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현 스님의 중국 오대산 순례기 (9월12일-법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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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6-09-13 09:04 조회8,524회 댓글0건본문
▲ 중국 오대산은 문수보살의 가피에 의한 신이영응이 수없이 명멸하는 대표적인 기도도량이다. 사진은 오대산 북대 전경. |
오대산하면 흔히 월정사와 상원사가 위치하고 있는 강원도의 오대산이 떠오른다. 그러나 이 오대산이 사실은 중국 북경의 서쪽인 산서성의 오대산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아는 분은 그리 많지 않다. 또 이런 오대산이 일본의 고치현 고치시에도 있으며, 장안에서 서북쪽으로 한참을 올라가는 녕하(寧夏)의 회족자치구에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더욱 적으리라. 즉 한때 오대산은 문수보살신앙의 광풍 속에서, 동아시아는 물론 멀리 중앙아시아에까지도 영향을 미치며 번성했던 것이다.
‘화엄경’ ‘문수사리보장다라니경’
두 경전 의거 문수보살 성산 추앙
당나라 고종황제 조사단 파견해
이적 발생하자 대대적으로 후원
신라 자장율사 638년 구도 여정
40일 정진한 뒤 문수보살 친견
부처님 가사·사리 100과 받고
강원도 오대산 중대에 사리 봉안
월정사 출가학교 8월 순례 진행
북대 산정에서 독룡 전설 엿보고
문수보살 목욕했다는 조욕지서는
시공 넘나드는 놀라운 가피 실감
화엄종 대표하는 현통사 참배도
중국불교협회 회장 따듯한 환대
나는 우스갯소리로 여러 오대산을 문수보살 체인점이라고 말하곤 한다. 관세음보살의 체인점이 인도의 보타락가산에서 시작하여 티베트 라사의 포탈라궁 그리고 중국 절강성의 보타산과 낙가산, 또 우리나라 양양의 낙산사가 되는 것처럼 문수보살의 체인점 역시 광범위한 지역에서 다양하게 살펴진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오대산은 ‘화엄경’의 ‘보살주처품’에 등장하지만, 그럼에도 본점이 인도가 아닌 중국에 있다는 점이다. ‘보살주처품’에 따르면, 문수보살이 언제나 머물며 설법하는 장소인 청량산은 인도의 동북쪽에 위치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인도에서 동북쪽이라고? 그렇다면 중국이겠네! 이렇게 해서 찾아진 장소가 바로 중국의 오대산이다.
▲ 중대의 문수보살 설법대. |
‘화엄경’ 이외에도 보리유지가 번역한 ‘문수사리보장다라니경’에는, “동북방의 대진나국(중국)에 오대산(五頂山)이 있고 이곳에 문수동자가 거주한다”는 기록이 있다. 이와 같은 두 가지 경전에 의거해서, 중국의 오대산은 청량산과 동일시되며 문수보살의 성산(聖山)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이후 오대산은 문수보살의 가피에 의한 신이영응이 수없이 명멸하는 대표적인 기도도량으로 두각을 나타낸다. 당나라 때는 이 소문이 천하를 진동해, 멀리 떨어진 수도인 장안의 황궁으로까지 전해졌다. ‘고청량전’에 따르면, 당의 3대 황제인 고종은 궁금한 나머지 662년 칙명으로 오대산에 조사단을 파견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파견된 조사단에게조차 이적이 발생하면서 이들은 문수보살의 영험함에 경외를 표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사실을 보고를 받은 황제는 오대산을 대대적으로 후원하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된다. 이와 같은 조사단의 파견은 측천무후 때인 702년에 한 차례 더 이루어진다. 이로 인하여 오대산에는 수백 곳의 사찰이 들어서면서 동아시아 최대의 불교성지로 우뚝 서게 된다.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는 638년 문수보살을 친견하기 위한 구도의 여정에 오른다. 돈황에서 발견된 9세기 문헌인 ‘오대산찬’에는 자장율사의 구법을 이렇게 적고 있다.
동대(東臺)
도도한 바다는 경계가 끝이 없는데,
신라왕자는 배를 띄워 왔다네.
백골이 될 위험도 사양치 않은 채 고향을 멀리 여의고서,
만리에 몸을 실어 오대산을 참배하네.
자장율사는 먼저 오대산의 동대에 올라 30일 동안 좌선으로 정진한다. 그러자 꿈에 북대로 가라는 계시가 내려졌다. 이에 북대로 자리를 옮겨 문수보살상 앞에서 다시금 10일을 정진하자, 마침내 현신한 문수보살을 뵙게 된다. 이때 문수보살은 부처님의 가사와 사리 100과 등을 주면서, 신라에 돌아가거든 강원도에서 오대산을 찾을 것을 당부한다. 이렇게 해서 643년에 귀국한 자장율사는 강원도에서 오대산을 찾고 중대에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소위 ‘고산제일월정사(高山第一月精寺) 야산제일통도사(野山第一通度寺)’로 일컬어지는 우리나라 적멸보궁의 시작이다. 이 말은 ‘높은 산의 터로는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오대산 중대의 적멸보궁이 첫째가 되며, 낮은 산지에서는 통도사의 부처님 사리를 봉안한 금강계단이 제일’이라는 의미이다.
