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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潭大宗師舍利塔碑銘 幷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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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4-05-21 09:49 조회3,436회 댓글0건

본문

夫法王之爲體也 虛妙粹하고 炳煥靈明하야 卓然而獨存者也 自古賢達之士抱以法王之體하야 或鳴於西域하고 或鳴於東夏하야 聲振하야 以覺天下之大夢也하니 所謂一法之中 儒之植根 道之培根 釋之拔根者是也 迫而後하며 感而後하며 不得已而後 起則與陰同德하고 與陽同波하야 遂成不朽之業하나니 靑潭大宗師是其人也라.
宗師 俗姓 李氏 本貫 星山이며 俗名 讚浩 法名 淳浩 靑潭 其號也 化植이요 濟州高氏 檀紀四二三五年 壬寅十月二十日 誕生於慶南晋州市水晶洞하다 高氏之夢 曾見大鯉魚入堂하야 漸化爲靑龍하야 乘五色虹而昇天하고 遂有胎氣라하니 盖有所自而來者也로다 生而挺特 聰悟絶倫이라 二十四歲 晋州農校卒業하고 尋入日本兵庫縣松雲寺하야 以行者脩學이라가 至二十六歲時歸國하야 出家于玉泉寺하야 依映湖長老祝髮嗣法하니 於白坡律師 爲八歲孫也 二十七歲 入開雲寺講院하야 大敎修了하고 於是 有出塵之志하야 放捨敎義하고 入滿洲國水月禪師會下하야 問西來密旨하고 翌年 歸國하다 又入定慧禪院하야 安居中 有介入處하야 受滿空和尙之印하고 乃有詩曰 上來佛祖鈍癡漢 安得了知衒邊事리오 若人 問我何所能하면 路傍古塔 傾西方이라호리라하시니 此正宗師之三十六歲時也 自此 不以得少爲足하고 晦光韜迹하야 盖加精進하니 若妙香之雪嶺三載 雪岳之鳳頂三秋 固城之文殊十年等 皆勇猛保任之地也 自後二十年來 淨化運動之光驅 一出於忍俊不禁이요 一出於苦心致覺而亦所謂文殊 忘却來時路하고 普賢 相將携手歸者也로다 至於內而曹溪宗初代總務院長 中央宗會議長 海印寺住持, 正法守護殉敎團組織 東國學園理事長 禪學院理事長 佛敎再建非常宗會議長 信徒會總裁 統合宗團宗正之歷任 外而世界佛敎徒大會韓國代表 世界佛敎徒協會韓國支部委員長 韓國宗敎協議會議長 世界佛敎聯合會長 長老院長 等 推戴 及與國民勳章無窮花章之授與 東大名譽哲學博士學位之追敍 於宗師分上 皆爲緖餘則所謂塵垢粃糠으로 將猶陶鑄堯舜者非也耶 禪觀之餘 所著之書有靈山圖, 나의 人生觀, 現代 危機 佛敎, 마음, 信心銘講義, 般若經講義 等 盛行于世하다.
辛亥十一月十五日 化緣 已盡하야 奄然入寂하니 世壽 七十이요 法臘 四十五 以宗團葬으로 茶毘하야 得舍利十五顆하야 一分 安於道詵寺하고 一分 置於文殊庵하고 一分 藏於玉泉寺하다 舍利者 是梵語 總稱之謂靈珠也 別譯則有三義焉하니 曰精聚, 曰骨神이며, 曰不思議 盖所以精脩三學之結晶體也 七十年間 遊於幻海 或高超於深山幽谷之中而不出世間하고 或和光於紅塵紫陌之中而不入世間이라 入出 無碍하고 生熟 自在하니 可謂法王之功德身也로다 古人 云苗而不穗者有矣夫 穗而不實者有矣夫라하니 嗚呼 若宗師者 可謂苗而且穗하고 穗而且實者也 前乎百載之旣往 後乎百載之方來 未有如今日之盛事者也로다 銘曰
 
有自而來生而挺特이라
學不可思不勉而得이로다
遊心三藏하고通志大乘이라
精勤三業하야禪觀偏弘이로다
心珠道種七淨 交輝하고
戒月悲花三空 列耀로다
淨化業績山岳比峻이요
始終抗節金石方堅이로다
名重當時德博而化하고
道扇方外聲譽遠播로다
哲人 云亡四沈 安倣
慾海洪濤沈慈航이로다
萬口是碑何用刻銘
惟卓其道山高水長이로다
塔立寺隅卽事卽理
永傳無窮하야爲衆所賴로다
應化 三千八年 辛酉 泰月
五臺山人 呑虛宅成 撰幷書
【번역】
법왕의 본체는 비고 오묘하고 순수하며 빛나고 신령하고 밝아서 예로부터 오늘에 이르도록 탁월하게 홀로 존재한 것이다. 예로부터 어질고 통달한 스님은 이 법왕의 본체를 가지고서 인도에서 울리기도 하고, 때로는 중국에서 울리기도 하여 그 명성이 천하에 진동하여 온 누리의 중생을 깊은 잠에서 깨워주셨다. 이른바 하나의 법 가운데 유교는 뿌리를 심고, 도교는 뿌리를 북돋고, 불교는 뿌리를 뽑았다.는 말이 바로 이를 말한 것이다.
절박한 후에 움직이고 느낀 후에 응하고 마지못한 후에 일어나면 음()과 더불어 덕을 같이 하고 양()과 더불어 흐름을 같이 하여 마침내 불후(不朽)의 위업을 이룩하게 된다. 청담 대종사가 바로 그런 분이라 하겠다.
스님의 속성(俗姓)은 이씨요, 본관은 성산이며, 속명은 찬호(讚浩), 법명은 순호(淳浩)이며 청담은 그의 법호이다. 부친은 화식(化植)이요, 모친은 제주고씨이다. 단기 4235년(1902) 임인년 10월 20일, 경남 진주시 수정동에서 태어나셨다. 모친 고씨의 꿈에 큰 잉어가 방으로 들어와 점점 푸른 용으로 변화하여 오색 무지개를 타고 승천하는 것을 보고서 태기가 있었다 하니, 그만한 이유를 가지고 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스님은 태어나자마자 빼어나고 총명하여 여느 사람과 비유할 수 없었으며, 24세에 진주농업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후 일본 병고현(兵庫縣) 송운사(松雲寺)에 들어가 행자로 수행하다가 26세에 귀국하여 옥천사에서 출가하여 영호 노스님에게 삭발하고 법을 이으니, 백파율사의 8세 법손이다.
27세에 개운사 강원에 들어가 대교를 마치고 세간을 벗어나려는 큰 뜻을 가지시고 교학을 버리고 만주에 계신 수월선사의 회중에 들어가 조사가 서쪽에서 온 은밀한 종지를 물었고, 그 이듬해 귀국하여 또다시 정혜선원에 들어가 안거하다가 깨달음을 얻어 만공선사의 인가를 받았다. 이때 게송을 지은 바 있다.
 
