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鶴月京山大宗師舍利塔碑銘 幷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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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4-06-27 13:46 조회7,06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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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爲慧炬 作昏衢之大明이요 法是慈航이라 濟苦海之深溺이니 若不歸依佛法이면 安能利益人天이리오 揚法水之淸하야 以邀覺月之照하고 於是 以禪定으로 爲之骨하며 以看經으로 爲之肉하며 以粥飯으로 爲之皮하며 以行智具足으로 爲之眼目爲之手足則一人之凡身 儼然做一法王之身也 鶴月大宗師是其人也니라 宗師 俗姓 孫氏 本貫 密陽이며 俗名 喜璡이요 法名 京山이며 鶴月 其號也 依鏡峰老師嗣法하다 鳳俊이요 李氏 檀紀四二五○年 丁巳五月三日 生於咸北北靑郡陽化面湖滿浦里하다 幼時 入學하야 北靑農校卒業하고 至十九歲 入金剛山楡岾寺하야 依秀庵和尙得度하고 受具足戒于東山長老하다 至二十四歲時 於楡岾寺專門講院 大敎科修了하고 自以 有出塵之志하야 頓捨敎義하고 周遊摩訶衍上院寺梵魚寺定慧寺極樂庵等諸方禪肆하야 修禪安居하니 富貴也 貧賤也 是非也 好惡也 其於宗師之分上 如浮雲之過太虛也러라 至三十九歲時 觀宗團之衰微하고 慨然有淨化之願하야 與曉峰東山靑潭 等 諸元老 發起謀議하야 勇往邁進하고 百折不屈하야 遂成不朽之業하니 二十年來 五度總務院長之職 東國學園理事長 世界佛敎徒協會韓國支部 委員長 韓國宗敎協議會會長 韓國佛敎總聯合會會長 桐華寺住持 羅城達摩寺祖室 無門關六年苦行 等 是其實績而皆所以回狂瀾於旣倒하고 引墜緖於末流者也니라 禪觀之餘 所著者有三處傳心一卷 行于世하다 至己未年陰十一月七日 卯時하야 於寂照庵 奄然入寂하니 世壽 六十三이요 法臘 四十二也 以宗團葬으로 奢維하야 得舍利三百四十八顆하니 五色 具備하야 燦然有光이라 百年以來 初有之瑞相也로다 舍利者 是梵語而以飜則有三義하니 曰精聚 曰骨神이며 曰不思議也 盖所以精修三業之結晶體也 辭章 可外飾이어니와 心不可欺也니라 嗚呼 師也承古聖之遺響於數千載之後하야 今以法王之嗚으로 試向人間一嗚焉하니 師亦可謂法王之功德身者也로다 盖非其人而銘之 君子不與也 銘之而非其實이면 君子不爲也 今師之銘也 以其人而銘之하고 以其實而銘之 因其門徒之囑而敍其顚末如右하야 以示來者하노라
 
應化 三千九年 壬戌 三月 三日
五臺山人 呑虛宅成 撰幷書
【번역】
부처님은 지혜의 횃불이시기에 어둠의 거리에 큰 광명이 되시고, 불법은 자비의 배이기에 고해에 빠진 이를 건져 주셨다. 불법에 귀의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사람과 하늘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법의 맑은 물을 뿌려서 깨침의 달이 비추어 몸을 맞이하고, 이에 선정(禪定)으로 뼈를 삼고 경전을 보는 것으로 살을 삼으며, 죽과 밥으로 가죽을 삼고, 행실과 지혜가 구족함으로 안목과 수족을 삼는다면, 범부의 몸이 의젓한 법왕의 몸이 될 것이다. 학월 대선사가 바로 그러한 분이라 하겠다.
선사의 속성은 손씨요, 본관은 밀양이며, 속명은 희진(喜璡)이요, 법명은 경산(京山)이며, 학월은 그의 법호이다. 경봉 노선사에게 귀의하여 법을 이었다. 부친의 이름은 봉준이요, 모친은 이씨이다. 단기 4250년(1917) 정사 5월 3일, 함경북도 북청군 양화면 호만포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학교에 들어가 북청농업학교를 졸업하고, 19세에 금강산 유점사에 들어가 수암(秀庵)스님에게 귀의하여 도첩을 얻고, 동산 노스님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24세에 유점사의 전문강원에서 대교과를 수료하고 그 후로부터 세속을 벗어나려는 뜻을 가지고서 교학의 의리를 버리고, 마하연, 상원사, 범어사, 정혜사, 극락암 등 여러 선원에 머물면서 선을 닦으며 안거하였다. 부귀 빈천 시비 호오(好惡)는 선사의 본분에 있어서 뜬구름이 허공을 지나는 것과 같았다.
39세에 종단의 쇠퇴함을 보고서 개연히 정화하려는 원을 가지고서 효봉, 동산, 청담 등 여러 원로스님들과 함께 발기하고 모의하여 용감스럽게 매진하여 일백 번 꺾여도 굽히지 않은 절개를 가지고서 마침내 불후한 위업을 이룩하였다. 20년 동안에 다섯 차례나 총무원장을 역임하였고, 동국학원 이사장, 세계불교도협회 한국지부 위원장, 한국종교협의회 회장, 한국불교총연합회 회장, 동화사 주지, 나성 달마사 조실, 무문관 6년 고행 등은 그의 실적인 동시에 그 모두가 앞서 무너진 광란(狂瀾)을 돌이키고, 말류에 떨어진 실마리를 끌어 일으켜 세운 일이라 할 것이다. 선관의 여가에 지은 저술로는『삼처전심(三處傳心)』1권이 세상에 널리 전해지고 있다.
기미년(1979) 음력 11월 7일 묘시에 적조암에서 열반하시니 세수는 63이요, 법랍은 42이다. 종단장으로 화장하여 사리 348과를 얻으니 오색이 영롱하여 찬란하게 빛을 발하니, 백 년 이후에 처음 있는 상서였다. 사리란 범어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세 가지의 뜻이 있다. 정기의 결정체요, 신령한 뼈요, 불가사의이다. 이는 3업(三業)을 정밀하게 닦은 데에서 얻어지는 결정체이다. 문장은 겉으로 꾸밀 수 있으나 마음은 속일 수 없다. 아! 스님은 옛 성인의 유업을 수천 년 후에 계승하여 오늘날 법왕의 말씀을 인간 세상에 향하여 한 번 울렸으니, 선사 또한 법왕의 공덕신이라 말할 만하다.
그에 걸맞은 인물이 아닌데 비명을 쓰라 하면 군자는 이를 허락하지 않고, 비명을 쓰되 그 실상이 아닌 것은 군자가 쓰지 않는다. 오늘날 선사의 비명은 그에 걸맞은 사람이기에 그의 비명을 쓰고, 그에 걸맞은 실상으로써 비명을 짓는다. 이 때문에 그 문도의 부탁으로 인하여 그 전말을 위와 같이 서술하여 후생들에게 보이는 바이다.
불기 3009년(1982) 임술 3월 3일
오대산인 탄허 택성 짓고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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