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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천강지곡 권상·월정사 석조보살좌상, 국보됐다 (11월8일-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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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6-11-08 16:22 조회8,60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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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월인천강지곡 권상 2016-11-08
【서울=뉴시스】신동립 기자 = 국보 2건, 보물 4건이 국가지정문화재로 예고됐다.

‘월인천강지곡 권상’(보물 제398호)은 한글을 창제한 세종이 부인인 소헌왕후의 공덕을 빌기 위해 직접 지은 찬불가다. ‘훈민정음’ 창제 직후 활자로 간행된 점에서 초기 국어학과 출판인쇄사 연구에 중요한 문헌이다. 일부만 남아 있으나 국어학적, 출판 인쇄사적 가치 때문에 국보로 승격 지정할 예정이다.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보물 제139호)은 전체적으로 양감이 강조됐다. 균형 잡힌 안정된 자세와 적절한 비례를 갖췄다. 보관과 귀걸이, 팔찌, 가슴 영락(瓔珞; 구슬 목걸이) 장식 등 세부표현도 화려하고 섬세하다.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의 남쪽 전방에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가슴 앞으로 모은 채 탑을 향해 공양을 올리는 자세다. 원래부터 탑과 공양보살상은 단일 구성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이해된다. 이와 같은 탑전(塔前) 공양보살상은 이전에는 찾기 힘든 고려 전기적 특징인 동시에 우리나라만의 독창적인 도상과 구성이다. 보살상과 함께 조성된 팔각 구층석탑은 국보(제48호)로 지정돼 있고, 석조보살상은 보물로 별도 지정돼 별개라는 느낌을 줄 수 있다. 이미 국보로 지정된 석탑과 묶어 국보로 지정하는 것이 조성 당시의 조형적, 신앙적 의미를 모두 찾을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다.

‘금강산 출토 이성계 발원 사리장엄구 일괄’은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기 직전 많은 신하와 함께 발원한 사리장엄구다. 1932년 금강산 월출봉 석함에서 발견됐다. 석함 안에서 사리외기(舍利外器)인 백자대발 4개, 은제도금 라마탑형사리기, 이 사리기를 안치한 은제 팔각당형사리기, 그리고 청동발 등이 나왔다. 이 유물 중에는 발원자와 발원 목적과 내용, 제작 장인 등 조성경위를 알 수 있는 명문이 있어 사료적 가치가 크다. 명문의 사료적 가치 말고도 출토 장소, 제작 시기가 분명하고 이 시기에 사용된 공예기법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 등에서 역사적, 예술적, 학술 가치도 높다. 특히 백자사리기는 기년명 고려백자라는 점과 제작자가 ‘방산 사기장 심룡’이라는 도공임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도자사에도 중요한 자료다. 기년명(紀年銘)은 비석이나 기물에 제작이나 사용 따위의 연시(年時)를 기입한 명문(銘文)이다.

‘국새 황제지보’, ‘국새 유서지보’, ‘국새 준명지보’는 6·25동란 중 미국으로 유출된 것이다. 2014년 오바마 미국 대통령 방한 당시 돌려받았다. 황제지보는 고종이 1897년 제작한 대한제국 국새, 유서지보는 1876년 제작해 관리 임명에 사용한국새, 준명지보는 1889년 제작해 세자시강원 관원의 교지에 사용한 국새다. 환수문화재라는 상징성뿐 아니라 국가 행정용으로 사용된 역사성, 왕실공예품으로서의 공예사적 예술성, 의궤 등 다른 자료와 상대 비교할 수 있다는 자료적 학술성 등 문화재적 지정 가치가 있다. 

【서울=뉴시스】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 2016-11-08

‘협주명현십초시(夾注名賢十抄詩)’는 과거 시험 준비생들의 수요를 염두에 두고 권람의 교정을 거쳐 간행한 한국(신라)과 중국 시인 30명의 시선집이다. 각 시인의 작품 중에서 7언 율시 10편씩 총 300편을 뽑아 주해를 붙였다. 경상도 밀양부에서 간행한 지방관판본이다. 한국인이 대상을 선정하고 주해한 최초의 한·중 시선집으로 희귀 사례다. 고려 시대 한문학과 지방 출판사 연구에도 의미가 있다. 

‘박동형 초상 및 함’은 1728년에 그려진 박동형의 ‘전신좌상본’과 1751년 ‘반신상본’과 각 함(函)이다. 박동형(1695~1739)은 무신란 당시 반란 주동자 가운데 하나인 박필현의 포획에 결정적 공을 세우며 충주박씨 가문을 공신 가문으로 격상시킨 인물이다. 두 초상은 동일 초본에서 비롯한 것이다. 전신좌상은 유소(流蘇; 매듭 장식)를 비롯해 옛 장황(裝潢; 서화의 표지 장식)을 간직한 상태다. 반신상은 최근 장황을 새로이 바꾼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초상들의 보관함은 처음 초상 제작 때 것으로 보인다. 오사모(烏紗帽)에 단령(團領), 소매 안으로 처리한 두 손, 배경 없이 교의(交椅)에 앉아 있는 전신좌상, 쌍학흉배와 학정금대, 표피가 덮인 교의, 족좌 위에 놓인 두 발 등 일반 공신상의 전형적인 형태다. 화가의 기량을 알려주는 섬세한 필치에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문화재청은 30일에 걸친 예고 기간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이 8건을 국보·보물로 지정한다.

reap@newsis.com


기사원문보기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61108_0014503189&cID=10701&pID=1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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