예로부터 부처와 조사, 어리석은 이들이니
어떻게 저잣거리의 일을 알 수 있을까
누가 나에게 무엇을 잘 하느냐고 묻는다면
길가 옛 탑이 서쪽으로 기울었다 말하리라
 
이는 스님 36세 때의 일이다. 그 뒤로 조그마한 깨침을 얻은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자취를 감춘 채 더욱 정진에 힘썼다. 묘향산 설령사에서 3년, 설악산 봉정사에서 3년, 고성 문수사에서 10년 동안을 용맹정진과 보임(保任)에 힘썼다.
그 후로 20여 년 동안 불교 정화운동의 선구역할을 한 것은 한편으로는 차마 방관만 할 수 없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요, 한편으로는 고심으로 깨달은 바 있는 데에서 나온 것이다. 이 또한 이른바 문수는 왔던 길을 잊었고 보현은 서로 손을 마주 잡고 돌아간 것이다.라는 것이다.
국내의 활동으로는 조계종 초대 총무원장, 중앙종회 의장, 해인사 주지, 정법수호순교단조직, 동국학원 이사장, 선학원 이사장, 불교재건비상종회 의장, 신도회 총재, 통합종단 종정을 역임하셨고, 국외의 활동으로는 세계불교도대회 한국대표, 세계불교도협회 한국지부 위원장, 한국종교협의회 의장, 세계불교연합회장, 장로원장 등에 추대되었다. 그리고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여, 동국대학 명예철학박사 학위의 추서는 스님의 본분상에 있어선 모두가 하잘 것 없는 실오라기요 자투리이다. 이른바 티끌과 쭉정이로도 오히려 요순의 선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선관(禪觀)의 여가에 저술한 책으로는『영산도(靈山圖),『나의 인생관,『현대의 위기와 불교,『마음,『신심명강의,『반야경강의』등이 널리 유포되어 있다.
신해년(1971) 11월 15일에 인연이 다하여 열반하니, 세수는 70이요, 법랍은 45세이다. 종단장으로 다비하여 사리 15과를 얻어 그중 일부는 도선사에, 일부는 문수암에, 일부는 옥천사에 봉안하였다.
사리란 범어인데, 총체적인 의미로 번역하면 신령스러운 구슬이라는 뜻이다. 이를 따로 번역하면,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정기의 결정체요, 둘째는 신령한 뼈요, 셋째는 불가사의이다. 이 모두가 계율․선정․지혜 3학을 정밀하게 닦은 결정체이다. 70여 년 동안 환해(幻海)에 머물면서 때로는 깊은 산 깊숙한 골짜기에 고고하게 초월하면서도 세간을 벗어난 것이 아니었고, 때로는 번거로운 세간에 함께 하면서도 세간으로 들어가지 않으셨다. 이와 같이 출입에 얽매임이 없고 모든 일에 자유자재하니 법왕의 공덕신이라 말할 만하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싹이 돋아나고서도 이삭이 맺지 못한 것이 있고, 이삭을 맺고서도 열매가 익지 못한 것도 있다.고 한다. 아! 스님과 같은 분은 싹이 돋아나고 또 이삭이 맺었으며, 이삭을 맺고서 또 열매가 익은 자라 말할 만하다. 백대 이전의 과거와 백대 이후의 미래까지도 오늘과 같은 성사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명문은 아래와 같다.
 
사명 있어 태어나심이여
태어남에 빼어나고 특출하셨네
배움에 굳이 생각할 것이 없었고
힘쓰지 않고서도 얻으셨네
3장(三藏)에 마음 두시고
대승을 통달하셨네
3업을 정진하여
선관을 크게 얻으셨네
마음의 구슬, 도의 씨알은
7정(七淨)이 빛나고
계율과 자비의 꽃은
3공(三空)이 모두 빛나네
불교의 정화사업
산처럼 높으시고
시종 드높은 절개
금석처럼 견고하네
당대에 명성이
덕을 넓게 펴시고
방외(方外)에 도를 전하여
명성을 크게 떨쳤네
눈밝은 스님 떠나시니
사부대중 누굴 의지하랴
욕망의 바다 큰 물결에
자비의 배 가라앉으니
모든 이의 입 바로 비석인데
비명을 새길 게 있으랴
높으신 도여
산은 높고 강은 길기만 한데
절 모퉁이에 탑 세우니
사법계가 이법계라
길이길이 전하여
대중의 의지가 되리
불기 3008년(1981) 신유 1월
오대산인 탄허 택성 짓고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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