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는 힘껏 껴안을 共業衆生… 그들 고통 외면 못해 거리로 나섰다 (1월23일-현대불교신문)
페이지 정보
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7-01-24 09:20 조회8,553회 댓글0건본문
▲ 1년이 지났지만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은 여전히 어색하다. 쭈뼛거리며 맞잡은 손이지만, 종교인으로서 사회 책무를 다하겠다는 의지만큼은 결연하다. 왼쪽부터 양한웅 집행위원장, 부위원장 도철 스님, 위원장 혜용 스님, 실천위원 혜문ㆍ법상 스님, 김한나 간사.사진=노덕현 기자 |
2015년 12월 노동위 확대 개편
실천위원 스님들 20명 꾸려져
고금·법상·혜문 스님 등 주축
사회 현장서 활동한지 1년 돼
‘수행자가 무슨 사회참여’ 핀잔도
“승복입고 선뜻 나서기 쉽지 않아
도반 스님들 함께하니 용기 내”
소속감·연대의식도 생겨나
[현대불교=박아름 기자] ‘수행자가 무슨 사회참여냐’는 핀잔을 듣는 일이 허다했다. 때로는 손가락질하며 고함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약자를 보듬겠다는 가슴 속 서원은 더욱 굳건해졌고, 승복을 입고 흙바닥에 앉길 주저하지 않았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이하 사회노동위) 실천위원 스님들의 이야기다.
사회노동위 실천위원단은 2015년 12월 노동위원회가 사회노동위원회로 확대 개편되며 꾸려졌다. 양한웅 집행위원장과 김한나 간사 등 실무진을 주축으로 위원장 혜용 스님, 부위원장 도철 스님, 실천위원 고금·법상·혜문·혜찬 스님 등 20명이 활동 중이다.
그동안 광화문 광장서 시민들과 함께 촛불을 들고, 세월호 참사 해역에 나가 미수습자 9명의 이름을 목 놓아 외쳤다. 백남기 농민의 부검 반대 및 정부 사과를 촉구하며 조계사부터 서울대학병원까지 오체투지를 했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초청해 월정사서 산사음악회를 열기도 했다. 수많은 사회 현장서 동분서주했던 지난 1년. 과연 무엇이 이 스님들을 거리로 나서게 했을까.
“약자 고통 외면할 수 없다”
스님들이 사회노동위 실천위원에 합류하게 된 이유는 제각각이다. 출가 전부터 사회 현안에 관심이 많았던 스님이 있는가 하면, 출가 후 경전 공부를 하다 약자를 돌본 부처님 모습을 보고 관심을 갖게 된 경우도 있었다. 혜문 스님은 전자의 경우다.
▲ 촛불집회에 참여한 어린 아이에게 연등을 전달하는 실천위원 혜문 스님 모습. 현대불교 자료사진 |
“청년시절부터 불합리한 사회구조에 대해 비애를 느꼈습니다. 그러나 출가 후엔 산중에서 수행에 매진하느라 잠시 잊고 지냈는데, 어느 날 TV 뉴스를 보게 됐습니다. 그 순간 ‘여전히 밖에선 치열한 노동쟁의가 벌어지고, 억울한 사람들이 죽어 가는데 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구나’라고 자각했습니다. 이대로 시대에 편승할 수 없단 생각을 하고 있는 찰나, 실천위원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그런가 하면 고금 스님은 “선방에서 <법화경>을 공부하며 사회와 개인이 둘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부처님 가르침을 공부하면서, 또 대중에게 강의하면서 스스로 실천하지 않는 것은 이치가 아니다”며 “수행자가 시주 받고 공부에 매진할 수 있는 것도 대중들의 피와 땀 덕분이라 생각한다. 그것을 그들에게 돌려주지 못하면 나 혼자 편히 사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초창기엔 모든 것이 낯설었다. 승복을 입고 거리에서 목탁을 치고, 염불을 왼다는 것이 여간 어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양한웅 집행위원장은 1년 전을 회상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처음엔 길거리에서 북과 목탁을 치라고 하니 스님들이 얼마나 쭈뼛거렸는지 모릅니다. 거기다 행사 때마다 기자들이 코앞에서 사진을 찍으니 어쩔 줄 몰라 하는 스님들도 있었어요. 이제야 스님들이 조금씩 편안하게 활동하세요.”
사람들의 시선도 달갑지만은 않았다. 물론 거리로 나선 스님들을 환영하는 시민들이 많았지만,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스님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약자의 고통을 외면한 채 홀로 수행은 아무 의미 없다’는 일념에서다. 몇몇 스님들은 이를 두고 ‘수행자로서 당연한 책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위원장 혜용 스님은 “스님들이 왜 사회문제에 관여를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은 수행과 실천이 별개라는 이분법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라며 “종교인의 사회참여는 수행자의 의무와 다름없다. 고통 받는 당사자의 입장서 생각하면 당연히 그들을 위해 나서야한다”고 말했다.
또한 혜문 스님은 “사회·정치·종교는 각각 독자적이고 폐쇄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역사적으로 나라가 위급한 때 스님들이 이를 방관한 적은 없었다”며 “진정한 종교는 올바른 정치가 실현되고 민생이 풍요롭기 위해 제 목소리를 내야한다. 민중과 함께해야 수행도 완전해질 수 있는 것”이라 강조했다.
