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성촌이나 명문대가를 비롯, 흔한 조선시대 인물도 희소한 곳이 평창군이다. 전통이 살아 있기는 하나 연원이 길지 않은 이 지역에 1970년대 탄광 붐을 타고 형성된 미탄면 창리, 율치리 등지에는 외부에서 유입된 광부와 가족이 여전히 남아 마을의 구성원이 돼 있다. 평창군 마을 공동체 구성원은 여느 광산도시처럼 토박이, 광부 등 광산개발 때 이주해 온 사람, 최근의 귀농 귀촌자로 구분될 수 있다. 한 데 어우러져 지속발전 가능한 공동체의 다양한 모델을 평창군에서 만들어 내고 있는 이들이다.
강원 산골의 3대 오지마을은 영월, 평창, 정선이다. 셋 중에는 군이 아니라 도호부가 설치된 영월이 으뜸이었다. 조선시대에는 8도 밑에 부·대도호부·목·도호부·군·현이 병렬적으로 설치됐다. 평창군이나 정선군보다 상위의 지방행정구역이 영월에 있었다. 아울러 단종이 유배돼 있던 것도 언제부터인가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영월 다음으로 효공왕후를 배출한 평창군에 이어 정선군 순서로 ‘영평정’이 정해진 듯하다.
- 【평창=뉴시스】강원도 평창군 오대산 서대 수정암. 월정사라는 틀 속에서는 승가공동체이지만, 동안거와 하안거 3개월씩은 물론 1년 내내 거의 승려 혼자 살아야 한다. 한강 수원지 우통수 옆에 세워진 서대는 공동체의 의미에 화두를 던진다. 2016-12-30
평창군에 있는 오대산 국립공원은 행복하다. 자원활동가 25명뿐 아니라 뜻이 있고 주말에라도 시간을 낸다면 국민 누구나 자원활동가가 될 수 있다. 오늘은 물론 내일, 나아가 다음 세대로까지 계속해 뜻을 같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속발전 가능한 공동체로서 자원봉사 모임이나 시민단체, 특히 환경단체가 손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관령을 넘는 세찬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생명을 유지하는 강한 들풀과 야생화는 희망찬 강원도와 평창군민의 공동체를 상징한다. 밝은 햇볕 아래 구름이 지나가며 잎에 그림자와 빛이 바뀌는 명암의 변화를 통해 낮과 밤, 긍정과 부정, 고통과 행복의 교차를 드러내기도 한다. 비바람과 함께 부드럽고 시원한 바람 등 한 순간도 같지 않은 풍경은 평창군민의 삶도 마찬가지라고 웅변한다. 세찬 바람은 열악한 현실인 동시에 긍정적인 마인드를 지닌 군민에게는 도약할 수 있는 자극이다. 미래 에너지인 풍력발전을 위한 바람개비는 낭만적인 네덜란드의 풍차가 아니다. 급변하는 현대 도시문명과 자연환경 보호가 조화를 이뤄야 하는 불편한 미래를 의미할 수도 있다. ‘미래소년 코난’에 나온 ‘인더스트리아’의 한 장면을 떠올릴 지도 모른다. ‘평창 700’이라는 또 다른 메타포가 드러나게 할 수도 있겠다. 해발 700m 지점이 가장 행복한 고도라고 평창 700이다.
- 【평창=뉴시스】생태환경의 보고인 강원도는 산소를 주는 허파와도 같은 곳이다. 그러나 평창 사람들은 힘들다. 문화시설과 사회간접시설이 부족하다. 2016-12-30
황병산사냥놀이 보존회 등 전통문화를 가꾸는 평창군민은 모두 2018 동계올림픽에 대비, 한 두가지씩 염원하는 것이 있다. 평창군을 찾는 내외국인에게 평창군 8개 읍면의 전통문화를 보여주고자 한다. 이런 주민이 공동체를 만들어 문화참여를 확대하며 진정한 의미의 문화융성을 시도한다.
오대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 문화재제자리찾기운동은 월정사를 떠나 전국 규모로 활동 중이다. 하지만 월정사를 중심으로 한 불교신자와 진부면민은 탑돌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위해 뭉치고 있다. 주제는 바꿨지만 주체가 되는 사람은 대부분 그대로다. 공동체가 목적이 달성되거나 변경돼도 지속되고 발전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사람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임이 확인되는 지점이다.
- 【평창=뉴시스】아득히 멀리 보이는 병풍같은 태백산맥의 모습은 다른 지방에서 보기 힘든 광경이다. 어느 산에 올라가도 숲이 있는 산으로 가득한 강원도다. 영화 ‘웰컴투동막골’의 촬영지 평창군은 강원도에서도 가장 큰 ‘산림수도’다. 2016-12-30
사회간접자본의 확충도 좋고 문화적인 발전도 좋다. 그래도 강원도의 ‘감자바우 인심’만은 변치 않기를 다들 바란다. 아케이드를 설치하지 않고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한옥 저자거리로 거듭나 이효석이 그린 봉평장이 되는 것도 고맙고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치 있는 것은 강원도의 넉넉한 정이리라.
미국 시카고대 교수 노먼 매클레인의 자전적 소설이 원작인 영화가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1992)이다. 로버트 레드퍼드 감독의 이 작품에서 브래드 피트가 플라잉 낚시를 하는 모습은 부럽다. 창리천은 평창군 미탄면 기화리에서 다시 솟아오르며 추운 날 새벽 안개를 피워내는 그림 같은 장면을 빚어낸다. 절경에서 플라잉 낚시를 못해도 좋으니 이 생태경관 보존지역이 영원히 그대로이기를 원하는 마음들이다.
- 【평창=뉴시스】오대산 월정사. 한적한 공간에서 묵언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바라보며 치유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2016-12-30
TV 드라마 ‘전원일기’를 통해 마을공동체의 전형처럼 된 양촌리 사람의 관계망이 이곳 계촌에서 새로운 실험으로 진행되고 있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주민의,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마을공동체인 계촌마을 에 맞는 새로운 액션플랜을 가동 중이다. 아무것도 없는 작은 마을 계촌에서 클래식을 교육한다. 학생, 부모, 교사가 다양한 활동으로주민의 전반적인 생활에 기쁨과 보람을 선사하고 있다. 취미가 같은 아이를 통해 반가운 이웃이 늘고, 살고 싶은 마을로 거듭나게 하고자 주민이 행복추구를 주도하고 있다. 계촌초등학교에는 왕따가 없다. 친구를 매우 소중히 여기는 평창군은 유학 권유지이기도 하다.
동계올림픽으로 하나되는 평창군의 공동체 가운데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은 다양하다. 새로 들어왔건 예전부터 살아 온 사람이든 연결고리가 매우 탄탄하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이해타산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공동체는 돈을 금기시한다. 열정으로 뭉쳐있다. 바로 이 ‘정’으로 공동체는 발전을 꾀한다.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은 “2018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평창군을 비롯한 강원도의 공동체가 지속가능한 발전모델을 확립해서 문화올림픽으로의 미래유산을 잘 활용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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