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보살 성산에 들어 부처님 가르침 새기고 신심 다지다 (8월10일-법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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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6-08-09 11:58 조회7,824회 댓글0건본문
▲ 문수보살의 성산인 오대산을 찾은 법보신문 삼국유사 순례단이 경주 성덕대왕신종과 더불어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 통일신라 범종인 상원사 동종을 바라보고 있다. |
“나라 안의 명산 중에서도 이곳이 가장 좋은 곳이니 불법(佛法)이 길이 번창할 곳이다.”
옛사람들이 명산 중 명산이요
불법 길이 번창할 곳이라 감탄
자장 스님이 불사리 봉안하고
신라 보천·효명 왕자 수행하며
문수보살 친견하고 예경·공양
본찰 월정사에서 상원사 거쳐
보궁 수호 사자암·적멸보궁까지
산중 전체가 성지이자 문화재
옛사람들은 이곳의 산세와 지리를 보고 이처럼 감탄했다. 강원도 평창군과 홍천군, 그리고 강릉시에 걸쳐 있는 오대산. 높이 1563m의 비로봉을 중심으로 호령봉, 상왕봉, 두로봉, 동대산 등의 고봉들이 한 뼘 두 뼘 높이를 달리한 채 줄을 이어 섰다. 가운데의 중대를 중심으로 동대, 서대, 남대, 북대가 오목하게 원을 그린 모습을 하고 있다. 그래서 다섯 개의 연꽃잎에 싸인 연심(蓮心)같은 산세라 하여 오대산으로 불린다.
“계를 지키고 하루를 살지언정, 계를 파하고 백 년을 살고 싶지 않다”며 선덕여왕의 부름을 거절했던 자장 스님이 마침내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의 가르침을 듣고 귀국한 후, 다시 문수보살을 친견하기 위해 7일간 정진하면서 문수보살의 성지가 된 곳이 바로 강원도 오대산이다.
▲ 오대산 정기가 모인 곳에 고요하게 들어앉은 월정사를 대표하는 문화재 팔각구층탑 앞에 선 순례단. |
법보신문 삼국유사 순례단은 7월23일 옛사람들이 “불법이 길이 번창할 곳”이라 감탄했던 오대산을 찾았다.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이어지는 10㎞의 계곡에서 만날 수 있는 전나무, 고산식물, 잡목들로 우거진 숲을 차창으로 바라보며 산을 올라 상원사에 먼저 발을 디뎠다. 상원사는 신라 성덕왕 4년(705)에 보천과 효명 두 왕자에 의해 오대산 중대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때의 이름이 진여원(眞如院) 이었다. 자장 스님이 개산한 뒤로 오대산이 불교 성지로서 그 이름을 빛내면서 마침내 오류성중(五類聖衆), 즉 다섯의 성인들이 머무는 곳으로 신앙화되기 시작하던 즈음이다. 이를 놓고 ‘삼국유사’에서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신라 신문왕의 아들 보천태자는 아우 효명과 더불어 저마다 일천 명을 거느리고 성오평(省烏坪)에 이르러 여러 날 놀다가 태화(太和) 원년(元年)에 형제가 함께 오대산으로 들어갔다. 형 보천태자는 오대산 중대 남쪽 밑 진여원 터 아래 푸른 연꽃이 핀 것을 보고 그곳에 풀로 암자를 짓고 살았으며, 아우 효명은 북대 남쪽 산 끝에 푸른 연꽃이 핀 것을 보고 그곳에 풀로 암자를 짓고 살았다. 두 사람은 함께 예배·염불하면서 수행했고, 오대에 나아가 공경하며 참배하던 중 오만의 보살을 친견한 뒤로 날마다 이른 아침에 차를 달여 일만의 문수보살에게 공양했다.”
순례단은 상원사에 도착해 문수보살의 화현으로 세조의 피부병을 치료했다는 전설에 따라 만들어졌다는 ‘상원사목조문수동자상’을 마주했다. 양쪽으로 머리를 묶은 얼굴은 천진난만 그 자체였다. 동국대 불교사회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인 문무왕 박사는 “고려 후기의 단아하고 안정감 있는 불상양식을 계승했으며, 조선 초기 왕실 발원으로 이어진 세련되고 아름다운 동자상으로 재현한 문수동자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가치 때문에 국보 제221호로 지정됐다.
