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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性大宗師碑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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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4-06-14 11:27 조회6,3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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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性大宗師碑文
 
天地 從無相肖之一刻이요 古今 從無可據之一瞬이어늘 而欲出其智巧하야 與造化이면 亦愚甚矣 自古賢達之士 使之和豫 通而不失於兌하야 使日夜無隙하야 而與物爲春하나니 春性大宗師是其人也니라 宗師 昌林이요 俗姓 李氏 本貫 平昌이며 法名 春城이요 春性 其法號也 仁五 朴氏 檀紀四二二四年辛卯三月三十日 誕生於江原道麟蹄郡元通里하다 母之夢 見一童子乘五色雲而下降하야 入于懷中하고 遂有胎氣라하니 盖有自而來者也라.
生而氣骨 壯大하고 聰慧絶倫이라 九歲時 隨母入雪岳山神興寺하야 獻供中 瞻其佛像하고 以出家之志 告白한대 父母不許어늘 過四年後十三歲時 萬緣休罷하고 入百潭寺韓龍雲和尙會下하야 祝髮하고 二十歲 依楡岾寺東宣老師하야 受具足戒하다 自此 經學專攻하야 特以華嚴法師 名重於世하다 至四十歲時 嘆世無常하고 入德崇山滿空老師會下하야 參究西來密旨러니 老師一日 謂師曰 別傳一句在甚處 師震聲一喝한대 老師不肯이어늘 師於是 別立生涯하고 更加精進하야 脇不至席者積有年所而至五十歲時하야 在楊州興國寺結夏安居中 夢見滿空老師擧蓮花而示之하고 別傳一句 豁然悟得이라 因爲之頌曰 蓮花藏裡通身寒하니 大千沙界是我身이라 若人問我別傳句하면 問答卽是毘盧身이라호리라하시다 卽回老師呈似한대 老師黙然而止하다 又一日 花壇中弄花러니 老師忽問何等 是第一花 師便突起一擧한대 老師曰 此則且置하고 如何是第二花 師卽應聲大喝한대 老師微笑하고 便歸方丈하다 自此以往으로 縱橫淋 生熟 自在 何時不禪이며 何處非法 或放曠於漁村酒肆之中而不入世間하고 或逍遙於深山寂寞之中而不出世間이라 苦海波中 迷者亂者 浮者沈者忽然聞其聲而躍之어든 師以隻手 高張大悲之網하야 之以置樂岸焉하시니 此豈與物爲春 接而生時於心者非也耶 可謂名與實 相符 有不可掩者也로다 戊午年間 住錫于城南市奉國寺러니 一日召門人雪翁曰 見虛空骨髓 滿目靑山無寸樹하니 懸崖撒手丈夫兒니라 又偈曰 八十七年事 七顚八倒起로다 橫說與竪說이여 紅爐一點雪이다하고 奄然歸寂하시니 時當七月八日也 世壽 八十七이요 法臘 七十四也러라 囑余爲文하야 以示將來어늘 余不敢以不文而牢讓故 敍其顚末如右云爾로다
應化 三千八年 辛酉 五月 日也
五臺山人 呑虛宅成 謹撰幷書
【번역】
하늘과 땅에는 서로 닮은 시간이라곤 일각도 없고, 옛날과 지금에는 근거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한 순간도 없는데, 작은 지혜를 내어 천지의 조화와 다투려고 한다면 이 또한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므로 예부터 어질고 통달한 이는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일에 막힘이 없으나 즐거움으로써 잘못을 범하지 않고, 밤낮으로 빈틈이 없이 만물로 더불어 봄 날씨처럼 화기애애하다. 춘성 대종사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스님의 속명은 창림(昌林)이요, 속성은 이씨요, 본관은 평창이며 법명은 춘성(春城)이요 춘성(春性)은 그의 법호이다. 부친의 이름은 인오요, 모친은 박씨이다. 단기 4224년(1891) 신묘 3월 30일, 강원도 인제군 원통리에서 태어나셨다. 모친이 한 동자가 오색구름을 타고 내려와 품 안으로 들어온 꿈을 꾸고서 마침내 태기가 있었다 하니, 선사가 태어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스님은 태어나자마자 기골이 장대하였고, 여느 사람보다 총명스럽고 지혜로웠다. 겨우 9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를 따라 설악산 신흥사에 들어가 공양하다가 불상을 우러러보고서 출가하려는 뜻을 말씀드리자, 부모가 허락하지 않았다. 4년이 지난 13세 때, 모든 인연을 끊고 백담사 한용운스님 회하에 들어가 삭발하였고, 20세에 유점사 동선(東宣) 노스님에게 귀의하여 구족계를 받았으며, 그 후로 경학을 전공하였는데 특히 화엄법사로 명성을 드날렸다.
40세에 이르러 덧없는 세상을 탄식하고 덕숭산 만공 노스님의 회하에 들어가 달마가 서쪽에서 온 뜻에 대한 화두를 참구하였는데, 만공 노스님이 하루는 스님에게 교외별전(敎外別傳) 한 구절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묻자, 스님이 우레 같은 큰 소리로 한 차례 소리를 질렀지만, 만공 노스님은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스님은 그 후, 따로 자신의 삶을 설계하고 다시 정진을 더하여 자리에 눕지 않기를 1년여 동안이나 계속하였으며, 50세에 이르러 양주 흥국사에서 여름 안거를 하다가 꿈 속에서 만공 노스님이 연꽃을 들어 보이는 것을 보고서 교외별전 한 구절을 툭 트이게 깨달았다. 이로 인하여 게송을 지었다.
 
