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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二世祖墓碑後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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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4-08-16 08:41 조회6,764회 댓글0건

본문

凡人 貧也 思以財養其親이라가 家饒而親不在焉하며 賤也 思以榮養其親이라가 祿得而親不在焉하나니 去而不可住者歲也 往而不可逮者親也 子雖欲養而親不待矣 叫叩天地 已無及矣 焦裂肝肺 已無及矣 瞿瞿然皇皇然欲求而不可求矣 汲汲然望望然欲從而不可從矣니라 是故 方丈盛俎不如一簞之逮親也 槌牛而葬 不如烹鷄之逮親也 黍稷之豊 不如菽水之逮親也 牲牢之備不如藜藿之逮親也 親往而不還 養旣莫逮則人子窮天地之悔慟인들 曷有其極 爲人子者欲養其親인댄 宜汲汲於逮親之存 可也니라 古人 云孝子事親 雖過於大舜曾子라도 亦非過分事也라하니 惟此一語若非有誠孝之超出古今者 決不能如此言之耳니라 嗚呼 凡我後孫 臨墓所而參拜者若不自知其養不逮親之罪 曾木石之不若矣니라 自古有志之士値時運之不齊하야 其言 不行하고 其志莫展則必恬退不仕하야 不見知而不悔하나니 我先祖乃爾니라 不覺 感淚潸然일새 遂爲之書하야 以寓永慕之意하며 以備警省之資云爾로라
檀紀 四千三百十三年 庚申秋
後孫 鐸聲 謹撰幷書
【번역】
사람들은 대체로 가난하였을 적에는 재물을 모아 부모를 봉양하리라 생각하다가 집안이 부유해지면 부모님이 살아 계시지 않으며, 미천했을 때는 영화를 얻어 부모를 봉양하려고 생각하지만 정작 녹을 얻으면 어버이는 계시지 않는다. 머물지 않고서 떠나가는 것은 세월이요, 한 번 가면 미칠 수 없는 것이 부모이다.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려고 해도 어버이는 기다려 주지 않으니, 하늘에 울부짖고 땅을 치며 통곡한들 미칠 수 없고, 간을 태우고 가슴이 찢어진들 미칠 수 없다. 두렵고 방황하는 마음으로 구하려고 해도 구할 수 없으며, 급급하고 우러러보는 마음으로 따르려 해도 따를 수 없다.
그러므로 돌아가신 뒤, 제사상에 올리는 진수성찬이 부모 생전에 하나의 도시락으로 받드는 것만 같지 못하며, 사후에 소를 잡아 성대한 장례를 치르는 것보다는 생전에 닭을 삶아 봉양하는 것만 같지 못하며, 사후에 올리는 기름지고 풍요로운 음식보다는 생전에 냉수 한 그릇 대접하는 것만 같지 못하며, 제사상에 많은 고기를 갖추어 올리는 것보다는 된장국으로 봉양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
어버이는 한 번 떠나가면 돌아오지 않는다. 봉양할 수 있을 때 잘 봉양하지 못하면, 자식은 천지가 다하도록 후회하고 통곡한들 어찌 그 다할 수 있으랴. 그러므로 자식된 이로서 부모를 봉양하고자 한다면, 부모가 계실 때 부지런히 모시는 것이 옳은 일이다.
옛말에 효자가 어버이를 섬길 적에 순임금과 증자보다 더 잘 모셨다 할지라도 이는 자식의 분수에 지나친 일이 아니다. 하였다. 이 한마디 말은 참으로 고금에 뛰어난 효자가 아니고서는 결코 이와 같은 말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 우리 후손들이 묘소에 임하여 참배하는 자가 부모가 계실 때 받들지 못한 죄를 스스로 알지 못한다면, 이는 목석만도 못할 것이다. 아! 슬픈 일이다.
예로부터 뜻이 있는 선비가 시운을 만나지 못하여 그 말을 행하지 못하고 그 뜻을 펼 수 없으면, 반드시 편안한 마음으로 물러나 벼슬하지 아니하여 자신을 알아 주지 않는 데에도 후회하지 않는 법이다. 우리 선조가 바로 그러한 분이다. 그러므로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드디어 이 글을 써서 길이 사모하는 마음을 붙이어 경계하고 반성하는 바탕으로 삼고자 한다.
단기 4313년(1980) 경신 가을
후손 택성 삼가 짓고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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