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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臺山月精寺法堂重創大施主頌德碑銘 幷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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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4-12-14 13:44 조회6,016회 댓글0건

본문

不咸一脈 落來於南하야凡三百有餘里하니 其雄深高大 與金剛으로 相甲乙하야 可見元氣之所凝聚하니 則固知五臺山者 佛陀眞身常住之所也 月精寺者 五類大聖 現身之地也 況是寺也 亦爲是山之喉吻일새 故慈藏師 開基之初 以文殊所贈 如來舍利 三十七枚 建九層塔而奉安之러니 李太祖創業之後 每歲春秋 各納白米二百石 鹽五十石하야 別修供養而用資福利하야 遂以爲歷代之恒規 國內之名山巨刹 非不壯也 奇觀異聞 非不衆也로되 若夫寶宮之先創 聖靈之異跡 君王之出入 御牒之留鎭 蔑有此山若也 故曰五臺 佛之宗刹也 嗚呼 自乙酉解放以後 因農地之改革으로 寺院 塵已沒矣 田畓 錐難立矣러니 及到庚寅南北之事變 以焦土作戰으로 殿閣數十棟 盡入於灰燼이라 羅麗以來 至于今 罹其鬱攸之災者 凡三回 則慈藏所謂三入藤蘿之記 豈非有符於今日也耶 挽近以來 余因敎團之淨化 來住於此러니 有萬化喜贊者 本是雲水衲子어늘 而慨然有重創之志하야 先築寮舍與方山窟數棟하고 次建法堂할새 賣却基本林木之若干하야 募緣檀信淨財之多少하야 始於甲辰春하야 至丁未秋而未完이라 可謂涉海鑿河而使蚊負山也 屈指 指亦酸矣 欲言이로되 言已喪矣 幸有大施之君子하니 趙公重勳 是也 本貫楊州 命熙 永順이니 太氏 母之夢 因見蓮池邊 有一童子 入水而誕公於漢城渼芹洞하니 卽庚申二月十一日丑時 而李朝景宗辛丑 行右議政 諱泰采 號二憂堂 諡忠翼公 於公 爲九世祖也 以實業家 名重於當世어늘 而來見是寺 發廣大願하고 先施靑蓋瓦費 二百萬圓 及木手傭賃 三百萬圓하고 後擲佛像金 二百萬圓 與丹靑費 三百萬圓하니 共計略千萬圓金也 由是 至己酉春而落之 嗚呼 非夙植德本而來者 果能如是乎 富而無驕 尙爲難이온 況富而好禮者乎 積而能散 猶爲難이온 況散而能忘者乎 前乎百載之旣往 後乎百載之方來 未有如今日之盛事覺山增以高하고 水增以淸하야 天光雲影 徘徊乎方塘하고 光風霽月 瀅淨乎胸襟하야 宛然有一新底意思하야 千載之下 令人肅然如在我五類大聖及慈藏祖師之前하야 而親承不言之敎矣 宜其趙公之德海無量하고 吉慶成滿 當如裵公之逐機頓이니 則普與法界含識으로 同霑利樂於無邊이요 而能原始要終하야 勤勤成辦者 萬化之力也 銘曰
 
