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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이 후두둑, 나 아닌 내가 나를 본다(7월6일-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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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6-07-06 11:31 조회7,6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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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1.jpg» 이길우 선임기자가 삭발을 하고 염의를 입은 뒤 오대산 적멸보궁을 참배했다. 삭발은 두 단계로 진행된다. 먼저 이발기로 긴 머리를 잘라내고, 면도기로 정리한다. 삭발하기 전 행자는 삭발해주는 스님께 삼배로 예의를 표한다.

대학시절 무작정 지리산 절로 갔다
출가를 꿈꾸고 가족 몰래
 
새벽 절 앞에서 발길을 돌렸다
그렇게 끝났다, 용기가 없어
 
종교담당기자로 다시 불문 앞에 섰다
20대부터 60대까지 47명 
이름도 나이도 고향도 묻지 않는다
 
월정사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
삼보일배로 1㎞ 오체투지
무릎이 까이고, 허리가 비명을 지른다
 
계율과 귀의의 삼귀의계를 받고
팔뚝의 살갗을 태우는 연비를 했다
 
나흘만에 집에 오니 딸이 묻는다
“누구…세요”




부드럽다. 성능 좋은 이발기의 경쾌한 기계음이 뒤통수의 감각을 깨운다. 후둑후둑 하얀 세숫대야에 떨어진다. 검은 머리칼이다. 나의 일부였다. 고개를 숙인 채 자세히 본다. 염색한 뒤 자란 머리칼은 하얗다. 남들을 속인 흔적이다. 젊게 보이려고 독한 염색약을 바르곤 했다. 이발기를 움직이는 스님의 손놀림이 빨라지며 쌓이는 머리카락이 많아진다. 남들은 머리카락이 잘려 나갈 때 울었다고 하던데…. 그런 생각을 하자 순간 울컥한다. 시야의 머리카락이 흐려진다. 눈물에 반사되는 머리카락은 아름답다. 아니다. 지금은 회한의 시간이어야 한다. 
 내 머리카락이 잘려 나가는 순간, 나는 지난 세월의 잘못을 뉘우쳐야 한다. ‘어디부터 뉘우쳐야 하나?’ ‘어떤 죄부터 빌어야 하나?’ 하는 순간, “자 이제, 고개를 드세요”라고 스님이 말한다. 젊은 스님이다. 나의 머리통을 만지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저 스님은 언제, 무슨 생각으로 출가를 했을까? 순간순간 잡념이 파고든다. 집중하자. 두 손으로 받아든 세숫대야엔 나의 머리카락이 수북이 쌓여 있다. 나와 분리된 머리칼은 이미 나의 것이 아니다. 다시 붙일 수도 없다. 
 나에겐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아니 일어날까? 슬픔과 번민은 사라질까? 무엇에도 지배되지 않는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을까? 세속적인 욕망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불교에선 머리카락을 무명초라고 한다. 어리석은 풀이란 뜻이다. 머리카락을 없앴으니 어리석음에서 벗어났을까? 아니다. 풀은 계속 자라니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휴4.jpg» 이길우 선임기자가 팔뚝에 뜸으로 향을 피워 연비를 하고 합장 기도를 드린다.
 

 어리석은 풀이란 뜻의 무명초
 멍하니 서 있는 나는 다른 스님 앞으로 옮겨진다. 마치 처음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줄을 서는 아이처럼 나의 몸은 부자연스럽다. 다시 무릎을 꿇었다. 고개를 숙였다. 머리엔 하얀 면도크림이 듬뿍 발라진다. ‘쓱쓱’ 면도날이 머리카락이 없어진 두피를 좌우로 지나간다. 생전 처음 느끼는 감각이다. 태어나서 머리를 면도해본 적이 없다. 맨살을 처음 드러내는 머리 피부가 궁금해진다. 스님의 면도날은 정수리부터 목 뒤까지 골고루 마지막 남아 있는 검은 머리카락의 흔적을 없앤다. 궁금해진다. 면도를 한 머리의 모양이. 
 스님이 부드럽게 이야기한다. “대야의 물을 손바닥에 묻혀 머리에 바르세요.” 비구니 스님이다. 그래서 더욱 면도날이 부드럽게 피부를 활강했나 보다. 고개를 숙인 채 물을 묻힌 손바닥을 머리에 댔다. 전혀 새로운 느낌이다. 처음 만져보는 나의 두피 감각이다. 두 손에 가득 찬 머리통은 아직 군데군데 남아 있는 덜 깎인 머리카락 밑동의 저항을 뇌에 전해준다. 마무리 면도날의 느낌이 아쉽다. “자! 이제 세면장에 가서 씻으세요.”
 감사의 합장을 하고, 면도의 흔적을 담은 세숫대야를 들고 세면장에 간다. 비누칠을 한 손을 머리에 댄다. 머리카락은 없고, 그냥 피부만 있다. 그래도 비누칠을 정성껏 한다. 김이 서린 거울을 바라본다. “헉, 넌 누구냐?” 처음 보는 낯선 얼굴이다. 자세히 보니 조금은 낯이 익다. 중학교 시절의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얼굴에 주름이 생겼다. 못나 보인다. 세월의 흔적이니 그냥 봐줘야 한다. 자꾸 두 손으로 머리통을 매만져본다. 스킨도 발라본다. 형광등 아래 빛이 난다.
 삭발식을 하기 전 학장 스님이 법당을 우렁차게 울리며 이렇게 외쳤다. “보전에 주인공이 꿈만 꾸더니, 무명초 몇 해를 무성했던고. 금강보검 번쩍 깎아버리니, 무한광명이 대천세계 비추네.” 부처님이 출가해 스스로 삭발하면서 읊은 게송이다. ‘금강보검’과 ‘무한광명’이란 단어가 귀에 쏙 들어왔다. 과연 내 머리에 반사된 빛이 무엇이라도 비출 수 있을까? 아! 다시 잡념이다.

