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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생사관(生死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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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1-10-16 14:45 조회7,28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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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生死觀

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난 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삶과 죽음일 것이다. 즉 생사(生死) 문제야말로 그 무엇보다 앞선 궁극적인, 그리고 이 세상에서 몸을 담고 살아가고 있는 동안 기필코 풀어내야 할 중요한 문제이다. 이 생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종교가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 불교에서는 생사문제를 이렇게 해결한다. 즉 마음에는 생사가 없다(心無生死)고. 다시 말하면, 마음이란 나온 곳이 없기 때문에 죽는 것 또한 없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확연히 갈파한 것을 ‘도통(道通)했다’고 말한다.

우리 자신의 어디든 찾아보라. 마음이 나온(生) 구멍이 있는지. 따라서 나온 구멍이 없으므로 죽는 구멍도 없다. 그러니까 도(道)가 철저히 깊은 사람은 이 조그만 몸뚱아리를 가지고도 얼마든지 살 수가 있다. 하지만 어리석은 중생들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러면서도 천 년 만 년 살고 싶어한다. 도인(道人)․성인(聖人)은 굳이 오래 살려고 하지 않는다. 죽는 것을 헌 옷 벗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생각하고 있으므로 굳이 때묻은 옷을 오래 입으려고 하지 않는다. 오래오래 살고 싶다는 것은 중생들의 우견(愚見)일 따름이다.

도를 통한 사람은 몸뚱아리를 그림자로밖에 보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삶은 간밤에 꿈을 꾼 것이나 같다고 할까. 꿈을 깨고 나면 꿈 속에서 무슨 일인가 분명히 있었긴 있었으나 헛것에 불과하듯 삶도 그렇게 본다. 그러므로 굳이 이 육신을 오래 가지고 있으려 하지 않는다. 벗으려고 들면 향 한 대 피워 놓고 향 타기 전에 마음대로 갈(죽음)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모든 존재에는 생주이멸(生住異滅)이 있고, 육체에는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으며, 일년에 춘하추동(春夏秋冬)이 있고, 또 우주(세계)는 일었다가 없어짐(成住壞空)이 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도인(道人)에게는 생사가 없다. 혹자는 ‘그 도인도 죽는데 어찌 생사가 없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겉만 보고 하는 소리일 뿐이다. 옷 벗는 것을 보고 죽는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 ‘옷’을 자기 ‘몸’으로 안다. 그러니까 ‘죽는다’. 그렇다면 도인이나 성인은 무엇을 자기 몸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몸 밖의 몸, 육신 밖의 육체를 지배하는 정신, 좀 어렵게 말하면 시공(時空)이 끊어진 자리, 그걸 자기 몸으로 안다. 시공(時空)이 끊어진 자리란 죽으나 사나 똑같은 자리, 이 몸을 벗으나 안 벗으나 똑같은 자리, 우주 생기기 전의 시공이 끊어진 자리, 생사가 붙지 않는 자리란 뜻이다.

부처님은 바로 이 ‘자리’를 가르쳐 주기 위해 오셨다. 이 세상의 삶이 ‘꿈’이란 걸 가르쳐 주기 위해서 온 것이다.

우리는 꿈 속에서 덥고 춥고 괴로운 경험 등을 했을 것이다. 꿈을 꾸고 있는 이 육신이 한 점도 안 되는 공간에 누워, 또 10분도 안 되는 시간 속에서 몇백 년을 산다. 우주의 주체가 ‘나(我)’이기 때문이다. 바로 ‘내’가 우주를 만들어 내는 것이지, 우주 속에서 내가 나온 것이 아닌 것이다.

세간(世間)의 어리석은 이들은 꿈만 꿈인 줄 안다. 현실, 이것도 꿈이다. 하지만 중생들은 꿈인 줄 모른다. 다시 말하거니와 성인이 깨쳤다는 것은 이 현실을 간밤의 꿈으로 보아버린 걸 말한다.

우리는 꿈만 꿈이라고 생각할 뿐, 이 현실은 꿈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몇백 년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고 싶어서 아등바등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성인의 눈엔 현실이 바로 꿈이다. 즉 환상이니까 집착이 없다. 그러므로 천당 지옥을 자기 마음대로 한다.

이 정도로 말해 놓고 나서 우리의 삶이 영원하다고 본다면 영원할 수도 있고 찰나라고 본다면 찰나일 수 있을 것이다. 좀 수긍이 될지 모르겠다. 요컨대, 우주 창조주 즉 하느님이라는 존재는 우주 생기기 전의 면목을 타파한 걸 ‘하느님’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하느님이란 하늘 어느 높은 곳에 앉아 있는 어떤 실재적인 인물이 아니다. 이 말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될 것이다.

자, 그럼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삶을 살아가야 할까. 내 얘기의 초점은 여기에 있다. 한반도에 태어난 젊은이라면 3천만, 5천만의 잘못을 나의 잘못으로, 즉 나 하나의 잘못은 3천만, 5천만 명에게 영향이 미친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나중에 어른이 되어 무슨 문제에 부딪히더라도 당황하지 않는 준비를 갖추며 살 일이다. 청년은 그런 자신을 길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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