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懸吐譯解 道德經選註』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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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4-03-12 09:54 조회7,586회 댓글0건본문
『懸吐譯解 道德經選註』序
夫道德之爲體也 沖虛妙粹하고 炳煥靈明하야 冥通於三際之中而無去無來요 洞徹於十方之界而非中非外며 昭昭於心目之間而無迹可尋이요 隱隱於視聽之際而非言可議라 近不離於眉睫하고 遠不出於象先이니 蕩蕩巍巍하야 卓然而獨存者也니라.
古之聖人이 抱此道德之蘊奧하야 或鳴於東夏하고 或鳴於西域하니 所謂一法之中에 儒之植根과 道之培根과 釋之拔根者 是也니라 老子之敎는 分四하니 一曰玄理派니 如晋之淸談家何晏王弼之徒 是也요 二曰丹鼎派니 如魏伯陽 葛穉川等이 是也요 三曰占驗派니 如于吉 郭璞 李淳風等이 是也요 四曰符籙派니 如張角 張道陵 陶弘景 寇謙之等이 是也니라.
仙道之淵源은 出自黃老라 黃帝之於鼎湖에 騎龍上天하고 老子之於函關에 乘牛遯世 已開其端이니 所謂 丹鼎派者 是也니라 其書之如黃庭經參同契丹經等이 無非修煉之要訣이며 服餌之秘方也니 若其功行丹成則謂可白日昇天하야 得長生不死者 卽其術也니라.
佛有三乘하고 仙有五等則佛乘之外엔 無非權設也요 天仙之外엔 皆是傍門也니라 天仙之學은 老莊이 是也니 莊子曰 死生이 亦大矣로대 而不得與之變하고 雖天地覆墜라도 亦將不與之遺라하며 老子曰 死而不亡者 壽라하시니 死生이 一揆요 天人이 同源이라 四大 本非我有어니 豈死生之可見이며 識心이 元是幻化이니 豈生滅之可覩哉아 此는 身心世界 混融爲一하야 總爲一眞法界者也니 孟子所謂聖而不可知之謂神과 莊子所謂物化者 皆指此也니라.
蘇子由曰中者는 佛性之異名而和者는 六度萬行之總目也라하니 喜怒哀樂之未發이 豈非觀妙之道乎며 發而皆中節이 豈非觀徼之道乎아 形而上者 豈非常無之道乎며 形而下者 豈非常有之道乎아 老子之道는 以淸靜無爲로 爲宗하고 以虛明應物로 爲用하고 以慈儉謙下로 爲行則慈非仁乎며 儉非義乎며 謙非禮乎아 盖道德者는 仁義禮之大全而仁義者는 道德之一偏이니 黃老之學은 貴合而賤離라 故以道德으로 爲本이요 六經之敎는 於渾者에 略하고 於散者에 詳이라 故以仁義로 爲用이니라 故로 邵子曰 老子는 得易之體하고 孟子는 得易之用이라하니 豈有無體之用과 無用之體哉아 卽體之用故로 用不離體요 卽用之體故로 體不離用이니 此는 一而二요 二而一者也니라 故로 孔孟이 未嘗譽未嘗毁하시니(論語에 曰 述而不作하고 信而好古를 吾竊比於我老彭이라하며 孟辯楊墨이 甚於桀紂而未嘗言及於老子者라) 於斯에 可見聖人之時異而道同하고 言殊而理合이로다 離合은 在時라 不由於道요 詳略은 在人이라 不關於法이니라 萬縷 非不衣也로대 不可以一縷로 爲衣요 萬目이 非不網也로대 不可以一目으로 爲網이니 擧綱則網自擧요 振領則衣自振이니라.
今道德經者는 擧綱振領之敎也니 所謂百川衆流 至海而極하고 森羅萬象이 至空而極者也니라 古今註疏 無慮數百家로대 各以已意而解經하고 不以經義而釋經이라 故로 乳非城外者 頗多하며 且雖有彼善於此者나 未得全經之大義라 故로 挽近以來에 性命之學이 不講於世하야 而道德之裂이 久矣로다 世之學者 不幸蔽於不該不遍一曲之書而日汨於傳註之卑하야 以自失其性命之情하고 不復知天地之大醇과 古人之大體也하나니 嗚呼哀哉라 痛纏心腑로다.
故今譯解選注는 採拓其古之註疏의 精且微者하야 以講義本으로 爲正하고 以諸家解義로 爲助하니 庶幾道德之要妙 無復餘蘊而人皆可以復性命之正矣로다 彼飛仙變化之術과 黃庭大洞之法과 太上天眞木公金毋之號와 天皇太乙紫微北極之祀와 下至於丹藥奇技符籙小數히 如水投海에 皆得鹹味하야 建一切法도 亦在於我矣며 蕩一切法도 亦在於我矣리니 如是則豈非世間出世間의 一介眞大丈夫也리오.
