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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함께 한 40년 “아름다운 인생입니다”(7월20일-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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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6-07-21 10:14 조회8,04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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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련 활동 이어 불교신행 40년

제천불청 창립 등 포교에 앞장

평생 모은 문화재 1200여점 기증

 

불자 비불자 모두 이용 가능한

제천 ‘불교문화센터’ 건립

근ㆍ현대 고승유묵 정리 ‘발원’

 

“검소하게 열심히 살아가며

남에게는 베풀어야 진심 전달…

다시 30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출가해 40년 정도 포교하고 싶어” 

   
제2의 고향 제천에서 40여 년 간 한시도 쉬지 않고 불교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김연호 우리는 선우 제천 대표.

그의 삶에서 불교를 빼놓고는 아무 이야기도 할 수 없다. 경남 하동이 고향인 김연호 우리는 선우 제천 대표는 충북 제천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아 전법(傳法)의 등불을 밝히고 있다. 불이상과 대원상 등 불교계의 큰상을 받은 것은 물론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훈하고 충북도민대상을 수상하는 등 교계 안팎의 신망과 존경을 받는 김연호 대표를 지난 8일 제천에서 만났다.

 

“저보다 훌륭한 분이 많은데, 이렇게 큰 지면을 통해 인터뷰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40여년 넘게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는 일을 묵묵히 실천한 김연호 대표는 겸손하게 말문을 열었다. 그는 “지금까지 세상을 살아오며 부처님 가르침에서 어긋나지 않고 승가에 도움이 되는 일을 찾아야 한다는 마음을 가져온 것만은 사실”이라면서 “진주에서 시작한 불교활동이 제2의 고향인 제천으로 이주한 후에도 이어오고 있는 것에는 자부심을 느낀다”고 미소를 지었다.

김연호 대표가 원장으로 있는 진주동물병원 입구는 마치 사찰처럼 편액과 주련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무애문(无碍門)’. 막힘이나 거칠 것이 없는, 그리하여 아무런 장애도 없다는 의미의 무애문은 그가 살아온 삶의 편린(片鱗)을 단적으로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진주 경상대 수의대에 재학 중 불교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그는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청년불자’이다. 높은 목청과 신념 가득한 손짓에서 불교에 대한 깊은 신심과 열정을 확인할 수 있다.

김연호 대표는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대불련) 시절인 1972년 무주 덕유산에서 열린 첫 화랑대회에 참석했던 그 시절이 어제처럼 선명하다. “처음으로 참석해본 대불련 전국대회였습니다. 1주일간 대학생 불자들과 합숙하면서 유명인사들의 특강을 듣고 수행하고 토론하면서 불교운동이 왜 필요한지 알게 된 행운의 자리였습니다.” 이때 법안스님, 홍정식ㆍ송석구ㆍ목정배 동국대 교수, 정종구 전남대 교수 등의 지도를 받고, 당시 임동주 대불련 회장 등과 인연을 맺었다. 김연호 대표는 이듬해 경주에서 열린 제2회 화랑대회를 비롯해 대불련 영남지구 동계수련대회, 제3회 화랑대회에 참석하면서 전법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1973년 11월 진주 경남은행 2층에서 개최한 ‘화랑정신 재현을 위한 전시회’였다. 김 대표는 “김상현, 백효흠 두 선배가 직접 화랑유적지를 찾아 사진을 찍고 탁본한 것에 화랑의 어록을 저명한 서예가들에게 받아 전시회를 열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대불련 경남지부장을 맡고 있던 김연호 대표는 전시회 안내장에서 청년불자의 기상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한결같이 검소하고 겸손하며 권세를 휘두를 줄 모르던 이들의 아름다운 행동은 반성의 거울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정신, 이 멋이 우리들 젊은 가슴속에 다시 한 번 되살아나는 날 민족통일의 기반은 다져질 것이요, 문화민족의 긍지 또한 새롭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이같은 삶의 자세와 원력은 불교뿐 아니라 지역과 우리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위한 참여와 관심으로 이어졌다. 제2의 고향 제천에 대한 사랑은 토박이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경상도 청년이 충청도에 뿌리를 내린 까닭은 무엇일까? 2012년 충북도민대상을 수상할 당시 김연호 대표는 1974년 5월 청주에서 열린 대불련 지부장단 회의를 통해 충북과 인연을 맺은 사연을 밝힌 바 있다. “생애 처음 발을 들여놓게 된 청주는 저의 청춘 가슴에 아늑하고 포근한 인상을 주어 곧 머무르고 싶은 땅이었다.” “이 계기가 인연의 씨앗이 되어 1976년 제천군청에 공무원으로 사회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김연호 대표의 제천사랑은 남다르다. 제천에 뿌리내리고 살면서 지역문화 창달을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특히 수집한 문화재를 흔쾌히 지역사회와 불교계에 기증한 보시바라밀을 실천했다. 국립청주박물관 670여점, 제천역사박물관 600여점, 월정사성보박물관 5점을 기증했다. 선조들이 물려준 문화재를 돈으로 환산할 수는 없지만, 월정사성보박물관에 기탁한 성보의 가치는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올 봄에 펴낸 잡문집 <준 것은 남고 가진 것은 없어진다>처럼 보시를 현실에서 실행에 옮겼다. 아름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김연호 대표는 “주변에서 불교를 믿다가 다른 종교로 개종하는 이들이 있지만, 정확한 숫자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면서 “새로운 불자를 확보하는 것과 동시에 불교인들이 신행활동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기 위해선 환희심을 느끼도록 하는 법회를 비롯한 각종 행사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합니다. 그동안 여러 가지 이벤트와 행사를 실시해 효과를 거두었는데, 시대가 많이 바뀐 만큼 새로운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예불을 모시며 하루를 시작하는 김연호 대표의 신심은 이미 유명하다. 특히 모친이 별세했을 당시 하루에 2000배씩 50일간 10만배 기도를 통해 극락왕생을 기원한 그의 효심(孝心)과 신심(信心)은 감동적이다. 2006년 2월1일자 <불교신문>에 실린 ‘어머니의 기도’에서 김연호 대표는 “부처님을 항상 그리워하고 사는 것이 불자의 자세이듯, 나를 낳아 사랑하며 길러주신 부모님이 그리운 것도 마찬가지”라면서 “나를 저 세상에서 지켜보던 어머니는 오히려 자식을 걱정해 기도해주셨기에 나의 몸은 건강을 찾고 정신도 맑아졌다. 때문에 아침마다 더욱 부처님과 부모님 전에 감사의 절을 올린다”고 했다.

