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의 다섯가지 미덕 (2월25일-강원일보) > 언론에 비친 월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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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의 다섯가지 미덕 (2월25일-강원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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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7-02-25 08:50 조회9,4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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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눈이 내릴 거라는 일기예보에 귀가 번쩍 뜨인다.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눈이 성가셔졌는데 오대산 사진을 보고 마음이 변했다. 월정사 입구 눈 내리는 전나무길은 고요하면서도 신령스러웠다. 눈을 가득 얹은 월정사 탑은 선정에 든 스님 같고, 비로봉에서 바라본 첩첩 산은 장엄했다. 

예전에도 강릉을 오고 가다가 몇 번 월정사에 들렀고, 상원사에 한 번 오른 적이 있었다. 호기심에 들리기도 했고, 전나무길이 유명해서 걷기도 했다. 집안에 일이 생기면 마음의 위안을 얻기 위해 법당에 들기도 했다. 필요에 의해서 문득 찾았을 뿐이다. 

오대산은 예전부터 알려져 왔다. 7세기에 자장율사는 중국 오대산을 직접 보고, 귀국 후에 비슷한 산을 골랐다. 7년 후 어렵사리 찾아낸 산이 강원도 오대산이었다. 문수보살이 오대산에 머물고 각 봉우리마다 일만 보살씩 총 오만 보살의 진신(眞身)이 나타난다고 여겼다. 오대산 신앙은 화엄경의 청량산에서 유래한다. 불경에 등장하는 산을 중국인들은 실제 산으로 재해석했고, 우리나라도 영향을 받은 것이다.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가져온 불사리는 오대산 적멸보궁에 모셔졌고, 월정사와 상원사를 비롯해 다섯 봉우리마다 모두 절이 들어서면서 한국 불교의 성지가 됐다. 

오대산이 성지로 전국에 알려지면서 발길이 이어졌다. 매월당 김시습은 오대산 여기저기에 시를 남겼다. 중대(中臺)에 올라 바람을 쐬고 구름을 보자 노래가 절로 나왔다. `거문고에 바람 부니 부처님 말씀인 듯, 항아리에 구름 걸리니 신선 내려온 듯. 풍경 소리 아득히 솔바람 소리와 섞이니, 여래가 오묘한 불법 말씀하시는 듯.' 

요즘 오대산과 관련된 옛 문헌을 읽다 보니 유학자들은 오대산을 수백 편이 넘는 시로 노래하거나, 유람한 내용을 산문으로 남겨 유산기 문화를 꽃피웠다. 화가들은 질세라 화폭에 담았다. 김홍도는 월정사와 상원사, 중대와 오대산사고를 붓으로 재현했다. 민간신앙에서는 전나무길에 성황신을 모시는 성황당을 세웠다.

김창흡(金昌翕)은 1718년에 이곳을 둘러보고 남긴 `오대산기(五臺山記)'에서 오대산의 명성이 금강산에 버금가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어느 쪽이 으뜸이 될지 알지 못하겠다고 평가한다. 그 이유는 네 가지 미덕 때문이었다. 가볍거나 뾰족한 모습이 없고 중후해 덕이 있는 군자와 비슷한 점, 초목이 우거져 속세 사람이 찾아오기 어려운 점, 암자가 깊은 숲 속에 자리 잡고 있어 곳곳에서 여름 장마 때 외출하지 않고 한 방에 모여 수도할 수 있는 점, 다른 산과 달리 물맛이 아주 좋은 점이 그것이다. 

여기에 미덕을 하나 더 추가해도 되지 않을까. 오대산은 문수신앙의 본산이고, 문수보살은 지혜를 상징한다. 오대산의 지혜로움은 불교문화만 고집하지 않고 포용해 융합했다. 유학자들과 민간신앙도 받아들여 다양한 문화를 꽃피웠다. 불교만 고집했으면 오늘의 오대산 문화가 없었을 것이다. 자기 주장만 하는 혼란스러운 시국에 대한 해법을 오대산은 이미 오래전부터 보여줬다. 지금 출발하면 멋진 사진 작품 하나 정도는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혹 얻지 못하더라도 오대산의 미덕 중 하나 정도는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눈 속에 오대산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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