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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아이들을 보며 왜 눈물이 났을까? (11월30일-e수원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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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6-12-02 09:04 조회8,39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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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구멍에 언제 볕들 날이 올까? 세월만 가고 이러다가 정말 내 좋은 청춘을 다 보내고 마는 것이 아닐까? 하루하루가 고달프고 길기만 하다.’ 이렇게 생각하다가도 순간 누구나 비타민처럼 힘이 솟고 행복한 기운이 퍼질 때가 있다. 행복한 순간이다. 

오대산 가는 길은 나에게 있어 비타민과 같은 생활의 활력제이다. ‘오대산으로 가는 길이라고 쓰고 행복이라고 읽는다.’고 혼자 생각하고 피식거렸다. 처음 갔던 길은 큰 아이가 입대한 직후였고 두 번째는 작은 아이가 입대하고 난 후였다. 작은 아이까지 군대에 가고 나니 둘이 여가를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다. 하늘빛과 보라색 도라지꽃에 관심을 가졌던 여름날 우연히 찾았던 오대산이었다. 

홍단풍이 붉게 물들고 단풍잎 보다 더 요란하게 물들인 사람들이 북적거렸던 가을에도 왔었다. 사람들이 던져주는 과자 부스러기를 양식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갉아먹던 다람쥐가 많았던 곳이다. 
오늘 다시 찾은 오대산은 가을이 가고 겨울의 한가운데 와 있었다. 월정사로 이어지는 개울가에는 벌써 얼음이 얼었다. 세차게 바위를 치고 흐르던 물이 바위에 얼음이 되어 또 다른 겨울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날씨가 맑지 못했다. 산사의 바람은 도심의 바람보다 맑았지만 더 날카롭고 차가웠다. 가방에 넣어 차에 두고 내린 장갑을 주섬주섬 끼고도 손등을 비비게 되었다. 위용을 자랑하는 월정사 적광전을 지나 8각9층석탑을 둘러보았다. 석탑에 남아 있는 금동으로 만든 지붕돌위에 머리장식이 화려하고 아름답다. 불교가 성행했던 고려시대의 화려하고 귀족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는 양식이다. 

지난 가을 관광객들이 많아 조금은 북적거렸던 경내를 조용히 산책하듯이 둘러보는 묘미가 있다. 해가 구름사이에서 나왔다가 들어갔다. 점심공양시간이 막 지났을 시간일 뿐인데 바람은 더욱 차가워지고 목줄기는 움츠린 어깨에 묻히고 말았다. 
날씨가 추워져 좋은 것은 옆 사람의 온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손발이 냉골이라고 타박하면서도 슬쩍 잡아 주머니에 넣어주는, 말하지 않아도 따스함이 전해지는 순간이다. “그랬구나.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과 고개를 끄덕이며 두서없는 말에도 묵묵히 들어주는 동행이 있어 행복한 여정이다. 

아직은 겨울이라고 말하기 미안한 가을을 아주 보내며 온기를 찾아 찻집에 들어섰다. 사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들여다 볼 수 있는 쇼윈도우 같은 집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커피향이 따스함이 되어 포근히 안았다. 
아무도 없는 찻집에 마주 앉았다. 가끔 생각하는 것이지만 마주 앉는 것은 너무나 전투적이고 호전적이다. 나란히 바깥을 내다볼 수 있게 자리를 옮겼다. 하늘을 찌르는 고목에 마른 잎사귀 사이로 노란색, 분홍색 작은 연등이 걸려 있다. 봄과 여름에 피었던 꽃이 겨울을 지킬 연등보다 더 아름다웠을 텐가? 누군가의 기원이 담겨 있는 종이꽃이 추운겨울을 무사히 이겨내기를... 


여름에 사람의 목소리로 채웠을 바깥 전망대는 텅 빈 채로 흘러가는 개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커피 한잔을 시켰는데 두 잔이 나왔다. 나에겐 원 샷으로 조금 양이 적은 것을 놓고 맞은편에는 투 샷으로 큰 컵에 놓았다. 황금색의 크레마가 풍부하여 보기에도 군침이 넘어갔다. “한 잔만 시켰는데...” 미안한 마음은 고마움으로 변하고 한동안 말없이 창밖만 바라보았다. 

중년의 남녀들이 무리를 지어 커피집을 점령했다. 조그만 유리 상자에 소란함으로 터질 듯 꽉 채웠다. 그리고 남학생으로 보이는 무리가 들어와 전망대에 자리를 잡았다. 갑자기 그 아이들이 궁금해졌다. 옆에 있는 사람과 의견을 나눠보았다. 
“대학생들이 단합대회라도 왔을까?”, “군인이거나 학군단, 제복을 입는 아이들 같아.” 
그러고 보니 한참 멋을 낼 나이인데 겉옷에서 느껴지는 멋은 없었고 단지 보온의 기능을 충실한 옷차림이었다. 하의는 디자인은 약간 달라 보이긴 했지만 츄리링 차림이었다. 머리스타일까지 일률적으로 길지도 짧지도 않은 길이었다. 

주문한 커피가 나올 때까지 발을 동동 구르면서 철제 의자에 앉은 아이들이 급기야 군인이라고 단정하고 나니 양주에 있는 작은 아이가 생각났다. 갑자기 속절없이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마음이 제멋대로인 것처럼 눈물이라는 것도 통제 불능인지라 슬쩍 건네주는 손수건을 받고도 잘 진정이 되지 않았다. 투명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아이들이 흘끔흘끔 나를 훔쳐보았다. 궁금했겠지. 엄마뻘 되는 여자가 울고 있으니. 그것도 남자를 옆에 두고. 상상만 해도 웃기는 일이지만 추위에 고생할 작은 아이 생각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쉽사리 멈춰지지 않았다. 

찻집을 나오니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다시 적광전을 지나갈 즘 한 떼거리의 중국관광객들이 몰려왔다. 사찰인지 시장통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소리 높여 떠들어 댔다. 킬킬거리는 소리를 뒤로 하고 쫓기듯 상원사로 향했다. 
상원사로 올라가는 숲길이 좋다. 박석으로 깔아 걷기에도 좋고 산책로도 있어 그 길로 걸으면 깊은 산중의 정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 좋다. 비 오는 산중에서 검은 우산을 쓰고 나란히 걸었다. 이야기 없이 걸어도 충분히 행복한 길이다. 청풍루에 앉아 녹음에 묻혀 이야기를 많이 나눴던 곳이다. 

산중의 기온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쌀쌀함까지도 참고 올라가는데 세상을 잇는 요란한 벨소리가 났다. 오늘의 여정은 극락문으로 들어서는 입구에서 멈추기로 했다. 빗줄기는 굵어지고 산사의 어둠은 조용히 내려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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