▲ 문수보살 족적에 정례하는 정념 스님. |
이러한 문수보살과 자장율사의 염원이 서린 오대산 월정사에, 2004년 정념 스님의 발원에 의해서 출가학교가 설립된다. 출가학교란 현대의 도시인들이 스님들의 생활인 출가를 경험해 봄으로써, 자신을 추스르고 행복을 찾게 하는 단기적인 수행프로그램이다. 현재까지 12년의 전통 속에서 무려 2000명 이상이 월정사 출가학교를 거쳐 가며, 올바른 삶의 자세를 환기해 왔다. 이들이 주축이 되어 지난 8월 말에 문수보살을 친견하기 위한 중국오대산의 순례여정이 시작되었다.
월정사 교구장인 정념 스님을 필두로 하는 108명의 순례단은 먼저 자장율사의 행적을 따라 해발 3058m의 북대로 향했다. 자장율사는 이곳에서 당시 제석천이 조성했다는 흙으로 빚은 신묘한 문수보살상 앞에서 문수보살을 뵙기 위한 간절한 기도를 올렸었다. 108순례단 역시 이러한 의미를 되새기며, 참배 후 정성껏 사경한 다라니를 소지하고 기도를 올렸다. 그러자 불현듯 날씨가 어둑해지며 빗방울을 머금기 시작하면서, 한여름의 더위를 일순간에 몰아내 버렸다.
북위시대(386∼534) 역도원이 찬술한 ‘수경주’에는 ‘오대산에는 독룡이 살고 있으며 문수보살이 이 독룡을 진압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신출귀몰한 산정의 날씨변화 속에서 우리는 이러한 독룡의 전설과 문수보살의 가피를 동시에 실감해 볼 수 있었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문수보살의 설법대가 존재하는 해발 2895m의 중대이다. 과거 이곳에는 위나라의 효문제(467∼499)가 얇은 판석으로 쌓아올린 수 천 개의 탑이 산재해 있었다.
또 북대와 중대의 사이에 위치하는 해발 2000m이상의 고원에는 산상연못인 조욕지가 존재한다. 조욕지는 문수보살이 목욕을 했다는 전승이 있는 신령한 연못이다. 이곳에는 아직도 문수보살의 발자국과 손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는 바위가 전하고 있어 무척이나 경이롭다. 전설에 따르면 문수보살이 목욕을 마친 뒤 디딘 바위에 발자국이 남은 것이라고 한다. 문수보살의 발자취에 정대하고 문수보살의 손자국에 손을 마주 대보면서, 우리 모두는 시공을 넘어서는 놀라운 가피를 입는 경험을 하였다. 그것은 교구장스님의 법문처럼, ‘진정한 문수는 밖의 문수가 아닌 안의 문수’임을 자각하는 소리 없는 이적이었다.
▲ 조욕지. 뒤편은 태화지로 추정되는 벌판. |
자장율사 당시에 조욕지 인근에는 수많은 크고 작은 샘들이 용출하고 있었다. 고산지대에 많은 샘이 용출하는 모습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경외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들 연못 중에서 가장 크고 영험한 곳이 바로 조욕지 남쪽의 태화지이다. 자장율사는 이곳에서 용을 만나 ‘황룡사에 구층목탑을 조성하면 신라가 융성해져 삼국을 통일하고 패자로 우뚝 설 것’이라는 예언을 듣게 된다. 이것은 자장이 645∼646년에 걸쳐 높이 약80m에 달하는 황룡사구층목탑을 조성하게 되는 이유가 된다.
또 태화지의 종교적인 감응에 의해서 자장율사는 울산에 자신과 태화지용의 기원사찰(원찰)인 태화사를 창건한다. 현재 태화사는 사라졌지만, 울산에는 아직도 태화강과 태화나루 그리고 태화루와 태화동 등 태화사와 연관된 많은 이름들이 남아있다.
태화지는 조욕지의 남쪽 벌판에 위치했었다. 그러나 현재 태화지는 매몰되어 대략적인 위치만을 추정해볼 수 있을 뿐이다. 오랜 세월 속에 용은 승천하고 물길이 끊긴 채 태화지 역시 역사의 한 페이지로 사라진 것이다. 자장율사의 자취는 월정사와 중대의 적멸보궁에 1400년을 넘어서 오늘도 그대로 서려 있지만, 태화지는 변화의 세월을 거스르지 못하고 그만 스러진 것이다.
이후 출가학교와 108순례단은 중국오대산 불교에서 화엄종을 대표하는 현통사를 참배했다. 우리는 이곳에서 중국불교협회 회장스님의 따듯한 환대를 받을 수 있었다. 현통사는 화엄종의 제4조인 청량징관 스님이 주석하시면서, ‘화엄경’을 강의하고 경전의 해설서를 찬술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또 현통사에는 천개의 팔 하나하나에 발우와 불상을 모시고 있는 천비천발(千臂千鉢)이라는 특이한 형태의 문수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이는 불공이 번역한 10권으로 된 ‘만수실리(문수사리)천비천발대교왕경’에 따른 것이다.
▲ 자현 스님 중앙승가대 불교학부 교수 |
이 밖에도 우리는 문수보살이 하늘에서 나타난 것을 기념해서 건립된 수상사 등 많은 사찰들을 참배했다. 그러면서 어제의 문수가 오늘의 우리이며, 오늘의 우리가 내일의 붓다임을 스스로 자각해 볼 수 있었다. 이것은 모든 불교도들의 염원이자 출가학교의 이상, 바로 그것이었다.
kumarajiv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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