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學年先生墓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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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4-09-13 10:57 조회6,762회 댓글0건본문
觀鳳一羽에 足以知五彩之成章이요 喫肉一臠에 可以知全鼎之味니 何必多哉아 公의 姓은 朴氏니 籍出密陽이요 諱는 來永이요 字는 孟局이요 學年은 其號也라 考의 諱는 南軾이요 妣는 吳氏니 檀紀四二○六年癸酉五月五日에 生于密陽郡 山外面 多竹里하다.
自幼로 聰悟絶倫에 篤受庭訓하야 孝友를 行于家하고 忠信을 著于鄕하며 勤儉以持身하고 急難以周人하며 至於奉養叔母에 其誠이 過於養親하고 撫育舍侄을 過於親子하니 栗翁所謂孝友通神하고 至行範世者非也耶아 其天賦之性과 翫索之功은 可謂世希其人而尤精於理數之學과 詩賦之文하니 自少至老히 專任嶺南儒林水月會會長之職者是其徵也로다.
檀紀四二六七年正月十二日에 入寂于密陽邑內一洞本第하니 享年이 六十二歲也라 配는 羅州丁氏渭文之長女니 育四男三女하다 長子는 恩泰요 次子는 惠泰요 三子는 善泰요 四子는 慶泰요 長女는 岑劍요 次女는 奇花요 三女는 瑤草니 皆當世之仁人望士也라 盖世之懷奇不偶하야 無以自見於時하고 名湮沒而不著者何可勝數리오 若公者賢은 其人非耶아 嗚呼라 千里之足이 困於伏櫪하고 連城之珍이 或混瓦礫이니 不琢其章인들 於璧何傷이며 不駕以驤인들 奚損於良이리요 囑余爲銘커늘 余雖不文이나 不敢以牢讓故로 略敍其一羽一臠之顚末如右하야 以示來者하노라
應化 三千三年 丙辰 三月六日 淸明節
五臺山人 呑虛 金鐸聲 撰
【번역】
봉황의 깃털 하나로써도 오색의 찬란한 빛깔을 알 수 있고, 고기 한 점을 먹어 보면 솥 안의 음식 맛을 알 수 있는 것이지, 어찌 많은 것을 필요로 하겠는가.
공의 성은 밀양박씨이며 이름은 래영이며 자는 맹국이며 학년은 그의 아호이다. 아버지는 남식이며, 어머니는 오씨이다. 단기 4206년(1873) 계유 5월 5일 밀양군 산외면 다죽리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총명이 뛰어나고, 가정 교훈을 잘 받아서 효도와 우애를 가정에서 행하고 충성과 믿음이 마을에 알려졌으며, 근검으로 몸가짐을 가지고 남들을 보살펴 주고, 숙모를 어버이보다 더 잘 봉양하고, 조카를 친아들보다 더 잘 키웠으니 이것은 율곡 선생의 “효도와 우애가 신명에게 통하고 지극한 행동이 세상에 모범이 된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그 천부적인 성품과 읽고 사색하는 공부도 “세상에 그런 사람이 드물다.”고 하겠다. 이수(理數)와 시문의 학문에 더욱 능하여 젊어서부터 노년까지 영남 유림의 수월회 회장직을 맡아온 것은 그 중 일부분의 일이다.
단기 4267년(1934) 정월 12일에 밀양읍 내일동 본가에서 서거하니, 향년이 62세이다. 그의 부인은 나주정씨 위문의 맏딸이며 4남 3녀를 두었다. 장자는 은태, 차자는 혜태, 3자는 선태, 4자는 경태이며, 장녀는 잠검이요, 차녀는 기화, 3녀는 요초이다. 모두 당대의 어진 사람이요, 존경받은 사람들이다.
세상에 기재를 품고서도 때를 만나지 못하여 그 시대에 크게 나타나지 못하고 이름이 묻힌 자를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공처럼 어진 이가 바로 그런 사람이 아니겠는가. 아! 천리마가 마구간에 엎드려 있고, 여러 성과 맞바꿀 수 있는 구슬이 자갈 속에 묻혀 있는 경우도 있다. 아름답게 다듬지 않은들 구슬에 무슨 손상이 있으며 멍에를 씌우지 않은들 천리마의 유능함에 무슨 손상이 있겠는가.
나에게 묘표를 부탁하기에 내 비록 글을 못하나 감히 사양할 수 없어서 그의 봉의 깃털 하나와 고기 한 점의 사실을 위와 같이 서술하여 후대 사람들에게 보이는 바이다.
불기 3003년(1976) 병진 3월 6일 청명절
오대산인 탄허 김택성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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