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潭大宗師舍利塔碑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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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4-07-15 14:56 조회6,724회 댓글0건본문
스님의 法號는 秋潭이요 法名은 純이며 俗姓은 密陽朴氏다 一八九八年 九月十三日 咸鏡南道 咸興에서 父朴永淑公과 母坡平尹氏의 次男으로 출생하였다 咸興公立中學校를 마치고 日本大正大學에서 佛敎哲學을 專攻한 뒤 還鄕하여 海東佛敎靑年會를 조직하여 靑年들을 敎化하는 한편 咸興私立一能學校를 설립 校長에 취임하였다.
일찍이 學窓時節부터 三․一獨立運動에 가담하여 獄苦를 치른바 있었는데 이제 더욱 투철한 抗日意識을 고취하던 차 重患으로 生死의 岐路에 섰을 때 咸興歸州寺에서 修養精進을 하며 歸佛할 뜻을 확고히 하던 중 마침내 서울 三角山 奉國寺에 入山하여 晦明日昇和尙法下에서 得度하니 世尊七十六代로 淸虛休靜十三世 法孫이 된다 金剛山乾鳳寺에서 大敎科를 修了하고 禪理를 參究한 뒤 寂照庵에 住錫中 六․二五戰亂을 만나 金井山梵魚寺等地에서 修禪安居하며 佛敎淨化運動에 적극 參與하여 正法具現에 앞장섰다 佛敎再建을 위하여 曹溪宗憲 제정으로 統合宗團을 발족하여 曹溪宗團의 淨化促進의 한 求心點이 되었다 宗團公職으로는 總務院初代敎務部長 佛敎新聞主筆 編輯委員 中央宗會副議長 法規委員 監察委員 元老 등을 歷任하였고 世界佛敎指導者大會때 韓國代表로 활약하였다.
그리고 三角山寂照庵 母岳山金山寺 鼎足山傳燈寺 俗離山法住寺 雪嶽山神興寺 逍遙山自在庵 등 大小 名刹의 住持로 佛法宣揚과 伽藍守護에 많은 業績을 남겼으며 특히 一九六四年 端午節에는 法相宗 宗刹인 法住寺에 彌勒佛像을 建立廻向하며 항상 現在에서의 새로운 覺悟밑에 正法信心을 견고히 하라고 그 碑文에 썼으니 永世토록 紀念될 大作佛事라 아니할 수 없다 늘 門徒들에게 正直․勇氣․時間이 人間의 三大生命임을 說하며 尊敬과 理解와 사랑의 心性을 갖도록 강조하여 感化받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晩年에 法門集『矛盾의 合理性』을 세상에 전하고 一九七八年 十月二十六日 홀연 入寂하니 世壽八十一이요 法臘四十二였다 曹溪宗 元老葬으로 茶毘하여 精修三業의 結晶體로 舍利 二十四顆를 거두어 이곳 消遙山 眞修道場에 秋潭宗師의 舍利塔을 세운다.
佛紀 二五二六年 壬戌 十月二十日
五臺山人 呑虛 金宅成 撰
【번역】
스님의 법호는 추담이요, 법명은 순(純)이며, 속성은 밀양박씨다. 1898년 9월 13일, 함경남도 함흥에서 부친 박영숙과 모친 파평윤씨의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함흥 공립중학교를 마치고, 일본 대정대학에서 불교철학을 전공한 뒤 환향하여 해동불교청년회를 조직하여 청년들을 교화하는 한편 함흥 사립 일능학교를 설립, 교장에 취임하였다. 일찍이 3․1 독립운동에 가담하여 옥고를 치른 바 있는데 더욱 투철한 항일의식을 고취하던 차 중환으로 생사의 기로에 섰을 때, 함흥 귀주사에 귀의할 뜻을 확고히 하던 중 끝내 서울 삼각산 봉국사에 입산하여 회명일승(晦明日昇) 법하에서 득도하니, 세존 75대로 청허휴정 13세 법손이다.
금강산 건봉사에서 대교과를 수료하고 선리(禪理)를 참구한 뒤 적조암에 주석 중 6․25 전란을 만나 금정산 법어사 등에서 수선안거하며 불교 정화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정법 구현에 앞장섰다. 불교 재건을 위하여 조계종헌을 제정하여 통합종단을 발족시켰고, 조계종단의 정화추진의 구심점이 되었다. 종단 공직으로는 총무원 초대 교무부장,〈불교신문〉주필․편집위원, 중앙종회 부의장, 법규위원, 감찰위원, 원로 등을 역임하였고, 세계불교지도자대회 때 한국대표로 활약하였다. 그리고 삼각산 적조암, 모악산 금산사, 정족산 전등사, 속리산 법주사, 설악산 신흥사, 소요산 자재암 등 대소 명찰의 주지로 불법선양과 가람수호에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특히 1964년 단오절에는 법상종 종찰인 법주사에 미륵불상을 건립, 회향하면서 “항상 현재에서의 새로운 각오로 정법, 신심을 견고히 하라”고 비문을 썼으니 그 비문은 길이 기념이 될 대작 불사라 아니 말할 수 없다.
항상 문도들에게 정직, 용기, 시간이 인간의 삼대 생명임을 설하며, 존경과 이해와 사랑의 심성을 갖도록 강조하여 감화받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만년에 법문집『모순의 합리성』을 세상에 전하고, 1978년 10월 26일에 입적하였다. 세수 81이요, 법랍 42이다. 조계종 원로장으로 다비하여 정수삼업(精修三業)의 결정체로 사리 24과를 수습하여 이곳 소요산 진수도량에 추담종사의 사리탑을 세운 것이다.
불기 2526년(1982) 임술 10월 20일
오대산인 탄허 택성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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