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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사 입구에서 큰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4킬로미터 가량 올라가면 길 왼쪽으로 상왕봉 중턱에 있는 자그마한 암자가 북대(北臺) 상두암(象頭庵) - 미륵암 이다. 멀리서 보면 코끼리 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상두암의 창건은 보천태자의 유언에 따라 이루어졌다.
석가모니불을 수반으로 한 오백나한(五百羅韓)을 모시는 곳으로서 이곳에 나한당(羅漢堂)을 지으라고 한 태자의 유언에 따라 절을 세우고 이름을 백련사(白蓮社)라 하였다. 그 뒤 수백 년 동안 나한도량으로 명맥을 이어왔다.
이 암자의 이름이 중간에 바뀐 이유는 기록에 없지만 나옹스님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 귀국한 나옹스님은 1360년 가을 오대산으로 들어와 북대에 머물렀다. 그때 북대는 상두암이라 불렸다. 그즈음 승려들이 북대에 있는 16나한상을 상원사로 옮기기로 결의 하였다. 그러나 무거운 나한상을 십리도 더 떨어진 곳으로 옮기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나옹스님이 그 때 혼자서 모두 옮기겠다고 자청하고 나섰다.
옮기기로 한 날의 저녁이 다 되어 가자 나옹스님은 나한전으로 들어가 "이 화상이 업어서 옮겨 주기를 기다리는가!"했다. 그러자 나한상들이 스스로 일어나 차례로 상원사로 날아갔다. 그러나 상원사로 가서 보니 15나한만이 도착해 있었다. 나머지 한 나한상의 행방을 찾아 나선 스님들이 칡넝쿨에 걸려 있는 나한상을 발견하고 모셔 왔다고 한다. 이에 나옹스님은 오대산 산신을 불러 이운불사(移運佛事)를 방해한 칡넝쿨을 오대산에서 몰아낼 것을 명하니 이때부터 오대산에는 칡넝쿨이 없어졌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로 고려 말까지 북대에 나한상이 봉안되어 있었고 후대에 미래의 주불(主佛)인 미륵보살(彌勒菩薩)로 바뀌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지금의 법당은 육이오 전쟁 뒤에 중건한 것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이다.
숲이 울창하여 해발 1,300미터가 넘는 이곳은 한국 최대 자생화의 보고(寶庫) 이기도 해서 식물학자들이 많이 찾는다. 특히 봄에 눈 속을 뚫고 솟아오르는 복수초는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심어 주기에 손색이 없다. 아울러 이곳의 감로수는 오대산 안에서도 물맛이 가장 좋기로 이름나 있다. 법당 안에는 1996년 하안거 결제 전에 파키스탄 '라호르박물관' 의 부처님 고행상을 본떠 만든 불상이 봉안되어 있었으나 2010년 북대선원이 문을 닫으면서 미륵부처님을 봉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