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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꾸는 행복과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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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0-07-28 10:35 조회5,87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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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본래자원성   諸法本來自圓成
시심실개본구족   是心悉皆本具足
작야월락여서산   昨夜月落如西山
금조일출적동천   今朝日出赤東天

모든 법은 본래 스스로 원만히 이루어졌고,
이 마음도 본래 모두가 원만히 갖추어졌네.
어제 저녁 달은 여전히 서산으로 졌음이요,
오늘 아침 해 또한 동쪽에서 떠오르네.

우리의 민속절기인 칠월칠석은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이라고 합니다. 이날은 건너별에 살고 있는 견우와 직녀가 일 년에 단 한 번 만나는 날로 이들의 만남을 위해 가치와 까마귀가 머리에 돌을 이고 다리를 놓아 주기 때문에 새들의 머리가 전부 벗겨진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또한 이날은 견우와 직녀가 만남의 기쁨에 눈물을 흘려 꼭 단비가 내린다는 겁니다. 아마도 금년에는 너무나 기뻐서 통곡을 하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 또한 전설일 뿐입니다. 까치와 까마귀가 다리를 놓아 주는 것도, 견우와 직녀가 반가워서 눈물을 흘려 인간 세상에 비가 내린다는 것도 인간이 지어낸 이야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해는 언제나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진다고 알고 있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해의 모습 또한 그러하구요. 하지만 실제로 해가 하늘 위로 둥실 떠올랐다가 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해 주변을 지구가 스스로 돌면서 조금씩 움직이기 때문에 우리 눈에 그렇게 보이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의 눈에 보이는 대로 해가 뜨고 진다고 말을 합니다. 해는 그 자리에 있을 뿐인데요.

우리 인간이 행복과 불행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행복을 찾는다고 해서 반드시 구해지는 것도 아니고, 불행해지려고 해서 불행해지는 사람 또한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저 끝없는 옛적부터 지어온 업에 따라서 오늘의 모습이 정해지는 것뿐입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행복이나 불행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신이 지은 업은 생각하지 않고 남으로부터 행복과 불행이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선 행복해지면 다행이라고 깔깔거리고 웃고, 또 불행해지면 남의 탓이라 생각하고 그 대상에게 원망하곤 합니다.

그러나 결코 아닙니다. 우리 불자님들은 이러한 어리석음에 머무르지 말고, 행복하든 불행하든 항상 내 자신을 돌이켜서 스스로 반성할 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곡식은 씨앗에서 싹이 틉니다. 잘 아시다시피 벼나 보리의 낱알을 땅에 심은 뒤 적당한 온도와 습기를 제공하면 쉽게 싹을 틔웁니다. 땅 아래에선 뿌리를 내려 땅에 있는 수분이나 영양분을 빨아들이며 차츰 차츰 자라납니다. 이렇게 자라 나중에 벼이삭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디는 것입니다. 아름드리 큰 나무도 마찬가지로 씨앗에서 싹을 틔운 뒤에 스스로 뿌리를 내려 울창한 나무로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자연의 이치가 그러하듯 우리 중생들도 역시 자신의 전생 업에 의해서 작은 싹을 틔우고, 그 업을 바탕으로 되풀이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이 세상에 뿌리 내린 업은 사람들에게 못된 짓과 좋은 짓을 하게끔 합니다. 욕을 차츰차츰 하다 보면 주위 사람들에게 ‘아무개는 입이 험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싸움도 한두 번 하다 보면 점점 늘어서 싸움꾼이 되어 버립니다. 이와 반대로 착한 일을 하다 보면 그것이 버릇이 되어 ‘아무개는 찾한 사람이다’라고 종종 칭찬을 듣게 됩니다.

이렇듯 우리는 어떻게 업을 짓고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주변인들에 의해 다양한 모습으로 만들어지게 됩니다. 악한 짓이든 좋은 짓이든 나도 모르게 내 진심 어린 행동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지요.

부처님은 이것을 ‘습(習)’이라 했습니다. 우리말로 풀어보면 ‘버릇’이 됩니다. 그 버릇을 어떤 형태로 키워 가느냐에 따라 내생에 오는 고통, 불행 또는 기쁨, 행복 등이 결정되고, 그것을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 결과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지금 내가 겪고 있는 행복과 불행으로 점철된 현실 역시 내가 이전에 지은 행동과 언어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전생(前生)과 금생(今生), 내생(來生)의 관계에 대해 묻는 질문에 “금생에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모습을 보라 그것이 내가 전생에 지은 결과이니라. 또한 금생에 내가 하는 행동을 통해 나의 내생을 보면 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고, 어디 용하다고 소문난 곳에 가서 점을 보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마세요.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을 냉정하게 돌이켜 보면 행복한 삶을 살다가 극락에 가게 될 것인지, 그와 반대가 될 것인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행복과 불행은 누군가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언어와 행동의 결과로서 오는 것뿐입니다. 다른 이에게 언행이 일치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게 되면 나중에는 아무리 진실을 말해도 남이 그것을 받아주지 않습니다. 이솝우화에 등장하는 양치기 소년과 늑대 이야기를 통해서도 다들 알고 계실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법구경(法句經)』 이라는 경전에 설파하신 말씀 중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모든 것은 마음가짐에 따라 이루어지느니 사악한 마음으로 말을 하거나 행동하면 괴로움이 그 사람을 따라다니고, 깨끗한 마음으로 말을 하거나 행동하면 행복과 보람이 그 사람을 따라다닐 것이니라.“

바로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과 같이 행복과 불행은 내 마음가짐과 내 행동의 결과에 따라서 찾아온다는 것을 의미하신 말씀입니다.

올해 태풍이 지나간 자리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아프게 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서로에게 위로를 건넬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오늘의 이 재난은 우리 모두가 함께 지은 공동의 업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를 직시하고 내일을 위한 밝은 교훈으로 삼아야 할 줄로 압니다. 오늘을 통해 우리 자신의 행동을 냉정하게 보고 스스로를 비판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 불기 2546년 8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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