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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에세이] 단기 출가학교, 월정사(한국일보) 2013.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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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4-01-11 09:08 조회7,29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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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에세이] 단기 출가학교, 월정사

조은아 피아니스트ㆍ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
 
오대산의 품에 안겨있는 동안, 달은 초승달에서 상현달로 천천히 차올랐다. 월정사의 단기 출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면접을 거치자니 노스님께서 넌지시 물어오셨다. "한 달 동안 생업을 멈추고 오대산에는 뭣하러 왔누?" 나는 다만 흐리멍덩한 대답을 내놓을 수 있을 뿐이었다. "오지 않으면 안 되었던 이유를 찾고 싶습니다." 입학을 위한 경쟁은 꽤 치열했던 모양이었다. 추가 합격자로 간당간당 합류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육성으로 환호했다. 한 달의 수행생활을 함께 헤쳐나갈 49명의 도반(동료)들 역시 각기 절실한 이유로 큰마음을 내었을 것이다. 입학식이 끝나자 머리를 깎는 삭발식과 살을 태우는 수계식이 진행되었다.

매일의 일상은 시작부터 휘모리장단으로 몰아친다. 새벽 3시 반에 기상하면, 108배 큰절로 하루 일정을 시작한다. 별이 쏟아지는 하늘과 뇌수가 쩍쩍 얼어붙는 오대산의 한기를 느끼며 적광전으로 줄지어 이동하면 곧 새벽 예불이 진행된다. 선원에 바삐 돌아와서는 참선 요가로 몸의 피로를 풀고, 6시엔 후원으로 이동해 아침식사를 하며, 식사 후엔 이 땅에서 가장 빼어나다는 월정사 앞 전나무 길로 포행을 떠난다. 침엽수향과 청신한 바람을 만끽하며 숲길을 걷다 보면, 그제야 희붐한 새벽빛을 앞세우며 해가 뜨기 시작한다. 고작 아침 8시까지의 일정이 이렇게나 빽빽하다. 보통의 템플스테이라면 하루를 꼬박 쓰고도 모자랄 일정이다.

수행의 규범들은 어느 하나 허투루 된 것이 없는 듯해 인상적이었다. 있어야 할 자리, 지켜야 할 순서, 움직여야 할 동선, 해야 할 소임의 질서가 엄정하고도 명확했다. 그중 가장 낯설고도 매력적인 규율은 침묵을 지키는 '묵언'과 개인을 양보한 '공동체의 우선'이다. 어디서 무엇을 해왔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과 한방에서 자고 씻는데 얼마나 할 말이 많겠는가. 혹독한 일정과 숱한 규범을 한꺼번에 익혀야 하니 얼마나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많겠는가. 하지만 아무것도 물을 수 없고 대답할 수 없다. 게다가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얄팍한 요령도 전혀 통하지 않는다.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짓밟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도와야 내가 살 수 있다. 자본주의적 평등은 다만 기회의 균등에 불과할지 모르나, 산사에서는 한 사람의 낙오 없이 과정과 결과에 있어 모두가 합심해야 하는 것이다.

수행은 육체적으로 퍽 고되다. 규범을 지키지 않았을 땐 책임을 묻는 '참회'도 받아야 한다. 일주일새 일곱 명의 도반이 중도에 포기하고 떠나갔다. 누군가의 말처럼 몸은 집으로 가자 아우성이건만, 마음이 허락하질 않는다. 매 순간 긴장해야 하니 화장실도 편히 가기 어렵다. 벌써 일주일째 대장에선 감감무소식, 조만간 뚫어펑 약을 복용해야 할지 모른다. 몸뚱어리에 붙은 파스들도 덕지덕지 늘어간다. 엊저녁엔 하루 새 110장의 파스를 소비했다는 이유로 모두가 참회를 받았다. 스님은 절이 아직 덜 됐으니 절은 절로 풀어야 한다며 고요한 카리스마를 드러내셨다. 아이고, 이 정도면 까무러칠 수도 있겠구나 싶던 순간, 절의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그 후로도 768번을 더 채운 후에야 겨우 참회가 풀렸다.

가장 견디기 힘든 경우는 나로 인해 다른 동료들까지 참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하루는 힘들어하는 도반을 격려하기 위해 소란스레 얼싸 안는데, 이 장면을 놓치지 않은 법철스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묵언을 지키지 않았으니 각자 108배!" 나는 안달하여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힘을 불러일으키려던 의도가 힘을 빼앗게 될 지경이므로 그녀의 백팔 배까지 짊어지겠다 간청도 했다. 허나 스님께선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리곤 내 진짜 마음을 꺼내보게 하셨다. 분망한 마음은 기실 동료를 위해서가 아니라 동료의 원망을 듣고 싶지 않다는 욕망 때문이 아니겠는가. 높은 공력과 깊은 통찰은 이렇듯 숙연한 깨우침을 불러일으킨다. 백팔 배를 끝내고 동료와 나는 진심으로 합장해 인사했다. 몸이 힘들어 울컥하던 때보다 마음을 건드려 뭉클한 순간이 점점 더 늘어간다. 그러니 오대산이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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