五臺之名溢乎我國이라
華藏이요髣髴靈鷲로다
海岳相遷風雲變態
分也成也成也毁也로다
毁則必成理固然矣
寶網雲臺越彼舊規
若微趙公이면焉有是事리오
捐捨巨額하야獲功德聚
緬思伊昔一器之水
一竿之竹으로功蓋法界
況復而今祇陀之樹
須達之金異代同喩로다
一片短石特立寺隅하니
性相無二하야法住法位하니
萬口是碑何用刻名이리오
惟卓其福이여山高水長이로다
應化 二千九百九十六年 己酉 四月 一日
五臺山人 呑虛宅成 撰幷書
【번역】
불함산 한 자락이 남쪽으로 두루 3백여 리를 굽이쳐 흘러 내려오니, 그 웅장함과 깊음과 높음과 광대함이 금강산과 우열을 다투고 있다. 그러나 산천의 원기가 어린것으로 보면 오대산은 참으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실 만한 터이며, 월정사는 오류성인(五類大聖)이 현신하실 만한 터전이다. 더욱이 이 사원은 오대산의 목구멍에 해당되므로 자장율사께서 처음 사원을 일으켜 세울 때 문수보살이 주었던 여래의 사리 37매를 받아 9층탑을 세워 봉안하였고, 이태조가 창업한 후, 매년마다 춘추로 각각 백미 2백 석과 소금 50석을 보내 주었고, 별도로 공양을 받들고 복을 빌어 마침내 역대의 일정한 규칙으로 삼아 왔었다.
국내의 명산대찰이 장엄하지 않은 바 없으며, 기이한 명성이 많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적멸보궁을 맨 먼저 창건한 것, 성령(聖靈)의 이적(異蹟), 제왕의 출입, 어필이 남아 있는 곳으로 일찍이 이 오대산만 같은 곳이 없다. 이 때문에 오대산은 부처님의 종찰(宗刹)이라 하겠다.
아! 해방 이후 농지개혁으로 인하여 사원에는 티끌 하나 남아 있는 것이 없었고, 전답은 송곳 하나 세우기 어려울 지경인 데다가, 경인년 남북동란의 초토화작전으로 법당 수십 동이 모두 불타 버렸다. 신라 고려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화재를 모두 세 차례 겪었는데, 이는 자장율사가 말한 세 차례 잡초더미 칡넝쿨 속으로 들어간다.는 비기(秘記)가 어쩌면 오늘날에 들어맞는 것이 아니겠는가.
근래에 들어 나는 교단의 정화사업 후, 이곳에 주석하였다. 만화희찬은 본래 운수납자이지만 개연히 중창할 뜻을 가지고서 먼저 요사채와 방산굴 등 몇 동을 지었다. 그 다음에 법당을 세우면서 본사의 산림을 어느 정도 팔았고, 신도의 모연금으로 갑진년 봄에 시작하여 정미년 가을에 이르도록 완성하지 못하였다. 이는 바다를 건너뛰고 하수를 파는 격이며, 모기가 태산을 짊어진 격이라고 하겠다. 손을 꼽아도 손가락 또한 시릴 정도이며, 말을 하려고 해도 말을 이미 잃어 버린 지경이었다. 그러던 가운데 다행히 대시주 군자가 있었다. 조중훈이 바로 그 사람이다.
조씨의 본관은 양주이며 부친은 명희요, 모는 영순 태씨인데, 모친이 연못가에서 한 어린아이가 물로 들어가는 태몽을 꾼 뒤, 조씨를 서울 미근동에서 낳았다. 경신년 2월 11일 축시이다. 이조 경종 신축(1721)에 행 우의정(行 右議政)을 역임한 태채, 호 이우당, 시호 충익공은 공에게 있어 9세조이다.
공은 실업가로서 당대에 명망이 높다. 이곳을 찾아와 큰 원을 내어 먼저 청기와 비용 2백만 원과 목수 임금 3백만 원을 보시하였고, 그 후 불상금 2백만 원과 단청비용 3백만 원을 쾌척하여 모두 약 1천만 원을 희사하였다. 이로써 기유(1969) 봄에 이르러 낙성을 보게 되었다.
아! 일찍이 전생부터 덕의 근본을 심어 온 이가 아니었다면, 과연 이처럼 할 수 있을까? 부자로서 교만하지 않기도 어려운 일인데, 더욱이 부자로서 예를 좋아하는 일이야! 재물을 쌓아 두고 베푸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더욱이 재물을 베풀면서도 그 일을 잊기는 더욱 어려운 것이다. 앞으로 백세의 이전과 이후로 백세의 먼 미래까지 오늘날처럼 성대한 일은 다시 없을 것이다.
이에 산은 더욱 높고 물은 더욱 맑음으로써 하늘빛과 구름의 그림자가 연못에 배회하고, 빛나는 바람 맑게 개인 달이 가슴에 해맑게 비쳐온 듯, 일신되어 천 년 이후의 사람들에게도 숙연하게 오류대성과 자장율사께서 앞에 계신 듯이 보여 주게 되었고, 친히 말없이 가르침을 받들게 해 주었다. 조씨의 덕은 바다처럼 끝이 없을 것이며, 길한 일과 경하로운 일들이 원만하게 이루어져, 마치 배휴의 축기돈(逐機頓)과 같을 것이다. 이는 널리 법계의 함식(含識)들과 다 함께 이로움과 즐거움을 끝없이 적시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의 시종을 밝혀 보면 부지런히 주선하여 완성한 자는 만화의 힘이다.
명문은 아래와 같다.
 
오대산의 이름이여
우리 나라에 널리 알려졌네
화장세계와 같고
영취산과 방불하네
산천이 변하고
풍운의 덧없음이여
흩어졌다 이뤄지고
이뤄지고 흩어짐이여
흩어졌다 반드시 이뤄짐은
하늘의 이치가 그러한 때문
보배그물 운대(雲臺)
저 옛 모습보다 뛰어나니
만일 조씨가 아니었다면
어찌 오늘이 있겠는가
거액을 희사하여
공덕의 더미를 얻었네
옛일을 생각하니
한 그릇의 물과
한 줄기 대나무로도
그 공은 법계 덮는다 하는데
오늘의 공덕이 그보다 더하누나
기타의 나무와
수달의 황금은
세대야 다르지만 똑같은 일
한 조각 작은 비석을
절 모퉁이에 세우니
()과 상()이 둘이 아니어서
법은 법의 자리에 머무네
많은 이의 칭찬이 곧 비석인데
굳이 이름을 새길 게 있을까
그 복이 드높아서
드높은 산이요, 기나긴 강이어라
불기 2996년(1969) 기유 4월 1일
오대산인 탄허 택성 짓고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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