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인천강지곡 권상」 등 8건 국가지정문화재(국보ㆍ보물) 지정 예고 (11월8일-정책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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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6-11-08 12:49 조회8,488회 댓글0건본문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은 「월인천강지곡 권상(月印千江之曲 卷上/보물 제398호)」 등 2건과 「금강산 출토 이성계 발원 사리장엄구 일괄(金剛山 出土 李成桂 發願 舍利莊嚴具 一括)」 등 6건을 각각 국가지정문화재 국보․보물로 지정 예고하였다.
「월인천강지곡 권상(月印千江之曲 卷上/보물 제398호)」은 한글을 창제한 세종이 아내인 소헌왕후의 공덕을 빌기 위하여 직접 지은 찬불가이다. 훈민정음 창제 이후 가장 빠른 시기에 지어져 활자로 간행된 점에서 창제 후 초기의 국어학 연구와 출판인쇄사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문헌이다. 비록 일부만 남아 있으나 이 책이 갖는 국어학적, 출판 인쇄사적 가치가 매우 높아, 국보로 승격 지정할 가치가 있다.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平昌 月精寺 石造菩薩坐像/보물 제139호)」은 전체적으로 양감이 강조된 모습이며, 균형 잡힌 안정된 자세와 적절한 비례를 갖추고 있다. 보관과 귀걸이, 팔찌, 가슴 영락(瓔珞, 구슬 목걸이) 장식 등 세부표현도 화려하고 섬세하다.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국보 제48호)」의 남쪽 전방에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아 탑을 향해 공양을 올리는 자세라는 점에서, 원래부터 탑과 공양보살상은 하나의 구성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이해된다. 이와 같은 탑전(塔前) 공양보살상은 이전에는 찾기 힘든 고려 전기적 특징인 동시에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우리나라만의 독창적인 도상과 구성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 현재 보살상과 함께 조성된 팔각 구층석탑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고, 석조보살상은 보물로 별도 지정되어 별개라는 느낌을 줄 수 있으므로, 이미 국보로 지정된 석탑과 묶어 국보로 지정하는 것이 조성 당시의 조형적, 신앙적 의미를 모두 찾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금강산 출토 이성계 발원 사리장엄구 일괄(金剛山 出土 李成桂 發願 舍利莊嚴具 一括)」은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조선을 건국하기 직전에 많은 신하와 함께 발원한 사리장엄구로서 1932년 금강산 월출봉 석함 속에서 발견된 것이다. 이 석함 안에서 사리외기(舍利外器)인 백자대발(白磁大鉢) 4개, 은제도금 라마탑형사리기(銀製鍍金 喇?塔形舍利器), 이 사리기를 안치한 은제 팔각당형사리기(銀製 八角堂形舍利器), 그리고 청동발(靑銅鉢) 등이 발견되었다. 이 유물 중에는 발원자와 발원 목적과 내용, 제작 장인 등 조성경위를 알 수 있는 명문이 있어 사료적 가치가 크다. 명문이 갖는 사료적 가치 외에도 출토 장소, 제작 시기가 분명하고 이 시기에 사용된 공예기법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 등에서 역사적, 예술적, 학술 가치가 크다. 특히, 백자사리기는 기년명 고려백자라는 점과 제작자가 ‘방산 사기장 심룡(方山 砂器匠 沈?)’이라는 도공임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도자사에도 중요한 자료이다.
* 기년명(紀年銘): 비석이나 기물에 제작이나 사용 따위의 연시(年時)를 기입한 명문(銘文)
「국새 황제지보(國璽 皇帝之寶)」, 「국새 유서지보(國璽 諭書之寶)」, 「국새 준명지보(國璽 濬明之寶)」는 한국전쟁 중 미국으로 유출된 것을 2014년 오바마 미국 대통령 방한(2014.4.25.~26.) 당시 돌려받은 문화재이다. <황제지보>는 고종이 1897년에 제작한 대한제국 국새이고, <유서지보>는 1876년에 제작한 관리 임명에 사용했던 국새이며, <준명지보>는 1889년에 제작한 세자시강원 관원의 교지에 사용되었던 국새이다. 이러한 황제지보, 유서지보, 준명지보는 환수문화재라는 상징성뿐만 아니라 국가 행정용으로 사용된 역사성, 왕실공예품으로서의 공예사적 예술성, 의궤 등 다른 자료들과 상대 비교할 수 있다는 자료적 학술성 등 문화재적 지정 가치가 있다.