▲ 자장 스님이 부처님 사리를 모신 적멸보궁 앞에서 손을 모아 예배하며 가르침을 구하고 마음에 새겼다. |
문수동자를 만나고 돌아서면 그 유명한 상원사 동종(국보 제36호)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경주 성덕대왕신종과 더불어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 통일신라시대 범종 중 하나다. 구름 위에서 무릎을 꿇고 하늘을 날며 악기를 연주하는 아름다운 주악비천상이 새겨진 몸체가 인상적이다. 문 박사는 “상원사 종에서 볼 수 있는 음통, 안으로 오므라든 종신형, 상대·하대 네 곳에 있는 유곽의 구조적인 특징은 한국종의 전형이 되어 양식적인 변천과정을 거치면서 이후의 모든 종에 계승된다”고 이 종의 중요성을 알려주며 종 전체 모습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국보 제36호 동종은 유리관으로 둘러싸여 있어 약간의 아쉬움을 남겼다.
상원사에서 적멸보궁으로 길을 잡아 오르면 숨이 턱에 찰 때쯤 사자암에 닿는다. 층층이 쌓아 올린 듯한 절 구조가 특이하다. 좁은 공간에 필요한 것들을 갖추기 위해 지혜를 펼친 건축물이다. ‘삼국유사’에서는 “매일 새벽마다 문수보살이 진여원, 즉 지금의 상원에 이르러 36가지의 형상으로 변하여 나타났다”고 전하고 있다. 문수보살은 사자를 타고 다녔다고 했다. 그러니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오대산 중대에 사자암이 선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사자암 역시 보천·효명에 의해 첫 모습을 보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적멸보궁을 수호하는 사자암 비로전에는 비로자나부처님을 중심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협시보살로 있다. 힘겹게 땀 흘리며 보궁으로 향하던 순례단의 발걸음은 사자암에서 멈췄고, 단원들은 비로자나부처님 앞에 손 모으고 무릎 꿇어 예배했다. 그 마음 하나하나가 그 옛날 보천과 효명이 오만의 보살을 친견하고 일만의 문수보살에게 공양했던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자암을 나서면 바로 적멸보궁 오르는 길이다. 오대산 산세에서 적멸보궁의 위치는 용의 머리, 그리고 그 아래 용의 눈에 해당하는 곳에 샘이 있다. 용안수다. 용안수를 지나 계단을 오르고 또 오르자 마침내 적멸보궁이 나타났다. 이곳은 막 승천하려는 용의 정수리 부분으로 천하의 명당으로 불린다. 자장 스님이 사리를 모신 후 1370년을 훌쩍 넘겼다. 그 긴 세월 수없이 많은 구도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을 터다.
▲ 순례단원들은 적멸보궁을 수호하는 사자암 비로전에 들어 불보살 전에 공양 올리며 신심을 다졌다. |
매월 한 차례씩 일연 스님이 기록으로 남긴 옛 성지를 찾아 나선 순례단도 이날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힘겹게 찾은 보궁에서 부처님께 가르침을 청했다. 그 청에 대한 부처님의 응답은 저마다의 가슴에 새겨졌을 것이다.
그렇게 보궁을 참배하며 부처님의 가르침과 자장 스님의 신심을 되새긴 순례단은 다시 월정사로 향했다. 오대산은 문수보살의 성산(聖山)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산 전체가 불교성지다. 그리고 월정사는 산내 암자들을 아우르는 본찰이라 할 수 있다.
월정사에 들어서면 국보 제48호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이 참배객을 맞는다. 고려 전기에 조성된 탑으로 기단·탑신·지붕돌이 모두 8각이다. 2단의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9층 탑신을 올린 뒤 머리장식을 얹어 마무리했다. 그리고 이 탑을 향해 오른쪽 무릎을 꿇고 왼 다리를 세워 탑에 공양하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 보살상이 있다. 머리에 높다란 관을 쓰고 있으며 갸름하면서도 복스러운 얼굴에는 만면에 미소가 어려 있다. 보물 제139호인 석조보살좌상의 모형이다. 실물은 바로 옆 월정사 성보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다.
문수보살의 성산 오대산의 정기가 모인 곳에 고요하게 들어앉은 월정사는 사시사철 푸른 침엽수림에 둘러싸여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띠는 곳이다. 순례단은 여기서 만면에 미소를 가득 머금은 보살상의 배웅을 받으며 전나무 숲길을 따라 오대산문을 나섰다. 문수보살의 사자가 되어 거친 세간에 따뜻함을 전하겠다는 다짐을 했음도 물론이다.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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