雉岳山上院寺事蹟碑記 > 탄허스님방산굴법어

검색하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행/신행Odae mountain Woljeongsa

마음의 달이 아름다운 절
탄허스님방산굴법어

탄허스님방산굴법어

雉岳山上院寺事蹟碑記


페이지 정보

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4-11-24 12:12 조회5,957회 댓글0건

본문

鶴城之東 有山하니 曰雉岳이라 卽李朝五百年 全盛時代 福國佑世之東岳檀也 傳曰 蛇沒雉飛兩解空하니 大小磬音四更中이라 雉蛇兩寃半宵解하니 正知無着報酬鍾이라하니 盖諸方禪林起寢之法 發於雉岳山이요 而山之得名雉岳者 亦以是也 山之上 有寺하니 曰上院이라 卽新羅敬順王師 無着祖師之所創也 國內 以上院名寺者 有三이어늘 而雉岳之上院 最居其高處하니 則四時之勝景 千里之壯觀 不言可想也 故無着 嘗爲歌曰 雉岳山兮 眞仙境이요 上院寺兮 安禪居로다 三龜石兮 助揚址 獅子石兮 寺擁護라하니 此其徵也어늘 而若夫桂樹之手植 騎龍之往來 尤其奇觀異跡也 興廢相尋하고 葺修相繼하야 懶翁之重建 卽李朝開國之初 月峰之重葺 嘉靖甲辰之歲 偉學之重修 乾隆戊午之歲 靜岩之修莊 乙巳春也 海峰之重修 癸亥秋也 三空之補修 光緖戊午年也 竺念之再建 韓末壬申歲也 庚寅 南北事變已來 寺宇荒廢하니 可謂門閣塵已沒이요 庭際苔已生이라 有慧圓上人者 來住此寺 有年矣 與化主 盧利生女史 同發重創之願하야 募緣鳩財하니 物若天來 功若役鬼 使法堂六間 禪說堂三間 寮舍十間 始於壬寅春하야 至翌年秋而落之라.
嗚呼 自有天地 卽有此山으로 而前乎數百載之旣往 後乎數百載之方來 未有如今日之盛事也 宜其慧圓上人之德海 與僉檀那之善根 如恒河沙不可量也로되 而能原始要終하야 勤勤成辦者 利生女史化主之力也 請余爲記 余略敍其顚末如右하야 以示來者云爾이라.
佛紀 二千九百九十三年 丙午 乾月 八日也
五臺山人 呑虛 金鐸聲 識
【번역】
학성 동쪽에 치악산이 있는데, 이조 5백 년의 전성시대에 나라의 복을 빌던 동악단(東岳檀)이다. 전기에 의하면, 뱀이 사라지고 꿩이 날아 모두 공()을 깨달음이여! 크고 작은 경쇠 소리 4경에 울리네. 꿩과 뱀의 원한 한밤중에 풀리니, 무착대사의 재()를 알리는 종소리를 알겠네. 하였다. 이것이 여러 선방에서 준수하고 있는 기침지법(起寢之法)이 치악산에서 나오게 된 것이다. 또 산의 이름을 치악이라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치악산 위에 하나의 사찰이 있는데 바로 상원사이다. 신라 경순왕의 국사 무착대사가 창건하신 사찰이다. 국내에 상원사라는 이름을 가진 절은 세 군데나 된다. 그러나 치악산의 상원사는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사계절의 아름다운 경치와 툭 트이게 보이는 장관(壯觀)은 말하지 않아도 상상할 만하다. 무착대사는 일찍이 시를 읊은 바 있다.
치악산이여 참으로 선경이요
상원사여 참선하기 아늑하다
삼귀석이여 절터를 감싸 주고
사자암이여 잘 지켜 주네
이 시는 위의 말을 증명해 준 것이다. 그리고 손수 계수나무를 심은 것과 용을 타고 오가시던 행적은 더욱 기관(奇觀)이며 이적(異蹟)이다. 하지만 흥망이 무상하여 수리와 보수를 해오다가 나옹스님께서 중건하신 것은 이조 개국 초요, 월봉스님께서 보수하신 것은 가정 갑진(1544)이요, 위학이 중수하신 것은 건륭 무오(1738), 정암이 보수하신 것은 을사년 봄이요, 해봉이 중수하신 것은 계해년 가을이요, 삼공이 보수하신 것은 광서 무오년이요, 축념의 중창은 한말의 임신(1872)에 있었다. 그 뒤 경인(1950)에 이르러서는 6․25사변 이후 법당이 황폐하여 가위 집에는 먼지가 쌓여 발이 빠지고 뜰에는 이끼가 돋아났다.고 할 만하다.
혜원스님이 이곳의 주지로 오랫동안 머물면서 화주 노이생 여사와 함께 중창할 원을 세워 인연을 모으고 재물을 마련함에 모든 물건은 하늘에서 내려 준 듯하였고, 일은 신명이 도운 듯하여, 법당 6칸과 선열당 3칸과 요사채 10칸을 임인년 봄에 시작하여 그 이듬해 가을에 낙성을 보게 되었다.
아! 천지가 있고 이 산이 생긴 후로, 수백 년의 이전과 수백 년의 이후에 오늘과 같은 성사가 있을 수 없다. 혜원스님의 공덕과 신도들의 선근이야말로 항하의 모래처럼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그 일을 책임지고 이룬 이는 노이생 여사의 화주에 의한 힘이다. 나에게 비문을 부탁하기에 나는 그 사실의 전말을 위와 같이 기록하여 후세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바이다.
불기 2993년(1966) 병오 4월 8일
오대산인 탄허 김택성 짓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