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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어떤 문화유적 있나? (2월23일-월간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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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7-03-06 09:24 조회8,34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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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단, 22개 국립공원 설화·전설집 이어 ‘국방유적’ 자료집 발간

우리나라 산은 고대문명의 발상지다. 한민족의 시원(始原)이기도 하다. 우리의 조상이 산에서 시작됐고, 우리 문화의 주류를 이루는 수많은 사찰과 서원들이 산과 산언저리에 있다. 각종 문화재와 산성, 봉수대 등 수많은 문화유적들이 산에 산재해 있다. 우리 문화재의 70% 이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집계된 자료가 없어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더 높지 않을까 여겨진다. 산에 갈 때마다 이러한 문화재를 관련기관에서 분야별로 제대로 한 번 정리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던 터였다. 

이번에 국립공원관리공단(이하 공단)에서 두 번째 자료집이 나왔다. 첫 번째 자료집 ‘설화와 전설’에 이어 ‘국방유적’을 발간한 것이다. 전국 22개 국립공원에 있는 문화자원을 주제별로 집중 조사해서 정리하는 작업의 일환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펴낸 문화유적 자료집 중 2015년 발간한 설화 및 전설집과 2016년 연말 나온 국방유적 자료집.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펴낸 문화유적 자료집 중 2015년 발간한 설화 및 전설집과 2016년 연말 나온 국방유적 자료집.

2014년 수립한 ‘국립공원 문화자원 자료집’ 제작계획에 따르면 2015년 설화 및 전설, 2016년 국방유적, 2017년 문학, 이후엔 그림 사진, 인물, 산업 유산 및 제사유적, 종교유적, 금석문 등으로 나눠져 있다. 계획이 끝나는 2021년쯤에는 우리나라 국립공원에 있는 문화유적에 관한 정보가 어느 정도 정립되지 않을까 여겨진다. 

그러면 우리나라 국립공원과 산에는 어떤 국방유적이 있을까? 이번에 발간한 국립공원 문화자원 자료집 국방유적에 소개된 내용을 살펴보자. 

국방유적 자료집에는 산성 49개, 진·보루·돈대 11개, 봉수대 14개, 병영·주둔지 8개, 전적지 5개, 승영사찰·부도탑 5개, 비석 7개, 근·현대 유적지 7개, 그리고 역사로 보는 국방유적 이야기 16개 등으로 나뉘어 있다. 
 

북한산에 있는 북한산성은 우리 산의 가치 있는 문화자원 중의 하나로
북한산에 있는 북한산성은 우리 산의 가치 있는 문화자원 중의 하나로 체계적인 관리와 보존뿐만 아니라 후세에 널리 알려야 할 문화유적이다
월악산 덕주산성은 국방유적지인 동시에 많은 전설을 간직한 문화자원이다.
월악산 덕주산성은 국방유적지인 동시에 많은 전설을 간직한 문화자원이다.
소개된 산성 49군데는 추성산성, 북한산성, 남산산성, 입암산성 등 전국 국립공원에 있는 산성을 총망라했다. 몇 군데만 추려 보면, 지리산에 있는 추성산성은 ‘지리산 자락 해발 900m에 위치한 포곡식 산성이다. 신라가 가락국을 침범할 때 가락국 양왕이 군마를 이끌고 이곳으로 피란해 군마를 훈련시켰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삼국시대에 군사적 필요성에 의해 축조된 것으로 알 수 있다’고 정리돼 있다. 

또 권금성에 대해서는 ‘설악동에 있는 고려시대 산성이며, 설악산 화채봉 동쪽에 위치한 봉화대를 택해 축성한 복곽식 석축산성이다. 천연의 암벽 요새지로 산억산성·옹금산성·토토성이라고도 한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옹금산석성은 양양도호부의 북쪽에 위치하며, 둘레 1,980보의 규모로서 비가 내리면 암석 사이에서 물이 솟아올라 샘을 이룬다는 내용으로 처음 등장한다. 옛말에 전하기를 권씨와 김 씨 두 집안이 이곳으로 피란했다고 해서 이름이 유래했다. 유적의 사용 시기는 기존의 삼국시대 신라가 아닌 13세기 중반에서 고려 말까지 사용된 것으로 생각되며, 몽골군의 침입과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시기에는 주민들의 피란처로서 사용됐던 권금성이 조선 초기 왜구의 침입이 수그러들자 효용성이 떨어져 폐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기록하고 있다. 