 결혼 한 달 앞둔 20대 여성도
 지난 2일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에서 진행된 단기출가학교 삭발식에 참가한 것은 출가에 대한 ‘로망’ 때문일 것이다. 아니, 그것은 젊은 시절 못 이룬 아쉬움을 풀기 위한 것이었다. 대학 시절, 출가를 꿈꾸고 가족들 몰래 결행한 적이 있다. 모든 것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어서 택한 길이었다. 막연했다. 그냥 지리산 절을 향해 밤차를 탔다. 밤 기차의 차창에 흘러가는 민가의 불빛을 보며 진한 소주를 마셨다. 새벽에 도착한 절 앞에서 발길을 돌렸다. 용기가 안 났다. 귀가하니 가족 누구도 밤새 무엇하고 오느냐고 물어보지 않는다. 그렇게 젊은 시절 한여름밤의 출가는 실패했다.
 23일간 진행되는 이번 단기출가에 모두 47명이 참가했다. 20대 젊은이로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참가자들이다. 이름, 나이, 고향을 묻지 않는다. 그냥 행자다. 대화도 하지 못한다. 교육 기간 내내 묵언이다. 또 하심이다. 마음을 내려놓고, 아래로 향해야 한다. 삭발은 남자에게는 의무사항이고, 여자는 선택사항이다. 삭발식 전날, 여성 참가자 가운데 삭발하겠다고 손을 든 이는 16명 가운데 단 2명. 스님은 이야기한다. “평생 한 번의 기회입니다. 삭발을 하면 많은 좋은 일이 생깁니다. 지금은 좋은 가발도 많아요.” 막상 삭발식이 시작되니 모두 11명의 여성 참가자가 삭발했다. 그 가운데는 결혼을 한 달 앞둔 20대 중반의 여성도 있다. 단기출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약혼자가 보고 싶다며 나가겠다고 했단다. 학장 스님이 말렸다. 입학금(71만원) 반환도 안 된다며 삼천배 하면 나가는 것을 허락하겠다고 했다. 여성은 남았고, 마침내 삭발까지 했다. 물론 부모도, 약혼자도 삭발한 사실을 모른다. 무엇이 결혼을 앞둔 여성의 머리카락을 자르게 했을까? 

휴3.jpg» 월정사 입구의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 전나무 숲길을 ‘석가모니불’을 외치며 오체투지로 삼보일배로 간다. 1㎞의 숲길을 가는 데 1시간 반이 걸린다.
 

 나쁜 업을 없애려는 ‘욕심’은 그대로
 삭발을 하고 행자가 입는 고동색 염의를 입으니 외모는 출가한 것 같다. 월정사 입구의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 전나무 숲길을 삼보일배로 간다. 큰 소리로 ‘석가모니불’을 외치며 같은 박자로 삼보일배를 한다. 소리가 작으면 다시 되돌아간다. 오체투지해야 하기 때문에 이마에 흙이 묻는다. 무릎이 까이고, 허리가 비명을 지른다. “부처님은 시끄러운 이를 먼저 보살펴줍니다. 그러니 크게 악을 쓰세요.” 소원을 빌며 ‘석가모니불’을 허공에 내지른다. 가슴속 깊이 뭉쳤던 응혈이 빠져나오는 것 같다. 길 가는 등산객이 애처로운 눈초리로 바라본다. 1㎞의 숲길을 가는 데 1시간 반이 걸린다. 마침내 대웅전 앞에 도착하자 서로를 껴안으며 감격한다. “몸이 고돼야 그동안 굳게 갇혀 있던 에고가 깨집니다. 에고가 깨져야 마음이 편해집니다.” 스님의 격려가 깊이 파고든다.    
 수계식이다. 행자 과정에서 하지 말아야 하는 다섯 가지 계율과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삼귀의계를 받고, 팔뚝 살갗을 태우는 연비의식이 있다. 남자 행자는 왼 팔뚝에, 여자 행자는 오른 팔뚝에 쌀알만한 뜸을 뜬다. 살이 타며 따끔한 아픔이 오는 순간, 지난 세월 지은 나쁜 업은 사라진다고 한다. 문수법당 안에는 향내와 살갗 타는 냄새가 가득 찬다. 비장하다. 자신의 몸을 태워 보시하는 것이 가장 큰 보시라고 했는데, 나는 나의 나쁜 업을 없애려는 ‘욕심’을 아직 벗어나지 못한다.
 삭발과 팔뚝의 뜸 자국은 남들과 구별되는 스님의 특징이다. 삭발도 하고 계도 받고, 연비도 했으니 출가한 셈이다. 마지막으로 법명을 받았다. 이번 기수의 남자 행자 돌림자는 가이고, 여성 행자의 돌림자는 석이다. 나에게 주어진 법명은 가경이다. 불경을 뜻하는 경자이니, 계속 불문과 인연이 되는 것일까? 비록 단기출가였지만 종교담당기자의 인연으로 출가 체험을 했다. 고된 행자 생활을 나흘 만에 ‘초단기’로 마치고 집에 오니, 딸이 놀라며 큰 소리로 묻는다. “누구세요?”  
평창/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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