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산사에서 유언장…삶에 쉼표를 찍다 (10월19일-미주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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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6-10-19 14:41 조회8,307회 댓글0건본문
▶ 월정사 ‘황혼기 출가학교’ 수행자들 따라가보니…
지난 12일 찾은 강원 평창군 오대산 월정사 문수선원에서는 이런 마음으로 절집을 찾은 50~70대 58명이 인생 2막을 위한 공부에 한창이었다.
이들은 월정사 출가학교가 8~15일 7박8일 일정으로 마련한 ‘황혼기 나도 출가학교’ 참가 행자들이다. 최고령 참가자는 77세, 막내는 50세다. 월정사는 12년째 출가학교를 운영해왔다. 산사생활 경험이 삶이 무거운 이들에게 하나의 쉼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짧게는 3박4일, 길게는 한 달간 출가자로 수행한다. 한 달 과정의 경우 남자 행자에 한해 삭발 염의(拈衣)가 의무다. 개성이라는 이름으로 고집부리던 일, 상처 주고 받던 일을 끊는 과정이다. 툭툭 머리카락이 떨어지면 흐느끼는 소리부터 새나온다. 깎은 머리카락을 탑 아래 묻으며 “이유는 몰라도 마음이 날아갈 듯 가볍다”는 사람들도 있단다.
속세물 빼고 나를 돌아보는 연습
50세 이상 참가자만을 대상으로 한 ‘황혼기 나도 출가학교’는 올해부터 매년 가을 한 차례 열린다. 희망에 따라 머리를 깎기도, 두기도 한 행자들은 이날 오후 삼보일배를 익히던 참이었다. 행자의 하루는 오전 3시50분에 시작된다. 마음과 몸을 깨우고, 4시부터 올리는 새벽예불을 시작으로 하루 3번 예불과 3번의 정진수행. 틈틈이 강의까지 소화하는 낯선 생활을 나흘 간 몸에 익혔다. 그래도 ‘속세물을 빼려면’ 아직도 배울 게 많았다. 외출, 면회, 음주, 흡연, 외부음식 섭취 등이 모두 안 되는 건 물론이다.
“나무(南無) 삼계도사(三界道師) 사생자부(四生慈父) 시아본사(是我本師)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하루에 몇 번씩 108배를 했지만 막상 예불과 목탁 소리에 맞춰 걸음을 떼려니 주춤주춤 어린아이 걸음마처럼 어색하고 겸연쩍다. 오대산 전나무 숲길을 삼보일배로 통과하는 일은 출가학교의 필수 코스다. 무릎 팔 이마에 차례로 흙이 묻는다.
월정사 연수국장 적엄 스님은 “이마와 가슴을 땅 가까이 내려 절하는 일은 아상(我相)을 내지 않기로 다짐하는 과정 즉 오만, 편견, 자존심, 선입견을 내려놓는 것”이라며 “내가 잘못 보고, 잘못 듣고 끄달려서 다른 이를 아프게 했던 것을 참회하고 더 이상 집착하지 않기로 하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오체투지(五體投地)로 숲길을 돌면 1시간 반쯤 걸린다.
적막 속에 1시간쯤 절을 하면 무슨 생각이 들까. 공학석사로 벤처기업을 운영해 온 허설송(52)씨는 “50세가 넘어 생을 돌아보니 성취, 실패 모두 겪었지만 의외로 행복했던 기억은 적고 기계처럼 열심히만 살아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남은 생이 얼마나 될진 몰라도 탐진치삼독(貪瞋癡三毒ㆍ탐하고 성내고 어리석은 마음)에 빠지지 않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연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입은 닫고 마음은 내려 놓다
“수출 자금이 막혀 실패도 경험했죠. 본의 아니게 고통 받은 분들이 있을 텐데 그때 내가 부처님 가르침을 이해했더라면 조금 더 아름다운 방식으로 사업을 해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참석하기를 잘했다 싶어요. 모든 것을 참회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는 시간을 보내니 환희심이 들어요.”조순미(56)씨는 “평생 언제 또 해보겠냐는 말씀에 용기를 냈는데 처음에는 ‘내가 왜 이 고생을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수행생활이 힘들었다”며 웃었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부처님께 매달리는 일이 아니라 나를 돌아보는 일이라는 걸 배웠다”고 했다.
문수선원 교육실 입구에는 두 단어가 나란히 걸렸다. 묵언(默言)과 하심(下心). 가장 기본이지만 어려운 과제다. 자신의 망상을 입으로도 마음으로도 내지 않아야 한다.
오후에는 월정사 부주지 원행 스님의 강연이 이어졌다. 스님은 “각자가 지닌 육안을 혜안, 법안으로 바꾸는 일은 스스로 하나하나 지혜를 체득할 때 가능하다”며 “투철한 자기반성을 통해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 모래로 밥을 짓는 것과 같다”고 강조했다. “각자가 불성과 자비심을 개발해 끈끈하게 묶어질 때 여기서 극락세계가 열리는 거죠.”저녁 예불을 마치고 모이자 저마다 앞에 백지가 놓였다. 과제는 나에게 쓰는 편지. 즉 유언장 쓰기다. 안 그래도 고요했던 교육장이 더 무거운 적막으로 가라앉았다. 턱을 괬다 풀었다. 미간을 구겼다 폈다. 훌쩍이는 소리가 새 나왔다. 정씨도 거제도에 머물고 있을 아내, 서울에서 일하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한 줄 한 줄 채워나갔다. “나 먼저 가면, 우선 너희들 엄마한테 최선을 다해라. 내 무덤은 만들지 말고 수목장을 해라. 그러고도 남는 돈이 있다면 사회복지시설에 환원해라.”
여생, 더 진솔하게 더 간절히
다음날 새벽, 3시50분에 어김없이 눈을 떴다. 4시20분이 되자 예불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산사에 울려 퍼졌다. 웬 고역인가 싶었지만 김상선(61)씨는 이 시간을 되레 최고로 꼽았다. “별빛이 쏟아질 때 신선한 찬 바람을 맞으며 새벽예불을 드리러 가다 보면 마음이 침착해져요. 적멸보궁(寂滅寶宮ㆍ진신사리를 모신 법당) 참배를 할 땐 울컥할 정도였어요.”그는 아이들을 모두 대학에 보내고 나서야 “엄마로서 몫은 다 했으니 이젠 날 위해 살고 싶다”며 자신을 돌아봤다고 했다. “제일 하고 싶은 게 공부더라고요. 불교 공부를 하면서 유연한 사고를 많이 하게 됐어요. 자꾸 사방을 바라보게 돼요. 자식들에게도 화 내기보다는 존재 자체를 감사히 여기고 인정하는 법, 내 편견을 버리고 믿고 지지할 수 있는 내적인 힘을 키우려고요.”모든 행자는 졸업식을 하루 앞둔 14일 오후, 절 안의 다비장(茶毘場)에 가 유언장을 낭독했다. 적엄 스님은 낮은 목소리로 힘줘 말했다.“다비장은 항상 울음바다가 됩니다. 그래도 읽어 태우면 후련하다 그래요. 길어야 100세까지 빌려 사는 몸뚱이, 갈 때는 업보만 그림자처럼 따라가죠. 그걸 깨닫고 깨어 있기가 어렵습니다. 순간, 찰나를 벗어나서는 아무것도 없으니 하루하루 진솔하게, 간절하게 사시라. 지금 여기서 삶을 극락으로, 천국으로 만드시라. 가는 곳곳마다 주인이 되시라.“
<평창=글·사진 김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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