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懸吐譯註 周易禪解』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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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4-03-03 13:41 조회7,470회 댓글0건본문
『懸吐譯註 周易禪解』序
周子曰 天下에 至尊者는 道요 至貴者는 德이요 人而至難得者는 道德有於身而已라하며 老子曰 爲學에 日益하고 爲道에 日損이라하시니 損之又損하야 至於無損則自然心虛而靈하리니 靈之照 爲明이요 明之實이 爲誠이요 誠之道 爲中이요 中之發이 爲和니 中和者는 公公之父요 生生之母라 肫肫乎其無內하며 浩浩乎其無外니 此는 三敎聖人이 示之以返本還源之宗旨也니라 有外者는 小之始라 小而又小하야 梏於形氣則知有我而不知有人하며 知有人而不知有道하야 物慾이 交蔽하야 戕賊者 衆하리니 此所謂吉凶悔吝이 生乎動者也라 故로 聖人이 定之以中正仁義而主靜之하시니 此又其所以開示反常合道之要道也니라 若以易理而言之則自一生二하며 自二生四하며 自四生八하며 自八生六十四하야 乃至萬有之不同이니 所謂眞如 不守自性하야 隨緣成就一切事法者也라 故로 有染淨焉하며 有苦樂焉하야 乃至有三界之客觀世界와 六途之主觀世界하나니 所謂自其異者로 視之인댄 肝膽이 楚越者也니라 若以易學而論之則六十四 只是三十二요 三十二 只是十六이요 十六이 只是八이요 八只是四요 四只是二요 二只是一이며 乃至一本無生이니 所謂無不還歸此法界者也라 故로 無三界之分이어니 天獄을 其可得乎며 無四生之異어니 苦樂을 其可得乎아 所謂自其同者로 視之인댄 萬物이 皆一者也니라 嗚呼라 自聖人이 沒하고 微言이 絶로 至于今數千餘載라 異端이 蜂起하고 傍門이 層生하고 外道 疊出하니 儒之九流와 道之三千六百과 佛之九十六種이 皆是也라 見派而迷源者 衆하고 尋流而得源者 希則各是其所非而非其所是하야 是非之紛爭이 至今未有以泯也어니와 究其歸則皆由放心而求道하고 捨性而取法故也니라.
古人이 云聖賢之學은 心性而已라하니 若也心性之外에 別有所得則雖有撑天製作과 冠古學問과 盖世文章이라도 皆未免爲異端傍門外道之歸而不可謂正路正門正道者也니라 易有聖人之道 四焉則世間何法이 不攝于此四者며 世間何事 不入于此四者哉아 然而森羅萬象은 至空而極이요 百川衆流는 至海而極이니 捨太虛而逐萬象者 迷也며 棄大海而尋衆流者는 末也니라 故此禪解는 總括象數之學하야 會歸第一義天하니 實爲闡明四聖言外之秘訣而亦可謂開示千古不傳之妙旨也라 儒道釋之度我度他 皆從這裏하고 天地人之自造自化 秪在此中이로다 故今譯注敍述은 以禪解本으로 爲正하고 傍引程朱傳義하야 其於字句之難澁處에 除其搔首攢眉之患하노니 庶幾易學이 復明於天下하야 人皆可以爲尊道貴德而逍遙於何有之鄕矣로다 且也周易總目一卷과 與曺洞五位圖太極圖比較一篇과 及正易八卦解說一段을 竝付于後하노니 庶幾復見聖人之微意而求之者 有要로다 噫라 乃若儒釋心要則存乎黙契니 黙契焉이면 盡矣라 所謂通於一而萬事畢者也니라.
應化 三千九年 壬戌之春
呑虛는 樞星峯下에서 씀
【번역】
주자(周子)가 이르되 “천하에 지극히 높은 것은 도(道)요, 지극히 귀한 것은 덕(德)이요, 인생으로서 지극히 얻기 어려운 것은 오직 도덕(道德)을 자신의 몸에 간직하는 것이라.”고 하였으며, 노자(老子)가 이르되 “학(學)을 하매 날로 더하고 도(道)를 하매 날로 손(損)한다.” 하시니 손(損)하고 또 손(損)하여 손(損)할 게 없는데 이르면 자연히 심(心)이 허(虛)하여 영(靈)하리니 영(靈)의 조(照)가 명(明)이 되고 명(明)의 실(實)이 성(誠)이 되고 성(誠)의 도(道)가 중(中)이 되고 중(中)의 발(發)이 화(和)가 되나니, 중화(中和)란 것은 공공(公公)의 부(父)요 생생(生生)의 모(母)라. 순순(肫肫: 懇誠貌)하여 그 내(內)가 없으며 호호(浩浩)하여 그 외(外)가 없나니 차(此)는 삼교성인(三敎聖人)이 반본환원(返本還源)의 종지(宗旨)로써 보인 것이니라.
