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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행합일(知行合一)의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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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1-11-23 19:22 조회4,1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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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行合一의 정신

고인(古人)이 말하기를 “열 마디 말 가운데 아홉 번이나 맞는 말을 한다고 해도 한 번 침묵하는 것만 못하다.” 하고 또, “한 길의 설명이 한 치의 행동만 못하다.”고 하였으니 과연 언행은 군자의 추기(樞機)라 할 수 있다.

중국의 육조혜능(六祖慧能) 선사는 “차라리 생사 속에 머물러 중생을 교화하면서 도(道)를 닦을지언정 소승의 적멸에 파묻혀 자리(自利)만을 주로 하는 수행은 구하지 않겠다.” 또 “늘 자기 허물만 보고 남의 허물을 보지 말라.” 하였다.

서산대사는 위의 육조혜능의 말을 인용해서 평하기를 “전자(前者)는 선가(禪家)의 눈이요, 후자는 선가의 발이라.”고 하였다. 과연 눈만 있고 발이 없어서는 안 되며, 발만 있고 눈이 없어서도 안 될 것이다. 만일 눈만 있고 발이 없다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며, 발만 있고 눈이 없다면 갈팡질팡 함정에 빠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눈과 발이 잠시라도 떨어져서는 안 된다.

이것을 유교에서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이라고 한다. 망령되게 알아서는 실행을 할 수 없거니와 참되이 알고 보면 실행은 그 아는 가운데 내포되어 있는 법이다.

예를 들면 색(色)이 좋은 줄 알 때에 취하는 행동이 없다면 그것은 진정한 앎(知)이 아니다. 그것은 망령되게 안 것이다. 또 똥이 구린 줄 알 때에 피하려고 하는 행동이 없다면 역시 망령되게 안 것이다.

또 진실로 서시(西施)와 양귀비의 아름다움을 안 까닭에 그들을 취하고자 하는 행동이 나온 것이며, 포사(鮑肆: 건어물을 파는 가게, 즉 악취가 나는 곳)나 측공(廁孔)과 같이 악취 나는 곳을 보고 누구나 멀리하는 것은 진실로 포사와 측공의 더러움을 알기 때문에 멀리하고자 하는 것이다.

모든 성인이 이 세상을 꿈과 같이 무상하다고 하는 이해만으로써 그친다면 그것은 무상관(無常觀)이 드러난 것이 아니다. 꿈을 꾸다가 깨고 나서야 비로소 꿈인 줄 아는 것과 같이 반드시 무상관이 드러나야만 망상이 끊어지는 행동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불법(진리)은 세간에 있으면서 세간을 여의지 않는 것이다. 만일 세간을 여의고서 보리를 찾는다면 그것은 마치 토끼뿔을 구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현대의 3단논법과 같이 ‘콩’을 ‘콩’이라고 긍정한 다음에, 콩씨를 심어서 잎이 나오면 심은 콩은 완전히 없어지고 다시 같은 콩이 열린다. 그러나 새로 열린 콩은 심은 콩과 똑같은 콩이지만 긍정 속에서 완전히 부정을 거친, 부정 속의 긍정적인 콩이기 때문에 심은 콩과는 다른 콩이다. 그러니까 무상관이 드러난다고 하는 것은 부정을 거쳐 바로 아는 것을 말하고, 망상이 끊어진 행동이란 부정 속의 긍정적인 콩과 같이 부정을 거친 긍정적인 행동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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