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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정립해야 한다(9)_대담/鮮于 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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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6-08-19 12:54 조회38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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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현실세계의 극락화(極樂化)를 위해


동양학의 삼교성인(三敎聖人, 유불도 3교)이 이 세상에 온 것은 지식을 자랑하거나 자기의 인품을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다만 각 사람의 마음속에 본래 갖춰져 있는 우주의 핵심체인 태극(太極)의 진리(眞理), 시공(時空)이 끊어진 불성(佛性)의 자리를 알려주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이 진리를 알아듣지 못하니까 천당지옥의 유치원 학설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천당에 가느니, 지옥에 가느니 하는 문제는 인과법칙(因果法則)에 따른 진실이긴 하지만 삼교성인(三敎聖人)이 인류에게 가르친 교리가 이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지요. 오직 사람으로 하여금 진리를 깨달아 이 세계가 그대로 극락화(極樂化)되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성인(聖人)의 가르침이 어떤 종교를 믿으라는 것이겠습니까? 천당지옥을 믿으라는 것이겠습니까? 오직 스스로 자기 주체를 믿으라는 것뿐입니다. 믿지 않는다면 자기의 주체를 부정하여 뿌리 없는 나무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선우 : 스님 말씀을 들어보니 깨달은 듯 하기도 하고 마음이 가라앉는 듯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듣고 난 다음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가면 점심 저녁을 먹어야 하고 땔감을 마련해야 하며 직장문제, 이웃과의 관계, 노후(老後)를 대비한 앞으로의 문제 등으로 또다시 현실과 부딪쳐 어지럽게 됩니다. 역시 세속인(世俗人)은 도(道)를 깨친 성인(聖人)과는 달리 비린내 나는 인간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속세에 발 딛고 살면서 그래도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인간답게 사는 것인지 말씀해 주시지요.

스님 : 물론 현실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보통 세상 사람들은 물질을 제일의(第一義)로 삼고 정신을 제이의(第二義)로 삼는 데서 삶의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정신을 제일의(第一義)로 삼고 물질을 제이의(第二義)로 삼아 정신과 물질을 조화시키는 데서 좀더 인간답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물질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권력자나 갑부는 고통이 없어야 하겠는데, 그들 역시 불만을 갖게 되는 것은 정신적인 양식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현미경이 아니면 미세한 균(微菌)을 볼 수 없고 망원경이 아니면 원거리(遠距離)를 볼 수 없듯, 인간의 죄악상(罪惡相)은 성인(聖人)의 경전(經典)을 통하지 않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인의 경전을 보아 자기의 주체성을 믿고 거기에 따라서 생활해야 합니다.

고해중생(苦海衆生)을 건지기 위해 상․중․하(上․中․下)의 그물을 쳐 놓은 것이 불교의 교리입니다. 상근대지중생(上根大智衆生)을 건지기 위해서는 고래를 잡는 그물, 중근기(中根機)를 건지기 위해서는 대구나 명태를 잡는 그물, 하근기(下根機)를 위해서는 멸치나 새우를 잡는 그물을 쳐서 한 중생도 남김 없이 다 제도(濟度)하려는 것이 불타(佛陀)의 원력(願力)입니다.

상근기는 문자를 의지하지 않고 바로 참선을 통해 도(道)에 들어가고, 중근기는 교리적으로 문자에 의지하여 일심삼관(一心三觀) 삼관일심(三觀一心)의 도리인 관법(觀法)으로 도(道)에 들어가며, 하근기는 참선(參禪)에도 교리에도 해당되지 못하므로 관세음보살, 석가모니불 등의 명호(名號)를 외거나 기독교의 주기도문과 같은 주력(呪力)으로 도(道)에 들어간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전문가처럼 입산수도(入山修道)를 해야만 도(道)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근기(根機)에 따라 상․중․하 어느 문호(門戶)든지 알맞게 택하여 수시수처(隨時隨處)에서 공부를 하다보면 밤새도록 가는 길에 해 돋을 때가 오는 것이지요. 비록 도(道)에 들어가는 문이 상중하(上中下)의 차별이 있다 하더라도 들어가고 보면 한 자리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고인(古人)의 말씀에 발심(發心)은 유선후(有先後)어니와 오도(悟道)는 무선후(無先後)라, 즉 발심(發心)은 선후(先後)가 있을지라도 도(道)를 깨닫는 데는 앞뒤가 없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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