現代의 苦惱를 宗敎에 묻는다〔10〕내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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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7-12-16 13:04 조회7,426회 댓글0건본문
〔10〕내세에 대하여
윤태림 : 다음에는 내세관에 대한 얘기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탄허 : 불교에서 보는 내세관은 오늘이 있으니까 어제와 내일이 있고, 금년이 있으니까 거년(去年)이 있었고 내년이 있으며 현재가 있으니까 과거가 있었고 미래가 있다는 등 이렇게 삼세(三世)에 걸친 삼세윤회설(三世輪廻說)을 철두철미하게 말한 것이 불교입니다. 그래서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난다는 인과법칙은 추호도 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유교학에서는 인과법칙을 현실만 갖고 봅니다. “적선지가(積善之家)에 필유여경(必有餘慶)이요 적불선지가(積不善之家)에 필유여앙(必有餘殃)”이라고 한 말은, 현실만 갖고 교법을 세우기 때문에 현재에 받는 과(果)가 조상이 쌓은 인(因)으로 나타난다고 본 것입니다.
"논어"에 자로가 공자에게 죽는 것에 대하여 물은 곳이 있습니다. “자로문사(子路問死)한대 자왈미지생(子曰未知生)이면 언지사(焉知死)리오” 즉 “나는 법을 모르면서 어떻게 죽는 법을 알겠느냐?”고 공자는 답했는데 이 말씀은 생사가 둘이 없으니까 나는 법부터 배우라 한 말씀입니다.
또 귀신 섬기는 법을 물으니, “문사귀신(問事鬼神)한대 자왈미능사인(子曰未能事人)이어니 언능사귀(焉能事鬼)리오.” 즉 “사람 섬기는 법도 알지 못하는데 어찌 귀신 섬기는 법을 알겠는가?”라고 한 것은 현실의 사람 섬기는 법부터 배우라고 한 말입니다. 현실도 모르고 미래를 말한다면 모호하거든요.
그래서 장자가 공자의 일생을 그려놓기를, “육합지외(六合之外)는 성인(聖人)이 존이불논(存而不論)하시고, 육합지내(六合之內)는 성인(聖人)이 논이불의(論而不議)하시고, 춘추경세(春秋經世)는 선왕지지(先王之志)라. 성인(聖人)이 논이불변(論而不辨)하시니라.”
즉 “이 천지 바깥 일[천당․지옥 등]은 놓아두고 말하지 않으시고, 이 천지 안 일은 말씀은 하되 옳으니 그르니 논평이 없었고, 춘추필법(春秋筆法)으로 2백 42년 동안 ‘남면(南面)의 권(權)[천자 노릇]’을 붓으로 대행하여 세상을 법(法)받게 한 것은 선왕(先王)의 뜻이라. 공자가 시비는 했으되, 옳고 그름을 상벌(賞罰)한 것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공자 일생을 그려놓고 있지만 유교는 언제나 현실정치가 용(用)이 되었기 때문에 내세에 대한 얘기를 물으면 막아버렸습니다. 그러니까 현실에서 잘할 것 같으면 죽어서도 편안하다[生順死安] 이것입니다.
그러나 불교에서의 인과법칙은 누가 주어서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짓고 자기가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경(經)에 “욕지전생사(欲知前生事)인댄 금생수자시(今生受者是)요, 욕지내생사(欲知來生事)인댄 금생작자시(今生作者是)라.” 즉 “전생의 일을 알려면 금생에 받는 것이 전생 일이고, 내생의 일을 알려면 금생에 짓는 것이 내생 일이라”고한 것입니다. 즉 내생의 문제는 금생에 지은 선이나 악을 생각해볼 때 그 속에 다 들어있습니다. 이와 같은 삼세윤회설(三世輪廻說)도 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학생을 위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윤태림 : 다음에는 내세관에 대한 얘기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탄허 : 불교에서 보는 내세관은 오늘이 있으니까 어제와 내일이 있고, 금년이 있으니까 거년(去年)이 있었고 내년이 있으며 현재가 있으니까 과거가 있었고 미래가 있다는 등 이렇게 삼세(三世)에 걸친 삼세윤회설(三世輪廻說)을 철두철미하게 말한 것이 불교입니다. 그래서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난다는 인과법칙은 추호도 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유교학에서는 인과법칙을 현실만 갖고 봅니다. “적선지가(積善之家)에 필유여경(必有餘慶)이요 적불선지가(積不善之家)에 필유여앙(必有餘殃)”이라고 한 말은, 현실만 갖고 교법을 세우기 때문에 현재에 받는 과(果)가 조상이 쌓은 인(因)으로 나타난다고 본 것입니다.
"논어"에 자로가 공자에게 죽는 것에 대하여 물은 곳이 있습니다. “자로문사(子路問死)한대 자왈미지생(子曰未知生)이면 언지사(焉知死)리오” 즉 “나는 법을 모르면서 어떻게 죽는 법을 알겠느냐?”고 공자는 답했는데 이 말씀은 생사가 둘이 없으니까 나는 법부터 배우라 한 말씀입니다.
또 귀신 섬기는 법을 물으니, “문사귀신(問事鬼神)한대 자왈미능사인(子曰未能事人)이어니 언능사귀(焉能事鬼)리오.” 즉 “사람 섬기는 법도 알지 못하는데 어찌 귀신 섬기는 법을 알겠는가?”라고 한 것은 현실의 사람 섬기는 법부터 배우라고 한 말입니다. 현실도 모르고 미래를 말한다면 모호하거든요.
그래서 장자가 공자의 일생을 그려놓기를, “육합지외(六合之外)는 성인(聖人)이 존이불논(存而不論)하시고, 육합지내(六合之內)는 성인(聖人)이 논이불의(論而不議)하시고, 춘추경세(春秋經世)는 선왕지지(先王之志)라. 성인(聖人)이 논이불변(論而不辨)하시니라.”
즉 “이 천지 바깥 일[천당․지옥 등]은 놓아두고 말하지 않으시고, 이 천지 안 일은 말씀은 하되 옳으니 그르니 논평이 없었고, 춘추필법(春秋筆法)으로 2백 42년 동안 ‘남면(南面)의 권(權)[천자 노릇]’을 붓으로 대행하여 세상을 법(法)받게 한 것은 선왕(先王)의 뜻이라. 공자가 시비는 했으되, 옳고 그름을 상벌(賞罰)한 것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공자 일생을 그려놓고 있지만 유교는 언제나 현실정치가 용(用)이 되었기 때문에 내세에 대한 얘기를 물으면 막아버렸습니다. 그러니까 현실에서 잘할 것 같으면 죽어서도 편안하다[生順死安] 이것입니다.
그러나 불교에서의 인과법칙은 누가 주어서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짓고 자기가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경(經)에 “욕지전생사(欲知前生事)인댄 금생수자시(今生受者是)요, 욕지내생사(欲知來生事)인댄 금생작자시(今生作者是)라.” 즉 “전생의 일을 알려면 금생에 받는 것이 전생 일이고, 내생의 일을 알려면 금생에 짓는 것이 내생 일이라”고한 것입니다. 즉 내생의 문제는 금생에 지은 선이나 악을 생각해볼 때 그 속에 다 들어있습니다. 이와 같은 삼세윤회설(三世輪廻說)도 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학생을 위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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