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년만에 역사 되찾는 오대산…조선왕조실록·의궤 돌아온다 [e즐펀한 토크](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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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23-12-04 14:40 조회1,582회 댓글0건본문
12일 오후 강원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 월정사 입구에 있는 왕조실록·의궤박물관. ‘전시실 리모델링 공사를 위한 임시휴관 안내’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고 박물관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이 박물관은 오대산사고에 소장돼 있던 왕실 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과 조선왕조의궤(朝鮮王朝儀軌)를 테마로 2019년 9월 연면적 3537㎡ 규모(지상 2층 건물)로 개관했다. 전시실은 총 6실(1244㎡)을 갖췄고, 200여점의 유물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새해 첫날인 1일부터 리모델링 공사를 위한 휴관에 들어갔다.
15억여원 예산에...‘환지본처’ 탄력
개관한지 3년 조금 넘은 박물관이 새단장에 나선 건 조선왕조실록과 의궤가 110년 만에 타향살이를 마치고 평창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동안 박물관에는 영인본(影印本·복사본)이 전시돼 있었다.
지난달 24일 오대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의궤의 평창 이관과 관련된 ‘국립조선왕조실록전시관’ 운영 예산 15억4200만원이 포함된 2023년 정부 예산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환지본처(還至本處·제자리로 돌아감) 작업이 탄력을 받게 됐다.
국립조선왕조실록전시관은 이번에 리모델링에 들어간 왕조실록·의궤박물관을 말한다.
실록 110년, 의궤 101년 만에 ‘제자리’
현장에서 만난 이병섭 월정사 기획팀장은 “조선왕조실록과 의궤를 보관하고 전시하려면 내부를 전체적으로 바꿀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앞으로 리뉴얼 담당자가 배정되고 본격적인 공사가 진행되면 기존에 있었던 영인본을 어떻게 운영할지도 평창군 등과 협의를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전시실 리모델링 공사가 마무리되면 오는 10월 조선왕조실록·의궤를 박물관으로 옮겨 재개관할 계획이다. 이번에 실록·의궤가 평창으로 돌아오면 실록은 110년, 의궤는 101년 만에 제자리를 찾게 된다.
한국전쟁 당시 불에 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가 1992년 복원된 오대산사고의 활용 방안도 관심사다. 이번에 돌아오는 조선왕조실록·의궤는 일제에 약탈 당하기 전까지 오대산사고에 보관돼 있었다. 현잰 비어 있는 상태다.
1913년 일본이 강제 반출
오대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의궤 범도민 환수위원회 지형근 사무총장은 “오대산사고에 1913년까지 실록과 의궤가 있었는데 일본이 강제 반출을 하면서 110년을 떠나 있었다”며 “원본은 박물관에 전시하고 영인본은 오대산사고에 전시해 학생들의 교육 장소로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1913년과 1922년 일제에 의해 강제 반출된 오대산사고본 실록과 의궤는 고향으로 돌아오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1965년 한일협정으로 약탈 문화재의 반환 청구권을 상실한 정부를 대신해 월정사 등 민간단체가 문화재 환수운동을 펼쳤다. 이후 2006년과 2011년에 어렵게 국내로 돌아왔다.
당시 정부가 문화재 보호법의 규정과 보관 장소 적정성, 학술 연구 등을 이유로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할 것을 결정하면서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정부 대신 민간단체 환수 운동 적극 펼쳐
이에 월정사를 중심으로 한 지역사회단체 등에서 반환 캠페인이 이어졌다. 오랜 기다림 끝에 문화재청과 월정사 등은 모두의 의견을 반영, 국립조선왕조실록전시관을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월정사가 오대산사고본 실록·의궤의 오대산 봉안을 위한 항온·항습 시설을 갖춘 왕조실록·의궤박물관을 문화재청에 기부채납하기로 했다. 이를 받아들인 문화재청은 행정안전부와 전시관 운영 인원 등에 관한 법률적·행정적 검토를 모두 마무리한 후 이번에 국회 예산까지 세워졌다.
퇴우 정념 월정사 주지스님은 “오랜 기간 문화재제자리찾기 운동을 하면서 오대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과 의궤의 환지본처를 지속해서 얘기해 왔다. 이것은 모든 사물은 제자리에 있을 때 비로소 빛을 발할 수 있다는 만고(萬古)의 진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자연의 순리대로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며 “포기하지 않고 원력(願力)을 모아 어려움에 함께 맞선 많은 분의 노력이 쌓여 우리 문화재의 제자리 찾기가 가능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강원도와 평창군 철저하게 환수 준비
강원도와 평창군도 조선왕조실록과 의궤가 110년 만에 평창으로 귀환하는 만큼 환수 준비를 철저히 할 방침이다. 강원도와 평창군은 9000만원씩 1억8000만원을 들여 국립조선왕조실록전시관이 문을 여는 10월 중 세조 순행 재현 등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김진태 강원지사는 “조선왕조실록과 의궤의 귀향은 강원 도민과 불교계의 염원, 정부와 국회의 노력이 모여 맺어진 결실”이라며 “환수 준비를 철저히 하고 관련 문화콘텐트 발굴에도 힘쓰겠다”고 말했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왕조의 제1대 왕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 472년(1392~1863년) 동안 벌어진 역사를 시간 순서에 따라 편년체(編年體·역사의 기록을 연·월·일 순으로 정리하는 편찬 방식)로 기록한 역사서다. 조선왕조실록엔 조선시대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다양한 역사적 사실이 수록돼 있다.
조선 이해하는 귀중한 문화유산 잘 보존해야
조선시대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사료로 세계적으로도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1973년 12월 31일 국보로,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됐다. 전쟁이나 화재로 인한 소실을 막기 위해 춘추관과 묘향산, 태백산, 오대산, 강화도 마리산 등 전국 5곳에 사고를 설치해 보관해 왔다.
의궤는 조선왕실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그 내용을 기록과 그림으로 정리한 국가기록물이다. 의궤 역시 태조 때부터 편찬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임진왜란을 겪으며 조선전기의 의궤들은 모두 소실됐고 남아 있는 것은 1601년부터 1942년 사이에 제작됐다.
현재 약 4000책의 의궤가 전해지고 있으며 이 중 1757건 2751책이 2016년 5월에 보물로 지정됐다. 국왕과 왕비의 국장(國葬) 관련 의궤가 가장 많고, 다음으로 세자 및 세자빈의 예장(禮葬) 관련 의궤가 많다.
2023-01-14
평창=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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