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정립해야 한다(11)_대담/鮮于 輝
페이지 정보
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6-09-02 13:27 조회7,436회 댓글0건본문
〔11〕소(消)·장(長)·성(盛)·쇠(衰)는 불멸의 법칙
스님 : 지금 그 질문은 아주 부조리한 질문인데 이런 부조리한 질문을 악질문(惡質問)이라 해요. (웃음)
물이 산으로 올라가느냐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전 세계 인류가 도통군자가 된다면 도(道)자리에는 생사(生死)가 본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조문도(朝聞道)면 석사(夕死)라도 가의(可矣)라는 것보다 조문도(朝聞道)면 조사(朝死)라도 가의(可矣)라고 할 것입니다. 또 전 인류가 모두 신부․수녀가 되고 비구․비구니가 되어 이 세계가 도통군자들만이 모인 수도장(修道場)이 된다면 천당, 극락을 따로 갈 것 없이 이 세상 그대로가 천당, 극락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결혼을 하지 않고도 천당, 극락에서처럼 연꽃 속에서 화생(化生)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될 수 없는 것을 그렇게 될 수 있겠느냐고 질문한 것이 바로 악질문(惡質問)이지요. (웃음)
그렇지만 전 인류가 모두 도통하고 극락에 갈 수는 없어도 인과법칙(因果法則)을 철저히 믿는다면 정치가나 교육자는 필요 없게 될 것입니다. 모든 문제는 주관적인 것이지 객관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선우 : 지금까지 스님께서 말씀하신 불교(佛敎)는 그 발상지인 인도에선 거의 사라졌고 공자(孔子)의 사상도 오늘의 중국에서 배척받고 있는데, 이런 현상은 어떻게 보십니까?
스님 : 소식(消息)․영허(盈虛), 소장(消長)․성쇠(盛衰)는 우주순환의 자연법칙입니다. 낮이 가면 밤이 오고 봄이 가면 가을이 오는 원리가 아니겠습니까? 예를 들면 자동차 바퀴가 굴러갈 때, 가는 것으로 보면 순(順)이지만 바퀴 밑에서 보면 도리어 역(逆)이 됩니다.
공자가어(孔子家語)(70권)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었습니다. 공자(孔子)가 일찍이 길을 가는데 웬 여인(女人)이 길가에서 통곡하고 있었습니다. 공자가 이유를 물으니, 동네 당산나무 밑에 천년 묵은 지네가 있는데 연례(年例)로 한번씩 제사를 지내야 하며 그때마다 사람을 한명씩 지네에게 제물로 바친다는 겁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네의 독기(毒氣)로 한 동네가 폐허가 된다는 거지요.
그러나 자진해서 제물이 될 사람이 없기 때문에 동네사람들이 모여 제비를 뽑아, 뽑힌 자가 들어가기로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길가에서 통곡하고 있는 과부의 외아들이 뽑혀 자기 아들을 못 내주겠다고 애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공자(孔子)가 그 광경을 보고 동네사람에게 양해를 얻어 여인의 아들 대신 당산나무 밑 제당(祭堂)에 들어가 앉았습니다. 이튿날 동네사람들이 뼈라도 추려 장례를 치러 주려고 문을 열어보니 공자는 조금도 동(動)함이 없고 지네가 죽어있더랍니다.
동네사람들이 공자께 백배사례(百拜謝禮)하고 지네를 태웠습니다. 공자가 하신 말씀이 백년 후에 반드시 나의 도(道, 유교)를 해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 후 백만 년만에 진시황(秦始皇)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그 진시황이 천년 묵은 지네의 후신이란 거예요. 진시황은 공자(孔子)가 숭상(崇尙)하던 시서(詩書)를 다 소각해 버리고 그를 믿는 유생들을 모두 생매장한 것입니다. 천하(天下)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정력(定力) 불교의 삼매(三昧) 즉 도력(道力)인 것입니다. 정력(定力) 앞에서는 천지(天地)도 어찌할 수 없고, 귀신도 엿볼 수 없고, 권력(權力)도 총칼도 쓸데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우주가 열린 이래로 전 인류가 자기의 부조(父祖)를 다 버리고 삼대성인(三大聖人)만을 숭배하는 것은 헛일이 아닐 것입니다.
공자(孔子)께서 이러한 사실을 미리 아시고 칠서(七書)를 그의 집 벽 속에 감추고 흙으로 발라 보존하였기에 후세인들이 칠서(七書)를 칠서벽경(漆書壁經)이라고 천자문(千字文)에 적어놓은 것입니다. 이렇게 진시황(秦始皇) 당년에 공자(孔子)의 교(敎)가 전멸(全滅)당하여 움도 싹도 없어졌는데 진나라는 불과 2세(二世)에 망하고 그 후로 한(漢)․당(唐)․송(宋)․원(元)․명(明)․청(淸) 육조에 걸쳐 공자의 가르침은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