하지만 스님들은 자신의 책무를 다할 뿐 반대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결코 책망하거나 비판하지 않는다. 도철 스님은 “당연히 다양한 시각이 있다. 반대하는 사람들도 자신만의 가치관이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종교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뿐, 누구에게 환영받고자 이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종교인의 사회참여는 비판받는다고 그만둘 일이 아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처음엔 스님들이 약자의 편에 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스님들은 누구의 편이기 때문에 거리로 나선 것이 아니다. 다만 수행자로서 중생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을 뿐이다.
▲ 부위원장 도철 스님이 시민의 손을 맞잡고 힘을 북돋아 주고 있다. 사진=노덕현 기자 |
스님들이 말하는 정원 스님·세월호
사회는 ‘사람들이 부대끼며 사는 현장’이다. 아름답기도, 치열하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실천위원 스님들이 뛰어든 사회는 갈등과 번민이 가득한 곳이다. 애초에 아름다운 어떤 것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눈앞에 목도한 현실은 스님들을 참담하고 좌절케 했다.
특히 얼마 전 광화문 광장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주장하며 소신공양한 정원 스님은 실천위원 스님들에게 아픈 손가락으로 남았다. 실천위원으로서 함께 활동한 것은 아니지만, 같은 길을 걸어온 도반을 먼저 떠나보낸 슬픔이다. 혜문 스님은 정원 스님을 보며 자신의 모습을 돌아봤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을 하며 광화문 광장에서 몇 번 뵀습니다. 항상 시민들 속에서 미소를 잃지 않고 활동하셨습니다. 그런 정원 스님이 소신공양을 하셨단 소식을 듣고, ‘내 자신이 그만큼 열심히 했나’란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동국대학교에서 수학 중인 고금 스님은 종종 학생들에게 정원 스님 관련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불교는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자살하지 말라고 가르치는데 스님이 소신공양한 것이 옳은 일이냐는 질문이다.
“이러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안타깝습니다. 정원 스님은 누구를 미워하거나 싫어해서 소신공양하신 것이 아니라 민중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신 거라 생각합니다. 절망이 아닌 희망으로 봐야합니다. 정원 스님이 먼저 떠나신 것은 매우 슬프지만, 자랑스럽습니다.”
또한 ‘세월호’도 빠질 수 없는 얘기다. 미수습자 9명이 하루빨리 돌아오길 바라며 진도 팽목항에서 추모기도를 올렸지만 대답 없는 메아리에 직접 참사해역으로 나갔다. 삼킬 듯 몰아치는 파도가 무서웠지만, 그곳에 잠겨있는 아이들을 차마 잊을 수 없었다.
법상 스님은 “처음 배 타고 나갔을 때는 사실 섬뜩했다. 바닷물이 새카맣고 파도가 거셌다. 하지만 어린애들이 아직도 거기 잠겨있다고 생각하니까 도저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울컥하고 흥분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특히 폭염이 내린 2016년 여름, 세월호의 조속하고 온전한 인양을 촉구하며 광화문 광장서 올린 72시간 릴레이 기도는 힘들었던 만큼 가장 기억에 남는다.
양한웅 집행위원장=잠 한 숨 자지 못했던 72시간 릴레이 기도는 개인적으로 기억에 많이 남는다. 고생 정말 많이 했다. 하루가 왜 그렇게 긴지 김한나 간사에게 ‘큰일 났다. 이걸 어떻게 끝내냐’고 푸념하기도 했다. 근데 기도를 마치고 나서 얼마 후, 세월호 선수들기가 진척이 됐다. 사회노동위 스님들 기도 원력이 대단한 것 같다(웃음).
김한나 간사=맞다. 세월호 기도회를 할 때마다 신기하게도 인양이 조금씩 진척됐다. 11월 말에 광화문서 기도회 봉행한 후에도 선미들기가 상당히 진척됐다. 조그맣게라도 진전이 있으니 힘들더라도 보람 있다.
▲ 실천위원 고금 스님이 지난해 3월 30일 ‘위안부문제 해결 촉구’ 기도법회서 법고의식 중이다. 현대불교 자료사진 |
함께였기에 가능… 앞으로 계획은?
만약 실천위원단이 구성되지 않았다면 스님들은 혼자서라도 광화문 광장에 서있었을까? 아니면 굴뚝같은 마음만 간직한 채 산중서 지켜보고 있었을까? 문득 궁금했다. 각자의 성향에 따라 달랐겠지만, 분명한 것은 함께였기 때문에 용기 낼 수 있었단 점이다. 인터뷰에 응한 모두가 ‘혼자보다 여럿이라 좋다’고 말한 것이 그 사실을 입증한다.
법상 스님=혼자였다면 겸연쩍기도 하고, 사람들이 ‘혹시 저 스님이 혼자 잘났다고 저러는 거 아닌가’라고 오해할까봐 선뜻 나서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여러 도반 스님들과 함께하니 그런 부담이 적다. 승복을 입고 사회문제에 나선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커다란 결심이 필요하다. 책임감과 사명감이 따르는 일이다.
혜문 스님=여러 스님들이 함께하면 확실히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뜻을 피력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소속감과 연대의식이 생기기 때문에 실천위원 스님들 간 관계도 돈독해진다.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실천위원단의 인원을 늘릴 필요성도 느낀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