「협주명현십초시(夾注名賢十抄詩)」는 과거 시험 준비생들의 수요를 염두에 두고, 권람의 교정을 거쳐서 간행한 한국(신라)과 중국의 시인 30명의 시선집이다. 내용은 각 시인의 작품 중에서 7언 율시 각 10편씩 총 300편을 뽑아 주해(註解)를 붙인 것이다. 이 책은 경상도 밀양부에서 간행한 지방관판본으로서, 한국인이 그 대상을 선정하고 직접 주해한 최초의 한ㆍ중 시선집으로 매우 귀한 사례이자 고려 시대의 한문학과 지방 출판사 연구에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박동형 초상 및 함(朴東亨 肖像 및 函)」은 1728년에 그려진 박동형의 ‘전신좌상본’ 및 1751년에 그려진 ‘반신상본’과 각 함(函)이다. 박동형(1695~1739)은 무신란 당시 반란 주동자 중 하나인 박필현의 포획에 결정적 역할을 담당하며 공신 반열에 올라 충주박씨 가문을 공신 가문으로 격상시킨 인물이다.
두 초상은 동일 초본에서 비롯한 것으로 전신좌상은 유소(流蘇, 매듭 장식)를 비롯해 옛 장황(裝潢, 서화의 표지 장식)을 간직한 상태이고 반신상은 최근 장황을 새로이 바꾼 점에서 차이를 보이며, 초상들의 보관함은 처음 초상 제작 때 것으로 보인다. 오사모(烏紗帽, 관복을 입을 때 쓰는 모자)에 단령(團領), 소매 안으로 처리한 두 손, 배경 없이 교의(交椅)에 앉아 있는 전신좌상, 쌍학흉배(雙鶴胸背)와 학정금대(鶴頂金帶), 표피가 덮인 교의, 족좌 위에 놓인 두 발 등 일반 공신상의 전형적인 형태로 그린 화가의 기량을 알려주는 섬세한 필치에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 단령(團領): 조선 시대 관원들의 집무복
* 쌍학흉배(雙鶴胸背): 당상관(堂上官)인 정 1ㆍ2품의 문관(文官) 상복, 왕의 종친(宗親), 부마(駙馬) 등의 관복에 부착한 학 두 마리가 그려진 도안
* 학정금대(鶴頂金帶): 조선 시대 종2품의 관리가 관복이나 조복 착용 시 갖추어 띠는 띠
문화재청은 이번에 국가지정문화재(국보ㆍ보물)로 지정 예고한 「월인천강지곡 권상」등 8건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 동안 각 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할 예정이다.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平昌 月精寺 石造菩薩坐像/보물 제139호)>
「월인천강지곡 권상(月印千江之曲 卷上/보물 제398호)」은 한글을 창제한 세종이 아내인 소헌왕후의 공덕을 빌기 위하여 직접 지은 찬불가이다. 훈민정음 창제 이후 가장 빠른 시기에 지어져 활자로 간행된 점에서 창제 후 초기의 국어학 연구와 출판인쇄사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문헌이다. 비록 일부만 남아 있으나 이 책이 갖는 국어학적, 출판 인쇄사적 가치가 매우 높아, 국보로 승격 지정할 가치가 있다.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平昌 月精寺 石造菩薩坐像/보물 제139호)」은 전체적으로 양감이 강조된 모습이며, 균형 잡힌 안정된 자세와 적절한 비례를 갖추고 있다. 보관과 귀걸이, 팔찌, 가슴 영락(瓔珞, 구슬 목걸이) 장식 등 세부표현도 화려하고 섬세하다.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국보 제48호)」의 남쪽 전방에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아 탑을 향해 공양을 올리는 자세라는 점에서, 원래부터 탑과 공양보살상은 하나의 구성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이해된다. 이와 같은 탑전(塔前) 공양보살상은 이전에는 찾기 힘든 고려 전기적 특징인 동시에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우리나라만의 독창적인 도상과 구성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 현재 보살상과 함께 조성된 팔각 구층석탑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고, 석조보살상은 보물로 별도 지정되어 별개라는 느낌을 줄 수 있으므로, 이미 국보로 지정된 석탑과 묶어 국보로 지정하는 것이 조성 당시의 조형적, 신앙적 의미를 모두 찾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금강산 출토 이성계 발원 사리장엄구 일괄(金剛山 出土 李成桂 發願 舍利莊嚴具 一括)」은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조선을 건국하기 직전에 많은 신하와 함께 발원한 사리장엄구로서 1932년 금강산 월출봉 석함 속에서 발견된 것이다. 이 석함 안에서 사리외기(舍利外器)인 백자대발(白磁大鉢) 4개, 은제도금 라마탑형사리기(銀製鍍金 喇?塔形舍利器), 이 사리기를 안치한 은제 팔각당형사리기(銀製 八角堂形舍利器), 그리고 청동발(靑銅鉢) 등이 발견되었다. 이 유물 중에는 발원자와 발원 목적과 내용, 제작 장인 등 조성경위를 알 수 있는 명문이 있어 사료적 가치가 크다. 명문이 갖는 사료적 가치 외에도 출토 장소, 제작 시기가 분명하고 이 시기에 사용된 공예기법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 등에서 역사적, 예술적, 학술 가치가 크다. 특히, 백자사리기는 기년명 고려백자라는 점과 제작자가 ‘방산 사기장 심룡(方山 砂器匠 沈?)’이라는 도공임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도자사에도 중요한 자료이다.