연화장세계 속에 온몸이 차가웁고
대천사계가 나의 몸일레라
어떤 사람이 나에게 별전구를 묻는다면
바로 비로신이라 답하리라
 
이에 곧 만공 노스님에게 돌아가 이 게송을 올리자, 만공 노스님은 말없이 앉아 계셨다. 또 어느 날 화단에서 꽃구경을 하였는데, 만공 노스님이 갑자기 어떤 것이 가장 으뜸가는 꽃이냐?고 묻자, 스님은 바로 주먹을 불끈 들어 보였다. 만공 노스님은 이것은 그만두고 어떠한 것이 두번째 가는 꽃이냐?고 물으니, 스님은 바로 큰 소리로 소리를 내지르자, 만공 노스님은 미소를 짓고 방장으로 돌아가셨다.
그 후로 종횡에 얽매임이 없고, 어떠한 일에 있어서도 자유자재하였다. 어느 때인들 선의 경지가 아니며, 어느 곳인들 법이 아니겠는가. 때로는 어촌과 주막에 방광하면서도 세간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때로 깊은 산 고요한 가운데 소요하면서도 세간을 벗어나지 않았다. 고해의 물결 가운데 혼미한 자, 어지러운 자, 들떠 있는 자, 잠겨 있는 자가 스님의 법문을 듣고 기쁨에 날뛰면 스님은 대비(大悲)의 그물을 높이 들어서 안락의 땅으로 옮겨 주셨다. 그는 만물과 더불어 봄이 되어 그를 마주하면 마음의 생기를 얻게 해준 이가 아니겠는가. 그는 이름과 실상이 서로 부합하여 감출 수 없는 이라 하겠다.
 
무오년경에 성남시 봉국사에서 주석하다가, 어느 날 문인 설옹을 불러 말하였다.
허공의 골수를 보았는가?
온 산에 작은 나무 한 포기 없으니
가파른 절벽에서 손을 뿌리쳐야 대장부이다.
 
이어 또 게송을 읊었다.
87년의 일이란
일곱 번, 여덟 번 넘어졌다 일어났노라
횡설수설이여
붉게 타는 화로 위에 한 점의 눈일레라
 
이에 곧 열반하시니, 때는 7월 8일이다. 세수는 87이요, 법랍은 74이다. 나에게 비문을 지어 훗날 전할 수 있도록 하여 달라고 청하기에, 나는 문장에 능하지 못한다는 말로 굳이 사양할 수 없어서 그의 전말을 위와 같이 서술한 것이다.
불기 3008년(1981) 신유 5월 일
오대산인 탄허 택성 삼가 짓고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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