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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龜山 교수에게 보낸 答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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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3-07-03 09:20 조회7,5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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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龜山 교수에게 보낸 答書 -물이 곧 물결이요, 물결이 곧 물이다- 성화(聖華)는 일찍부터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일면지친(一面之親)도 없이 이처럼 간곡한 서신을 주셔서 감사보다는 죄송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고인이 말하기를 “평상심(平常心)이 도(道)”라 했으니, 선생이 생활 한순간 한순간을 떠나서 따로 수행을 찾는다면 그것은, 도리어 옳지 못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물이 곧 물결이요 물결이 곧 물이니, 물결을 여의고 물을 따로 찾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맑은 물이 성인의 마음이라면 탁한 물은 범부의 마음이겠지요. 풍랑이 일어남에 따라 청탁의 구분이 있지만 젖는 자체(濕性)는 변함이 없는 것과 같이 육도윤회(六道輪廻)에 따라 성범(聖凡: 성인과 범부)의 차이도 있지만 그 마음의 본체는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불타의 사상이 인도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한국으로 오니까 공간적으로 수만 리의 격차가 있고, 시간적으로 3천 년의 역사를 지녔으니 어찌 이질성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이질로 보면, 오늘 아침에 뜬 해가 어제 아침해는 아니며, 어제 아침 흘러간 물 역시 오늘 아침 흐르는 물은 아닙니다. 형상은 같은 듯 하지만 질은 바뀐 것입니다. 그러므로 필경 마멸하고야 마는 것이 우주의 법칙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천만 년 해가 가고 물이 흘러도 가지 않는 그것, 흐르지 않는 그것은 변함이 없겠지요. 이것이 바로 팔만대장경 교리에 설파한 내용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범서(梵書, 범어경전)를 한문으로 옮김에 있어서도 물론 변화가 있겠지요. 그러나 그 변화는 잘된 변화라고 봅니다. 왜냐 하면 중국에서 탄생된 유교․도교의 사상도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 사실이지만, 불교도 또한 유교와 도교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범서로 된『반야심경』을 놓고 어느 일구(一句)가 골자냐 물으면, 전문가들도 시원한 답을 못하는데 반하여, 한역으로 된『반야심경』을 놓고 어느 일구가 골자냐 물으면, 한학자로서는 누구나 서슴지 않고 지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설법하는 법사와 청중인 신도 사이에 언어의 장벽이 있다는 말씀은 사실이라고 봅니다. 물론, 심오한 진리를 표현하다 보니 표현이 다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자기의 다소간 자득처(自得處)가 없이는 수박 겉핥는 식과 같아서 청중에게 깊은 자극을 주기가 곤란하겠지요. 그리고 종통(宗通: 뜻은 통했으나), 설불통(說不通: 설명을 잘못하는 이도 있고)도 있고 설통(說通: 설명은 잘 하나), 종불통(宗不通: 뜻에 대해서는 통하지 못한 사람)도 있어서 아무리 종지가 밝아도 해박한 지식이 없으면 설통이 될 수 없고, 아무리 설통이 훌륭해도 종지가 투명치 못하면 그것도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설구통(宗說俱通: 뜻과 설명 모두에 뛰어나고)하고 선행겸비(善行兼備: 행동도 깨끗한 것)를 ‘조사(祖師)’라 하는 것입니다. 저는 다소의 지식을 가지고 말은 하지만 설식기부(說食飢夫: 굶주린 사람이 밥먹듯 설명에 조리가 없다는 뜻. 겸사)와 같아서 참괴심을 금치 못합니다. 지면에 한도가 있어서 두서 없이 이렇게 생각나는 대로 실례하오니 선불간(善不間) 잘 취사(取捨)하시기 바랍니다. 1977년 呑 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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