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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내려놓고 또 다른 나를 찾는 깨달음의 씨앗 (6월 8일-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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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6-06-08 11:43 조회8,29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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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째 월정사 단기출가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퇴우 정념 스님은 “출가 경험을 통해 삶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는 깨달음에 이르는 마음의 씨앗을 심어주고 싶다”고 말한다. 한 달간의 단기 출가는 일반인이 참여해 삭발을 하며 행자생활을 경험하게 된다.
12년째 월정사 단기출가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퇴우 정념 스님은 “출가 경험을 통해 삶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는 깨달음에 이르는 마음의 씨앗을 심어주고 싶다”고 말한다. 한 달간의 단기 출가는 일반인이 참여해 삭발을 하며 행자생활을 경험하게 된다.
단기출가학교 교장 정념 스님

머리 깎고 같은 색 옷을 입는다
개성이라는 이름으로 상처 주고받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다 

책임과 의무의 명분으로
욕망과 집착 위장 

처음엔 두려움일 수 있지만 
버리면 상상도 못했던 자유 만나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이 처음엔 두려움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은 상상하지 못했던 자유와 풍요로움을 만끽하게 될 것입니다.”

버리기 위해 먼저 머리를 깎는다. 불교에서는 머리카락을 무명초라고 부른다. 잡초처럼 무성한 어리석음이라는 뜻이다. 또 물들인 같은 색깔의 옷을 입는다. 버리기 위해 왜 먼저 머리카락을 자르고 똑같은 옷을 입는 것일까? 개성을 없애기 위해서이다. 개성을 표현하는 가장 원초적인 방식이 헤어스타일과 패션이기 때문이다. 개성을 없애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삶에서 경험하는 대부분의 고통은 ‘나의 영역’과 ‘너의 영역’이 충돌하면서 생겨난다. 나의 생각과 너의 생각이 부딪치고, 내가 좋아하는 것과 네가 좋아하는 것이 부딪치고, 나의 행동 방식과 너의 행동 방식이 부딪칠 때, 파열음이 발생한다. 한쪽이 상처를 입거나, 서로가 상처 입는다. 부처는 기발한 충돌 방지를 위한 해결책을 만들었다. 삭발과 같은 옷을 입는 것이다. ‘개성’이라는 이름으로 고집을 부리면서 서로 상처를 주고 상처를 입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버리려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다.

출가는 세상 인연 끊는 것이라고?
반은 맞고 반은 틀려

다툼과 갈등을 떨어내고
용서와 포용으로 거듭나는 것

12년 전 학교 열어 3000여명 졸업
그 가운데 150명 실제로 출가
초기엔 입학 경쟁률이 5대1까지

한 달간 세간 떠나 행자생활 경험

정념 스님(60·월정사 주지)은 자신있게 권한다. “개성을 없앤다는 것, 고정관념을 버린다는 것, 나를 내려놓는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경험을 선사할 것입니다. 이전엔 몰랐던 거대한 나와 마주할 것이니까요.” 정념 스님이 12년 전 오대산 월정사에 단기출가학교를 만든 이유다. 단기출가학교는 한 달간 세간을 떠나 행자생활을 하는 것이다. 일반인들이 대상이다. 그동안 3000여명이 이 단기출가학교를 졸업했고, 그 가운데 150명은 실제로 출가했다. 초기엔 입학 경쟁률이 5 대 1까지 치솟을 만큼 화제를 모았다. 출가는 집을 떠나는 것이다. 가족과 사회와의 인연을 끊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어렵다. 정념 스님 역시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출가했다.

정념 스님께 물었다. “출가는 사회 구성원의 책임과 의무를 방기하고 자신만의 행복을 위해 도피하는 것이 아닌가요?”

“책임과 의무라는 이름이 붙은 당신의 짐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힘겹더라도 계속 짊어질 가치가 있는 것인가요? 정말 당신과 당신의 주변 사람들에게 행복을 약속하는 것인가요? 만약 그렇다면 당신에게 출가를 권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곰곰이 살펴보세요. 우리는 책임과 의무라는 이름을 붙여 욕망과 집착을 위장하는 경우가 허다해요. 책임과 의무를 짊어진 당신은 보람되고 즐거우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잠시 그 짐을 내려놓아 보십시오. 지친 발걸음으로는 멀리 갈 수 없습니다. 시원한 그늘에 앉아 길게 숨을 고르고 나면 당신은 더욱 경쾌한 발걸음으로 길을 나설 수 있습니다. 그것이 단기 출가입니다.”

