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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용택
평창미술인협회 회장 |
1788년(정조12년) 정조의 어명으로 금강산 및 관동팔경지역을 그린 금강사군첩(四郡帖) 60폭을 제작하였는데 금강산화첩,또는 해산첩(海山帖)으로 불린다.이 화첩은 김홍도가 44세때 금강산 지역을 직접 답사여행하여 그려온 초본에 의거하여 채색횡권본과 화첩본으로 제작하여 정조에게 진상하였다.
그중 횡권본은 정조가 신하들에 보여주며 제화시를 짓게 하기도 하였으나 그 후 화재로 소실되었다고 전해진다.한편 화첩본은 정조의 아들 순조가 매제인 영명위 홍현주에 하사 하였고 아들 홍우철에게 전해진 이후의 전래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이러한 사실은 강세황의 ‘유금강산기’ 등 수많은 문헌을 통해 알 수 있다.1995년 단원 김홍도 탄신 250주년 기념 특별전에 소개된 금강사군첩은 김홍도의 진작이 아닌 임모작(臨模作)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당시 도화서 화가인 김홍도의 필치를 잘아는 뛰어난 도화서 화가들이 정밀하게 임모하였기 때문에 김홍도 원작의 구도와 필치를 완벽하게 보존하고 있고,화풍상의 특징도 상당히 잘 유지하고 있다.당시 김홍도의 여정은 동료 김응환과 함께 한양에서 평창,강릉,양양,속초,고성을 거쳐 내금강과 외금강의 절경을 그리게 된 것으로 보인다.금강사군첩의 첫페이지에 그려진 작품이 평창군 진부면 마평리에 있는 청심대이다.한양에서 출발하여 강릉에 도착하기 하루전에 머무르는 평창군 진부면 마평리는 말을 갈아 타는 역사가 있는 곳이기도 하여 이곳에서 기생 청심이의 절개 어린 유래를 들었을 것이고,청심대의 유려한 경치에 감탄하여 첫 작품을 그리게 되었을 것이라고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림속에는 역사가 있었던 마을을 상징하듯 말 두필이 그려져 있고 청심대 위에는 유랑을 즐기는 갓을 쓴 선비들이 그려져 있어 당시에도 많은 유랑객들이 찾아 왔던 명소였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김홍도는 그 여세를 몰아 오대산에 올라 월정사와 오대산 사고,중대,상원사 등 평창군 진부면에서만 모두 다섯점의 명작을 탄생시켰다.
최근 59호선 국도의 선형개량으로 한적해진 마평리에 오면 여유롭게 양수대감과 청심이의 애틋한 사랑이야기와 함께 명화의 탄생지 청심대와 김홍도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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