* 기년명(紀年銘): 비석이나 기물에 제작이나 사용 따위의 연시(年時)를 기입한 명문(銘文)
「국새 황제지보(國璽 皇帝之寶)」, 「국새 유서지보(國璽 諭書之寶)」, 「국새 준명지보(國璽 濬明之寶)」는 한국전쟁 중 미국으로 유출된 것을 2014년 오바마 미국 대통령 방한(2014.4.25.~26.) 당시 돌려받은 문화재이다. <황제지보>는 고종이 1897년에 제작한 대한제국 국새이고, <유서지보>는 1876년에 제작한 관리 임명에 사용했던 국새이며, <준명지보>는 1889년에 제작한 세자시강원 관원의 교지에 사용되었던 국새이다. 이러한 황제지보, 유서지보, 준명지보는 환수문화재라는 상징성뿐만 아니라 국가 행정용으로 사용된 역사성, 왕실공예품으로서의 공예사적 예술성, 의궤 등 다른 자료들과 상대 비교할 수 있다는 자료적 학술성 등 문화재적 지정 가치가 있다.
「협주명현십초시(夾注名賢十抄詩)」는 과거 시험 준비생들의 수요를 염두에 두고, 권람의 교정을 거쳐서 간행한 한국(신라)과 중국의 시인 30명의 시선집이다. 내용은 각 시인의 작품 중에서 7언 율시 각 10편씩 총 300편을 뽑아 주해(註解)를 붙인 것이다. 이 책은 경상도 밀양부에서 간행한 지방관판본으로서, 한국인이 그 대상을 선정하고 직접 주해한 최초의 한ㆍ중 시선집으로 매우 귀한 사례이자 고려 시대의 한문학과 지방 출판사 연구에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박동형 초상 및 함(朴東亨 肖像 및 函)」은 1728년에 그려진 박동형의 ‘전신좌상본’ 및 1751년에 그려진 ‘반신상본’과 각 함(函)이다. 박동형(1695~1739)은 무신란 당시 반란 주동자 중 하나인 박필현의 포획에 결정적 역할을 담당하며 공신 반열에 올라 충주박씨 가문을 공신 가문으로 격상시킨 인물이다.
두 초상은 동일 초본에서 비롯한 것으로 전신좌상은 유소(流蘇, 매듭 장식)를 비롯해 옛 장황(裝潢, 서화의 표지 장식)을 간직한 상태이고 반신상은 최근 장황을 새로이 바꾼 점에서 차이를 보이며, 초상들의 보관함은 처음 초상 제작 때 것으로 보인다. 오사모(烏紗帽, 관복을 입을 때 쓰는 모자)에 단령(團領), 소매 안으로 처리한 두 손, 배경 없이 교의(交椅)에 앉아 있는 전신좌상, 쌍학흉배(雙鶴胸背)와 학정금대(鶴頂金帶), 표피가 덮인 교의, 족좌 위에 놓인 두 발 등 일반 공신상의 전형적인 형태로 그린 화가의 기량을 알려주는 섬세한 필치에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 단령(團領): 조선 시대 관원들의 집무복
* 쌍학흉배(雙鶴胸背): 당상관(堂上官)인 정 1ㆍ2품의 문관(文官) 상복, 왕의 종친(宗親), 부마(駙馬) 등의 관복에 부착한 학 두 마리가 그려진 도안
* 학정금대(鶴頂金帶): 조선 시대 종2품의 관리가 관복이나 조복 착용 시 갖추어 띠는 띠
문화재청은 이번에 국가지정문화재(국보ㆍ보물)로 지정 예고한 「월인천강지곡 권상」등 8건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 동안 각 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할 예정이다.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平昌 月精寺 石造菩薩坐像/보물 제1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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