향기 풍길 자신 없으면 묵언 수행

오대산 월정사 일주문에서 주불전에 이르는 약 1㎞의 전나무 숲길은 침엽수의 기운차고 차가운 기운이 보는 이의 정신을 맑게 만든다.
오대산 월정사 일주문에서 주불전에 이르는 약 1㎞의 전나무 숲길은 침엽수의 기운차고 차가운 기운이 보는 이의 정신을 맑게 만든다.
또다시 물었다. “출가는 세상과 인연을 끊는 것이 아닌가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물론 출가는 기존의 인간관계를 청산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것이 완전한 인연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출가를 통해 청산하는 인연은 ‘나’라는 이기심으로, 욕망과 분노의 힘으로 엮어왔던 인연입니다. 소유하고 번민하고, 원망했던 관계를 말끔히 떨어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누구의 소유물일 수 없는 소중한 존재가 나와 너라는 것을 깨달아 새롭게 평등한 관계를 정립하게 됩니다. 다툼과 갈등이 아니라 행복과 평화를 만들어가는 새로운 관계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주저했던 질문을 던졌다. “출가자는 타인의 공양과 후원에 의존하는 삶이 아닌가요?”

“그래요. 출가자는 분명 타인의 후원에 의존해 살아갑니다. 하지만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깊은 욕망을 뿌리 뽑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재산을 소유하거나 축적하지 않고, 그때그때 주어진 것으로 만족하며 살아갑니다. 출가를 해보면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빡빡한 일정에 깜짝 놀라실 겁니다. 어쩌면 세속의 삶보다 고단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위해 부지런하고, 어떤 일에 부지런한가의 차이입니다. 출가자들은 계율과 선정과 지혜를 닦는 일에는 부지런하지만, 더 좋은 옷과 음식과 잠자리를 차지하는 일에는 부지런하지 않습니다. 출가자들은 열반과 해탈을 성취하려 애쓰지만, 재산과 권력을 축적하려 애쓰지 않습니다.”

단기출가학교에 입학하면 묵언 수행도 한다. 불교의 오계인 살생하지 말고, 도둑질하지 말고, 거짓말하지 말고, 음란한 행위를 하지 말고, 술을 마시지 말라는 것에 덧붙인 규율이다. 정념 스님은 이야기한다.

인종·종교 넘은 명상공동체 본받아

“혼탁한 마음은 입을 통해 악취를 풍기고, 맑은 마음은 입을 통해 향기를 뿜어요. 혹시 그동안 불쑥불쑥 내뱉은 말로 다른 사람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지 않았나요? 지금 당신의 마음은 맑은가요? 향기를 풍길 자신이 없으면 그 입은 잠시 닫아두는 것이 좋아요. 사람이 모여 살면서 말없이 지낸다는 것은 매우 불편하고 곤혹스럽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악취를 걸러내고, 향기를 골라내기 위한 신중한 선택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저절로 겸손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정념 스님이 단기출가학교를 만든 계기가 있다. 2000년대 초반 프랑스 보르도 근교의 명상공동체 ‘플럼 빌리지’를 방문했다. 틱낫한 스님이 운영하는 이 명상공동체에는 다양한 인종, 다양한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함께 생활하며 평화롭게 수행하고 있었다. 오랜 불교 역사와 수려한 숲과 사찰, 훌륭한 시설을 갖추고 있는 한국 불교계에는 없었다. 2004년 월정사 주지로 취임하면서 단기출가학교를 열었다.

“불교 수행의 초보인 행자의 생활을 한 달로 압축했어요. 그동안 자신을 옥죄었던 욕망과 어리석음, 분노의 불길을 스스로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새롭게 보고 깨달은 지견입니다. 그 지견은 출가학교를 나와 다시 시작하는 사회의 삶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입니다. 깨달음으로 갈 수 있는 씨앗을 가슴에 품게 됩니다. 우리의 번뇌는 한겨울의 눈과 같아요. 봄이 왔다고 단박에 녹지 않아요. 따스함으로 한참을 공들여야 합니다. 성급하면 안 돼요. 지금 녹지 않았다고 앞으로도 녹지 않을 것은 아니니까요.”

단기출가학교 교장인 정념 스님은 최근 <출가학교>(모과나무 펴냄)라는 책을 냈다. 부제는 ‘처음 만나는 자유’다.

진부/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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