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오대산 자락에 어스름한 저녁이 찾아오자, 월정사 도량이 이내 시와 음악 등이 어우러진 ‘예술법석’이 펼쳐졌다.
제4교구본사 오대산 월정사(주지 정념스님)와 재단법인 율곡국학진흥원(원장 박용재)는 5월10일 경내 대법륜전 앞마당에서 ‘오대산 예술법석, 월정-달을 쓿다'를 개최했다.
부처님오신날 앞두고 열린 이번 공연은 단순한 산사음악회를 넘어, 오대산이 품은 종교적·인문학적 가치에 예술의 언어와 옷을 입혀 산문에 바치는 ‘헌정 콘서트’ 형식으로 치러졌다. 스토리텔링 산사음악회라는 새로운 지평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부제인 ‘쓿다’는 껍질을 벗겨 깨끗하게 한다는 뜻의 순우리말로, ‘월정(月精)’을 예술적으로 닦아내어 본연의 맑은 빛을 드러내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공연은 오대산의 동·서·남·북·중대 다섯 봉우리를 물, 꽃, 나무, 달, 그리고 님으로 상징화한 스토리텔링이 돋보였다.





1부 ‘시로 만나는 오대의 봄날’은 한국 연극계의 거목 박정자 배우가 사회를 맡아 이끌었다. 무대에 오른 배우 김상중, 서이숙과 튀르키예 출신 시인 아타세벤 파덴 씨 등은 각각 님과 깨달음(나옹선사), 물과 생명(김시습), 나무와 치유(율곡 이이·허균)를 담은 시를 낭송하며 여운을 남겼다.
특히 '꽃’의 무대에서는 문화인류학자 이희수 교수가 나서 남인도의 일상 민중예술인 ‘랑골리(Rangoli)’를 주제로 인문의 향연을 선보였다. 이 교수는 “집 안의 질서와 밖의 혼돈 사이, 문턱 바닥에 매일 쌀가루로 그리는 꽃 그림 랑골리는 화학물질을 일절 쓰지 않고 외부의 부정을 막는 시각적 기표이자 제행무상(諸行無常)과 새 출발을 의미한다”며 “종교의 문턱을 넘어 예술적 영성으로 삶을 정화하는 이번 예술법석의 의미와도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2부는 예술감독 박용재 시인의 시에 뮤지션들의 선율이 더해진 본격적인 예술법석이 열렸다. 단 4개월의 짧은 준비 기간이 무색할 만큼 완성도 높은 무대가 연이어 펼쳐졌다. 크로스오버 테너 박완 씨와 재즈 보컬 남예지 씨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밴드의 앙상블과 어우러져 오대의 밤하늘을 수놓았다.
무엇보다 국보 제36호 상원사 동종에 새겨진 ‘주악비천상(奏樂飛天像)’을 현실로 소환한 무대가 눈에 띄었다. 국내 유일의 공후 연주자 조보연 씨와 생황 연주자 김효영 씨는 신비로운 화음을 선사하며 감동을 전했다. 여기에 대법륜전 외벽을 배경으로 세계적인 화가 이여운이 직접 그린 오대의 정경이 미디어 파사드로 펼쳐지며 시각적 장엄함을 보여줬다.
또한 이날 배우 유준상 씨가 깜짝 등장해 객석의 열띤 박수갈채를 받았다. 유 씨는 직접 작사·작곡한 ‘그냥 바람 한번 분 것처럼’ 등을 열창하며 관객들과 스스럼없이 호흡해 축제의 열기를 더했다.




바쁜 일정으로 참석하지 못한 월정사 주지 정념스님은 서면 인사말을 통해 “오늘 이 예술법석은 종교의 문턱을 넘어 인간이 가진 가장 고결한 정신인 ‘예술적 영성’을 통해 우리 삶을 정화하는 자리”라며 이번 행사의 의미를 강조했다. 박원재 율곡국학진흥원장 역시 “앞으로도 우리 전통문화가 대중 곁에 머물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겠다”며 “이처럼 아름다운 공간을 내어주신 교구장 정념스님과 월정사 사부대중에게 깊이 감사드린다”고 화답했다.
불교신문/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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