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클라우드

화엄경의 사사무애 법계관(事事無碍 法界觀) > 탄허스님방산굴법어


수행/신행Odae mountain Woljeongsa

마음의 달이 아름다운 절
탄허스님방산굴법어

탄허스님방산굴법어

화엄경의 사사무애 법계관(事事無碍 法界觀)


페이지 정보

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1-09-09 17:56 조회39,534회 댓글1건

본문

화엄경의 事事無碍 法界觀

우주의 주체성은 무엇인가? 우주 주체성은 곧 우리의 한생각이다. 만일 우리의 한생각이 없다면 육체는 송장일 뿐이고, 이 우주는 공각(空殼: 빈껍질)일 뿐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핵심만 안다면 이 한생각에서 일어난 지엽적인 문제는 설명할 것도 없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법(說法)하시고 또 6년 동안 고행(苦行)을 통하여 우주관(宇宙觀)․인생관(人生觀)을 타파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화엄경(華嚴經)의 도리이다. 화엄경(華嚴經) 도리란 사법계(四法界) 도리이다.

사법계(四法界)란 이법계(理法界)․사법계(事法界)․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이다.

먼저 이법계(理法界)라는 것은 공(空)적인 면을 가지고 하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이 우주만유(宇宙萬有)는 환(幻)이고 가상(假像)으로 있는 것이지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다. 즉 공(空)인 것이다. 모든 것을 이렇게 공(空)한 것으로 보는 것, 이것을 이법계(理法界; 眞理法界)라고 하는 것이다. 법계(法界)란 진리의 대명사이다.

다음 사법계(事法界)라는 것은 우주만유(宇宙萬有)가 그대로 진리라는 뜻이다.

또 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란 이(理)와 사(事)가 거리낌이 없는 법계, 다시 말해 공(空)과 유(有)가 둘이 아님을 말하는 것이다.『반야심경(般若心經)』의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으로서 색공(色空)이 둘이 아닌 것이 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인 것이다.

다음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란 사(事)와 사(事)가 거리낌이 없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우리가 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까지는 이해할 수 있고 인식할 수가 있지만 사사무애(事事無碍)라는 것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인식할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면 태산(泰山)을 자기 콧구멍 속으로 집어넣는다고 할 경우 콧구멍이 넓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태산(泰山)이 축소되는 것도 아닌데도 태산이 콧구멍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태산이 콧구멍 속으로 들락날락 하면서도 하나도 거리낌이 없는 것, 그것이 사사무애법계인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인들은 사사무애(事事無碍) 도리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것은 오직 이 우주만유가 일진법계화(一塵法界化)된 사람이 아니면 그렇게 되지를 못하는 것이다.

댓글목록

도솔칭구님의 댓글

도솔칭구 작성일

삼보(三寶)에 귀의합니다... 지나다 어떤 인연이 있어 이 글을 접하게 되었나 봅니다... 외람되오나 범부(凡夫)의 공부가 비록 부족하지만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 다소 무례(無禮)할지라도 쓴소리를 좀 해야겠다 싶어 몇 자 적어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소위 법계(法界)를 굳이 4개로 나누어 사법계(四法界)라 하여 설명하고 있음에도 불만이 있지만, 사부대중을 위한 어떤 의의(意義) 정도는 있으리라 여기기도 하고 남기고자 하는 글의 취지에서도 벗어나는 듯하니 이에 대한 성토(聲討)는 삼가겠습니다.

소위 법계(法界)를 살피자면, 유명(有名) 무명(無名)이 알든 모르든 삼라만상(參羅萬像)의 이치(理致)가 존재하니 이법계(理法界)라 한 것이고, 이치가 존재하듯 그 이치를 섬기고 따르며 행하는 이들이 있으니 사법계(事法界)라 하는 것이며, 또 이치(법)와 이치를 섬기고 따르고 (삼라만상에) 행(行)함에 걸림이 없다 하여 이사무애법계(理事無礙法界)라 하는 것이고, 나아가 삼라만상 광대무변에 이치(理致)가 펼쳐지고 섬겨지고 따라지고 있음에도 어긋남이 없다 하여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라 한 것입니다.

참으로 진리(眞理)란 누구에게나 쉬워, 쉽게 알고 익히며, 또 쉽게 그 어느 곳에서든 저절로 행하여지는 것일 겁니다. 그래서 늘 곁에 있지만 잘 알지 못하고 가벼이 여기며 잊어버리기에 사부대중은 그 멀리 좋다 하는 곳들을 나다니며 찾아다니느라 난리들인 걸 겁니다.

잘 알아듣지도, 이해해 써먹기도 어려운 말이나 글 따위를 최고의 법문(法文)인 양, 최고의 화두(話頭)인 양 설하고, 글자의 참 의의도 모르면서, 탐진치(貪瞋痴)에 찌들린 육두마차(六頭馬車) 같은 마음만이 모든 해결책인 것처럼, 무식하고 무지한 한자(漢字)들을 인용하고 아무 데나 들이대고 있으니 불교가 사이비로 흐르고 있는 것이라는 말을 덧붙이고 마무리하겠습니다.
     
끝까지 읽어 주셨다면 감사드립니다.
부산에서 도솔 최영철 배상


25318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로 374-8    전화 : 033)339-6800     팩스 : 033)332-6915
COPYRIGHT ⓒ 2016 오대산월정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