외(外)가 있는 것은 소(小)의 시(始)라. 소(小)하고 또 소(小)하여 형기(形氣)에 질곡(桎梏)한 즉 아(我)가 있는 줄만 알고 인(人)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하며, 인(人)이 있는 줄만 알고 도(道)가 있는 줄을 알지 못해서 물욕(物慾)이 교폐(交蔽)하여 장적(戕賊)하는 자가 많으리니 차(此)는 소위 길흉회린(吉凶悔吝)이 동(動)에서 생(生)한다는 것이라.
고로 성인(聖人)이 중정인의(中正仁義)로써 정(定)하여 정(靜)을 주체(主體)로 하시니 차(此)는 또 그 반상합도(反常合道)의 요도(要道)를 개시(開示)한 바니라. 만일 역리(易理)로써 말하면 일(一)로부터 이(二)를 생(生)하며 이(二)로부터 사(四)를 생(生)하며 사(四)로부터 팔(八)을 생(生)하며 팔(八)로부터 육십사(六十四)를 생(生)하여 이에 만유(萬有)의 부동(不同)함에 지(至)하나니 소위 진여(眞如)가 자성(自性)을 지키지 않아서 연(緣)을 따라 일체(一切) 사법(事法)을 성취(成就)한다는 것이라.
고로 염(染)․정(淨)이 있으며 고락(苦樂)이 있어서 이에 삼계(三界)의 객관세계(客觀世界)와 육도(六途)의 주관세계(主觀世界)가 있음에 지(至)하나니 소위 그 이(異)한 것으로부터 볼진대 간(肝)․담(膽)이 초(楚)․월(越)이라는 것이니라(肝膽이 同宮이지만 肉眼으로 보면 楚越과 같이 멀다는 것이다). 만일 역학(易學)으로써 논(論)한 즉 육십사(六十四)가 다만 삼십이(三十二)요 삼십이(三十二)가 다만 십육(十六)이요 십육(十六)이 다만 팔(八)이요 팔(八)이 다만 사(四)요 사(四)가 다만 이(二)요 이(二)가 다만 일(一)이며 내지 일(一)은 본래 남이 없나니 소위 이 법계로 환귀(還歸)치 않음이 없다는 것이라.
고로 삼계(三界)의 분(分)이 없거니 천(天)․옥(獄)을 가히 얻으며 사생(四生)의 이(異)가 없거니 고(苦)․락(樂)을 가히 얻으랴. 소위 그 동(同)한 자로부터 볼진대 만물이 모두 일(一)이라는 것이니라(만물이 紛紜하나 慧眼으로 보면 一이라는 것이다. 文은『莊子』에서 出함). 오호라, 성인(聖人)이 몰(沒)하고 미언(微言)이 절(絶)함으로부터 우금(于今)에 이르기까지 수천여재(數千餘載)라. 이단(異端)이 봉기(蜂起)하고 방문(傍門)이 층생(層生)하고 외도(外道)가 첩출(疊出)하니 유(儒)의 구류(九流: 名家者流 墨家者流 陰陽家者流 縱橫家者流 法家者流 農家者流 雜家者流 小說家者流에 道家者流를 合하여 九流異端이라 함)와 도(道)의 삼천육백(三千六百: 天仙之學인 老莊을 除外하고 三千六百의 支流를 모두 傍門이라 함)과 불(佛)의 구십육종(九十六種: 外道六師가 각각 제자 15인씩 두어 90명의 제자와 根本六師를 합하여 96종이라 하니 인도철학의 전부를 망라한 것이다)이 모두 이것이라. 파(派)만 보고 원(源)을 미(迷)한 자가 많고 류(流)를 찾아 원(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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