看經之法은 先讀經文하고 且看講義하며 後閱諸註하야 於經義上一文一句에 無不奏刀然後에 放下其講義與諸注하고 再看經文하야 熟讀翫味하면 我知其渙然氷釋하고 怡然理順하야 天下殊途而同歸요 百慮而一致라 遊戱於不識不知之地하며 逍遙於何思何慮之天矣리라.
應化 三千九年 壬戌之寒際
五臺山人 呑虛 識
【번역】
대저 도덕(道德)의 체(體)가 됨이 충허(冲虛)․묘수(妙粹)하고 병환(炳煥)․영명(靈明)하여 삼제(三際)의 중(中)에 명통(冥通)하되 거(去)함도 없으며 래(來)함도 없고, 시방(十方)의 계(界)에 통철(洞徹)하되 중(中)도 아니요 외(外)도 아니며, 심목(心目)의 간(間)에 소소(昭昭)하되 자취를 가히 찾을 수 없고, 시청(視聽)의 제(際)에 은은(隱隱)하되 말로 가히 의(議)할 게 아니라. 가까이는 미첩(眉睫)에 여의지 않고 멀리는 상선(象先)에서 벗어나지 않나니, 탕탕(蕩蕩)하고 외외(巍巍)하여 탁연(卓然)히 독존(獨存)하는 것이니라.
옛 성인(聖人)이 이 도덕(道德)의 온오(蘊奧)를 포(抱)하여 혹은 동하(東夏)에서 명(鳴)하고 혹은 서역(西域)에서 명(鳴)하니 소위 일법(一法)의 중(中)에 유(儒)의 식근(植根)과 도(道)의 배근(培根)과 석(釋)의 발근(拔根)이라는 것이 이것이니라. 노자(老子)의 교(敎)는 사(四)로 분(分)하니 일(一)은 현리파(玄理派)라 이르나니 진(晉)의 청담가(淸談家)인 하안(何晏)과 왕필(王弼)의 도(徒)가 이것이요, 이(二)는 단정파(丹鼎派)라 이르나니 위백양(魏伯陽)과 갈치천(葛穉川) 등이 이것이요, 삼(三)은 점험파(占驗派)라 이르나니 우길(于吉)과 곽박(郭璞)과 이순풍(李淳風) 등이 이것이요, 사(四)는 부록파(符籙派)라 이르나니 장각(張角)과 장도릉(張道陵)과 도홍경(陶弘景)과 구겸지(寇謙之) 등이 이것이니라.
선도(仙道)의 연원(淵源)은 황노(黃老)로부터 출(出)한지라 황제(黃帝)가 정호(鼎湖)에서 용을 타고 상천(上天)하고 노자(老子)가 함곡관(函谷關)에서 소를 타고 둔세(遯世)함이 이미 그 단서(端緖)를 개(開)한 것이니, 소위 단정파(丹鼎派)라는 것이 이것이니라. 그 서(書)의 황정경(黃庭經: 老子의 所著)․참동계(參同契: 魏伯陽의 所著)․단경(丹經: 悟眞人의 所著)과 같은 등이 수련(修煉)의 요결(要訣)이며 복이(腹餌)의 비방(秘方)이 아님이 없나니, 만일 그 공(功)이 행(行)하여 단(丹)이 성(成)한 즉 백일승천(白日昇天)하여 장생불사를 얻는다 말한 것이 곧 그 술(術)이니라.
불(佛)은 삼승(三乘)이 있고 선(仙)은 오등(五等)이 있은 즉 불승(佛乘)의 외(外)엔 권설(權設)이 아님이 없고 천선(天仙)의 외(外)엔 다 이 방문(傍門)이니라. 천선(天仙)의 학(學)은 노(老)․장(莊)이 이것이니 장자(莊子)가 이르되 “사생(死生)이 또한 크되 시러금 더불어 변(變)하지 않고 비록 천지(天地)가 복(覆)․추(墜)하여도 또한 장차 더불어 유실(遺失)치 않는다.” 하며, 노자(老子)가 이르되 “사(死)하되 망(亡)하지 않는 자가 수(壽)라.” 하시니 사생이 한 법이요 천인이 한 근원이라. 사대(四大)가 본래 나의 소유가 아니니 어찌 사생(死生)을 가히 보며 식심(識心)이 원래 환화(幻化)어니 어찌 생멸(生滅)을 가히 보랴. 이는 신(身)․심(心)․세계(世界)가 혼융(混融)해 일(一)이 되어서 모두 일진법계(一眞法界)가 된 것이니 맹자(孟子)의 소위 “성(聖)으로서 불가지(不可知)임을 신(神)이라 이른다.” 함과 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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