산성에 대한 정보를 개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축성연대, 용도, 위치, 주변상황 등을 소개하고 있다. 

2021년까지 인물·제사유적· 종교유적 등도 펴낼 계획

국보 제3호인 북한산 진흥왕순수비에 대해서는 ‘북한산 비봉에 있는 신라시대 비석이며, 진흥왕은 백제의 성왕을 전사시키고 이듬해인 재위 16년(555) 10월에 북한산 비봉에 순수비를 세워 이곳이 신라의 영역에 들어갔음을 천명했다. 비석은 한때 무학대사 혹은 도선국사의 비라고 잘못 전해 내려오던 것을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순조 16년(1816)과 그 이듬해 두 차례에 걸쳐 비봉에 올라 비석을 조사하여 진흥왕순수비임을 밝혀냈다. (후략)’ 고 기록했다.

근현대 유적지에는 일본군과 빨치산에 대한 역사의 현장을 소개함으로써 후손들에게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게 하고 있다. 


한려해상동부사무소 제승당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자취를 간직하고 있는 문화자산이다
한려해상동부사무소 제승당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자취를 간직하고 있는 문화자산이다
변산반도에 있는 정유재란 호벌치 전적비.
변산반도에 있는 정유재란 호벌치 전적비.

역사로 보는 국방유적 이야기에는 그동안 우리가 알지 못했던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나라 잃은 백성들의 피란처 달궁광장에서는 ‘달궁은 달의 궁전이란 뜻으로 불렀다고 한다. 달궁은 반야봉과 지리산 서북능선 사이에 자리 잡은 천혜의 요새다. 삼한시대 진한과 변한, 백제의 연합군에 쫓긴 마한의 왕이 문무백관과 궁녀를 이끌고 지리산에 들어와 피란생활을 한 곳이라는 기록도 있다. 그때 임시도성이 있던 자리를 일러 달의 궁전이란 뜻으로 달궁이라 불렀다고 한다. 또한 근대사에서 달궁은 남부군의 이현상이 지리산 빨치산의 요충지로 사용하던 곳이기도 했다. (중략)’ 고 기록했다. 

심원의 달궁은 지리산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해 적을 방어하기 좋은 천연의 요새였던 것이다. 

그 외에도 가야국의 마지막 왕 구형왕이 쌓은 추성산성, 마의태자 염원이 담긴 한계산성, 호남 3대 산성 중 하나이자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한 적상산성, 오대산 월정사와 역사를 함께 한 사고사 영감사, 덕주공주 천년사직 신라를 재건할 훗날을 기약한 덕주산성, 백제 부흥군의 최후를 간직한 우금산성 등을 소개하고 있다. 

2015년 연말에 나온 설화 및 전설 자료집에는 전국 28개 국립공원사무소 문화자원 담당 직원들이 현장조사 및 문헌조사, 인터뷰, 관련 사진을 수집한 340편의 자료를 바탕으로 258편의 전설 및 설화와 주요 봉우리·계곡·섬·해안 등 260개소의 지명유래를 수록하고 있다. 

지리산편에서는 지리산 여산신과 이성계, 반야를 짝사랑한 마야고, 지리산을 귀양 보낸 이성계, 노고단 유래, 화엄사 각황전 중건 전설, 백무동 천왕할매와 법우화상, 음양수 전설, 노루목 이야기, 용추의 쌀바위, 칠불사 영지의 사연, 뱀사골 계곡 유래, 영원사 창건설화, 만복대·정령치 등 지명유래 이야기 등으로 구성돼 있다. 재미있는 읽을거리가 풍부하다. 

김종희 공단 자원보전처 부장은 “국립공원은 자연을 보존할 뿐만 아니라 이번 기회에 자연자원의 문화적 가치도 함께 보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자연자원과 문화자원이 함께 보전되면 대한민국의 문화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고 평가했다.

 

기사원문보기 http://san.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2/17/201702170248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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