김연호 대표는 꿈이 있다. 그것은 제천에 불자와 비불자들이 모두 이용 가능한 불교문화센터를 건립하는 것이다. “시민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불교의 진리를 만나는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특히 현대인들이 부담없이 접근할 수 있는 문화나 예술을 통해 불교와 인연을 맺도록 하려고 합니다.” 불교문화센터에는 대형 불상을 모셔 제천시민 누구나 아는 도량으로 장엄할 원력도 세웠다.

하지만 당장 실현하기에는 어려움이 적지 않다. 김 대표는 “중장기 계획을 세워서 제천 중심에 불교문화센터를 세우고 싶다”면서 “둘째아들로 지금은 출가하여 군법사로 복무하고 있는 여철스님이 원력을 이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순(耳順)을 넘은 나이지만 마음은 여전히 청년이다. 김연호 대표는 “지금 다시 30대로 돌아간다면 출가하여 불법(佛法)을 더욱 널리 전하고 싶다”면서 “계율을 잘 지키며 사회윤리를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수행자가 되어 포교에 전력을 기울이고 싶다”고 밝혔다. “만약 그런 시절이 돌아와 출가의 인연을 맺어 40년 정도 포교하면 제천 시민의 70%는 불교신도 내지 친(親)불자로 만들 수 있는데, 세월이 아쉽습니다.”

평생 불교활동에 헌신해온 김연호 대표의 또 하나의 원력이 있다. 그것은 근현대 고승들의 유묵(遺墨)을 수집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이다. 김 대표는 “아직 불교계는 자료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면서 “특히 큰스님들이 남긴 각종 글씨나 사진 등이 세월의 흐름 속에 망실되는 안타까운 일이 많다”고 유묵 수집의 동기를 설명했다. 그동안 틈틈이 열반한 근세고승 60여 명의 유묵 100여점을 모은 김 대표는 “스님들이 남긴 각종 자료를 토대로 행장과 수행일화를 정리해 후대에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인생을 살면서 중요한 덕목에 대해 김연호 대표는 “자신의 삶은 검소하면서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며 “그 대신에 남에게는 베풀어야 진심이 전달된다”고 강조했다. “내 것을 주지 않고서 신뢰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이는 불교의 생활화를 통하여 아름다운 인생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의 신행생활과 제천에서의 활동을 정리한 책자 ‘김연호 제천 40년, 불교 40년 앨범’ <합장인생(合掌人生)> 발간을 준비중인 김 대표는 “그동안 제천에서의 불교운동 40년 세월의 무게를 되돌아보게 되었다”면서 “진즉에 좋은 불교운동의 모델을 묵묵히 해왔었더라면 하는 회한이 앞선다”고 했다. 아쉬워하지만 불자로서의 삶, 그리고 지역과 사회를 위한 그의 삶은 100점을 주어도 넘치지 않을 것이다.

지난 3월 인도 불교성지를 순례하며 ‘부다가야 대탑’에 쓴 그의 발원문의 일부에서 진심(眞心)과 불심(佛心)을 확인할 수 있다. “그저 바람결에 훅 불어 지나가버린 것 같은 세월의 속도만 있을 뿐, 40년을 두고서 이야기하기엔 좀 염치가 없습니다. … 인연 지어진 모든 분들의 평안과 행복을 기원하며 매일 대탑을 세 바퀴씩 돌아도 하나 피곤하지를 않았습니다. … 다시 제천에서의 40여년을 회고하면서 저의 여생, 불타를 향한 마음이 곧 모든 숨결의 생명과 맞닿아 살아지길 발원하며 불타의 첫 전법지인 사르나트로 향했습니다.”

김연호 대표가 걸어온 길… 

1952년 12월17일(음력) 경남 하동군 진교면에서 태어나 국립 경상대 수의대를 졸업 후 제천군청에서 근무했다. 법명은 목청(牧靑). 대불련 경남지부장, 제천불교청년회장, 충북문화재단 초대이사,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초대 집행위원 등을 역임했다. 옥소예술제 창설을 비롯한 다양한 지역 문화, 신행활동 등을 통해 19990년 국민훈장 석류장, 1991년 제5회 제천시 문화상, 1992년 제7회 불이상(사단법인 불이회), 2004년 제2회 대원상(대한불교진흥원), 2012년 제12회 충북도민대상을 받는 등 수상경력도 화려하다. 현재 우리는 선우 제천 대표, 제천 진주동물병원장. 달라이라마방한추진위원회 추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까마득한 날의 흔적을 찾아서> <3천년의 복원> <보리부처님> <내 뜰에 새겨진 인연의 발자국> <달라이라마 친견기 ‘기다림의 지혜가 있는 땅’> <준 것은 남고 가진 것은 없어진다> 등 저서가 있을 만큼 작품 활동도 활발하다.  

[불교신문3220호/2016년7월23일자]


기사원문보기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5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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