現代의 苦惱를 宗敎에 묻는다(9)-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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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7-12-06 13:51 조회6,267회 댓글0건본문
〔9〕생사 문제를 초월하는 방법
그러나 불교에는 ‘주일무적(主一無適)’하고 ‘구방심(求紡心)’하는 방법론이 조직적, 체계적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상․중․하의 근기에 따라 각각 그 방법이 다른데 상근기(上根機), 즉 제일 잘난 이를 위해서는 참선(參禪)하는 법이 있습니다.
참선은 교리적으로나 언론이나 사량(思量)으로 이해될 수 없는 조사(祖師)의 말씀을 참구(參究)하는 것입니다. 이런 조사들의 말씀 중 대표적인 것을 1천 7백 공안(公案)이라 하지요. 예컨대 소금이 어떤 것이냐고 물을 때 싱겁지 않은 것이라든가 짜다던가 하는 식으로 답하는 것이 아니고, 직접 소금을 먹여 소금이 어떻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하는 방법입니다.
그 다음 중근기(中根機)를 위해서는 교리적으로 들어가는 ‘관법(觀法)’이 있습니다. 팔만대장경 교리는 모두 차전(遮詮)이 아니면 표전(表詮)으로 되어 있습니다. 차전이라면 부정하는 말로 소금을 물을 때 싱겁지 않은 것이라고 대답하는 것과 같고, 표전이라면 긍정한 말로 소금을 물을 때 짜다고 대답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교리를 연구해서 들어가는 관법(觀法)으로는 정관(靜觀)․환관(幻觀)․적관(寂觀)[圓覺經]의 3가지가 있습니다. 천태종에서는 이를 공(空)․가(假)․중(中) 삼관(三觀)이라고 하지요.
먼저 정관(靜觀)이라는 것은 주관적인 면에서 공부하는 것입니다. 즉 주관적인 면에서 우리 한 생각이 일어나면 이것이 어디서 일어나는가 염념(念念)히 살펴서 생각 일어나는 자리가 본래 없다는 것을 확연히 보아 도에 들어가는 방법입니다.
다음으로 환관(幻觀)은 우주의 삼라만상을 객관적인 면에서 공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행동할 때의 모든 것을 실(實)로 있다고 보지 않고 환(幻), 즉 꿈으로 본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삼라만상을 꿈으로 보면 집착이 없지 않겠습니까? 실로 보는 데서 집착이 생기고 고통이 생기는 거죠. 이와 같이 닦아 도에 들어가는 것을 환관(幻觀)이라고 합니다.
그 다음이 적관(寂觀)인데, 적관이라는 것은 주관적인 면과 객관적인 면을 합해서 공부하는 방법입니다. 다시 말해 안으로 마음이 일어나는 곳을 찾아봐도 일어나는 곳이 없고, 밖으로 우주 삼라만상을 봐도 삼라만상이 꿈같은 것이어서 실(實)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아 주관․객관이 함께 없어지는 것을 적관(寂觀)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교리적으로 정(靜)․환(幻)․적(寂) 삼관으로 닦게 한 것은 중근기(中根機)를 위한 방법이고, 아주 못난 사람 즉 하근기(下根機)도 도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을 염불문(念佛門) 혹은 비밀문(秘密門)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무슨 생각이 나든지 마음을 흩트리지 않고 열심히 진언(眞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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