20일-시사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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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6-06-20 11:17 조회7,946회 댓글0건본문
강원도 평창은 산과 강이 어우러진 천혜의 고장이다. 오대산은 '삼국유사'를 쓴 일연스님이 ‘불법이 길이 번창할 것’이라 한 불교의 성지이자, 나무의 성지다. 오래되고 기품 있는 전나무, 자작나무, 신갈나무 등은 오대산의 여름 풍경을 더욱 깊고 묵직하게 한다. 오대산 선재길은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계곡을 따라 이어진다. 1400여 년 전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한 신라 자장율사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적멸보궁에 모시기 위해 지나간 유서 깊은 길이다. 호젓한 숲길을 한 걸음 한 걸음 걷다 보면 속세의 근심이 청정 계곡에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다.
일주문 안의 나무들이 어서 오라는 듯 손짓한다. 길 양편으로 쭉쭉 뻗은 전나무가 1000그루도 넘는다. 보기도 좋지만 전나무 특유의 알싸한 향이 온몸을 정화한다. 성황당을 지나면 쓰러진 전나무가 보인다. 속이 텅 빈 나무 일부가 서 있고, 나머지 몸체는 편안하게 누웠다. 수령이 약 600년으로, 2006년 쓰러지기까지 숲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였다고 한다. 전나무 숲길이 끝나면 월정사 경내로 들어선다. 월정사는 643년 자장율사가 창건한 천년 고찰이지만, 한국전쟁 때 모조리 불타 오래된 건물이 없다. 다행히 적광전 앞에 팔각구층석탑이 남았다. 탑 앞에는 두 손을 모아 쥐고 공양하는 자세로 무릎을 꿇은 석조보살좌상이 있는데, 살짝 미소 짓는 모습이 매력적이다.
월정사가 끝나는 지점에 선재길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다. 선재길은 오대산이 배출한 방한암 스님과 탄허 스님이 오간 구도의 길이자, 깨달음의 길이다. 선재는 화엄경의 선재동자에서 이름을 따왔다. 호젓한 오솔길 옆으로 오대천 계곡이 재잘재잘 흐르는 소리가 정겹다. 징검다리를 건너면 선재길에서 가장 수려한 계곡이 펼쳐진다. 설악산처럼 반질반질한 암반이 흐르는 물줄기와 어우러진다. 암반에 주저앉아 손을 씻는다. 시원하고 촉감이 좋다. 내 안의 번뇌가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다.
전설에 따르면, 세조가 목욕할 때 마침 가까운 곳에 동자승이 있었다. 세조는 동자승을 불러 등을 밀어달라 했고, 동자승은 열심히 등을 밀었다. 흡족한 세조는 장난기가 발동해 “어디 가서 왕의 등을 밀었다고 얘기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자 돌아오는 대답이 걸작이다. “왕께서도 문수보살이 등을 밀어줬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문수보살이 등을 밀어준 덕분에 세조는 피부병이 다 나았고, 이를 고맙게 여겨 상원사에 문수동자상을 세웠다고 한다. 1984년 문수동자상을 문화재로 지정하려고 조사하던 중, 세조가 입은 것으로 추정되는 저고리와 다라니경 등 많은 복장 유물이 발견됐다. 문수전 안 문수보살상에 인사를 올리며 선재길 탐방을 마무리한다.
선재길이 오대산의 그윽한 숲길이라면, 백룡동굴은 백운산의 동굴 속을 탐험하는 길이다. 정선아리랑 곡조처럼 구불구불 내려온 동강이 잠깐 평창 땅에 발을 담그는 지점에 백룡동굴이 자리한다. 동굴 체험은 750m 들어갔다가 돌아 나오며, 1시간 30분쯤 걸린다. 먼저 안내소에서 탐사용 옷으로 갈아입는다. 랜턴이 달린 헬멧, 장갑과 장화 등으로 무장하니 탐험가가 된 기분이다. 강원도 사투리가 구수한 가이드와 함께 보트를 타고 백룡동굴 입구에서 내린다. 잠깐이지만 배를 타고 동강과 함께 흐르는 맛이 기막히다.
웅덩이를 지나면 빛은 완전히 사라진다. 백룡동굴은 훼손을 막기 위해 조명을 아예 설치하지 않았다. 배를 바닥에 깔고 기어 ‘개구멍’을 통과하자, 비로소 백룡동굴의 진면목이 펼쳐진다. ‘신의 손’이란 별명이 붙은 대형 종유석, 피사의 사탑처럼 생긴 석순, 천장에 길게 형성된 베이컨 시트는 일명 만리장성이라고 한다. 석순이 1mm 자라려면 1년이 걸린다고 하니, 동굴 안에서 인간의 존재는 참으로 하찮다. *기사원문보기 http://www.sisaweek.com/news/articleView.html?idxno=722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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