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즈늑한 겨울 산사에서 새해 새 다짐을 (2월2일-일간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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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7-02-02 09:26 조회8,819회 댓글0건본문
어느 절을 가더라도 봄부터 가을까지는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절은 수양의 도량임에도 저잣거리 같다. 겨울 산사에는 사람이 없어 좋다. 적막감이 들 정도로 고즈넉해서 더더욱 좋다. 지난 주는 설날이 있었다. 오는 4일은 입춘이다. 24절기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다. 새로운 마음으로 한 해를 시작하기 위해 절집을 찾았다. 전남 구례 화엄사와 강원도 평창 월정사다. 산속에 파묻힌 절은 여전히 겨울 바람이 매서웠다.
마음이 푸근해지는 화엄사
날씨가 갑자기 매서워졌다. 화엄사로 올라가는 왕복 2차선의 도로를 걷고 있으니 칼바람이 뺨을 때려 눈물이 찔끔났다. 하늘이 흐려지더니 금세 눈을 뿌리기 시작했다.
역시 겨울 화엄사는 조용했다. 절간에 들어서니 돌에 새겨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세상사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의미로 화엄경의 핵심사상이다.
백제 시대인 서기 544년 지어졌다는 화엄사에 오면 반드시 보고 가야하는 것이 있다. 바로 각황전이다. 절간의 중심은 대웅전이지만 화엄사에서는 각황전도 대웅전만큼 웅장하다. 그러면서 단아한 멋이 있다. 1702년 중건된 각황전은 300여 년의 세월 동안 온갖 풍상을 겪으면서 단청은 거의 벗겨졌다. 그렇지만 육중한 몸체는 그대로 이어져 국보(제 67호)가 됐다.
보통 때는 각황전·대웅전까지만 보고 발길을 돌렸었다. 그런데 이날은 이상하게도 대웅전 뒤에서 들려오는 '서걱서걱'거리는 소리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긴 대나무숲이 나타났다. 그 끝자락에 구층암이라는 자그마한 암자가 있었다.
암자는 낡고 보잘 것 없었다. 그런데 암자를 지탱하고 있는 기둥이 예사롭지 않았다. 둥그렇게 깎은 것이 아니라 원래 나무 모양 그대로였다.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니 한 스님이 "모과나무"라고 일러주었다.
"바쁘지 않으면 차나 한잔 하시지요"라는 스님의 말씀에 방으로 들어갔다. 자신을 화엄사에서 10년 넘게 차 밭을 일구고 있는 덕제 스님이라고 했다. 녹차를 사이에 두고 스님과의 대화가 한 시간가량 이어졌다.
"지금 세상이 시끄러우니 어떻게 사는 것이 현명한 것입니까."
"모두들 잘난 척하고 자기만 똑똑하다고 우기고 있습니다. 사실은 어리석은데 말입니다. 이 어리석음을 인정하는 것이 곧 삶의 지혜이지요."
'자기 잘난 맛에 산다'는 세상에서 어리석음을 인정하라. 큰 숙제를 안고 내려왔다.
◇여행정보=서울 시청에서 화엄사까지는 자동차로 4시간 가량 걸린다. 입장료 어른 3500원, 어린이 1300원. 구례에는 자연드림파크라는 곳이 있다. 피자·소시지 등 다양한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으며 숙소도 있다. 061-783-2200.
마음까지 하얗게 된 월정사
월정사의 추위도 매서웠다. 마침 폭설이 내려 한 시간만에 10㎝ 가량 쌓일 정도로 여전히 한겨울이었다.
월정사가 좋은 것은 입구에는 전나무 숲길이 있어서다. 일주문에서 금강교 입구까지 1㎞ 가량 전나무가 하늘 높이 솟아 있다. 최근 드라마 '도깨비'에서 공유와 김고은이 만났던 장소로 나와서 더 인기 있는 곳이 됐다. 또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한국관광공사가 만든 '2018 평창 관광로드 10선'의 첫 번째 길이어서인지 폭설이 내렸음에도 사람들의 발길도 꾸준했다.
전나무 숲길은 일주문에 내려서 걸어 들어가는 편도길이었다. 지금은 금강교 앞에 차를 두고 금강교~전나무 숲~일주문~해탈교~생태통로~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이 됐다. 금강교에서 일주문까지는 흙길이고, 나머지는 데크로드가 깔린 무장애길이다. 휠체어를 타고서도 갈수 있는 길이라는 뜻이다. 총 길이는 1.9㎞, 40분이면 충분히 걸을 수 있다.
폭설이 내린 덕분에 겨울의 운치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전나무 숲 덕분에 정신이 맑아졌는데 온 세상이 눈으로 덮여 마음까지 하얗게 됐다.
'뽀드득~뽀드득~.' 서울에서는 눈을 밟아도 들리지 않던 발자국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안내를 맡은 최일선 문화해설사는 "서울에 살다 보면 세상살이에 시달려 눈 밟는 소리마저 잊고 지내는데 여기 평창에서는 언제든지 들을 수 있다. 평창의 소리이다"라며 웃었다.
폭설이 내렸지만 서두를 필요도 없었다. 평지여서 눈을 온몸으로 맞으면서 걸었다. 아무도 걷지 않은 뽀얀 눈길에 때묻은 발자국을 남기려니 미안한 감마저 들었다. 40여 분 만에 한바퀴를 돌고 월정사 입구에 들어서니 경내도 완전히 눈에 뒤덮여 있었다.
하얀 세상에 울려 퍼지는 목탁 소리는 청명하고 아름다웠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외려 경외감마저 들었다. 용금루에 기대서서 정면의 팔각구층석탑과 적광전을 하염없이 쳐다봤다. 눈은 속세의 때를 덮고도 남을 정도로 내렸다.
◇여행정보=서울에서 월정사까지는 차로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입장료는 어른 3000원, 어린이 5000원. 주차료 4000원. 진부면에는 밀브릿지가 있다. 방아다리약수터와 전나무 숲길, 건축가 승효상씨가 지은 숙박시설 등이 있다. 입장료 어른 2000원, 어린이 1000원. 033-335-7282.
이석희 기자 seri1997@joongang.co.kr
기사원문보기 http://isplus.liv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21200241&cl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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