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우 선임기자의 3박4일 출가체험
이길우 선임기자가 삭발을 하고 염의를 입은 뒤 오대산 적멸보궁을 참배했다. 삭발은 두 단계로 진행된다. 먼저 이발기로 긴 머리를 잘라내고, 면도기로 정리한다. 삭발하기 전 행자는 삭발해주는 스님께 삼배로 예의를 표한다.
출가를 꿈꾸고 가족 몰래
새벽 절 앞에서 발길을 돌렸다
그렇게 끝났다, 용기가 없어
종교담당기자로 다시 불문 앞에 섰다
20대부터 60대까지 47명
이름도 나이도 고향도 묻지 않는다 월정사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
삼보일배로 1㎞ 오체투지
무릎이 까이고, 허리가 비명을 지른다 계율과 귀의의 삼귀의계를 받고
팔뚝의 살갗을 태우는 연비를 했다 나흘 만에 집에 오니 딸이 묻는다
“누구…세요” 감사의 합장을 하고, 면도의 흔적을 담은 세숫대야를 들고 세면장에 간다. 비누칠을 한 손을 머리에 댄다. 머리카락은 없고, 그냥 피부만 있다. 그래도 비누칠을 정성껏 한다. 김이 서린 거울을 바라본다. “헉, 넌 누구냐?” 처음 보는 낯선 얼굴이다. 자세히 보니 조금은 낯이 익다. 중학교 시절의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얼굴에 주름이 생겼다. 못나 보인다. 세월의 흔적이니 그냥 봐줘야 한다. 자꾸 두 손으로 머리통을 매만져본다. 스킨도 발라본다. 형광등 아래 빛이 난다. 삭발식을 하기 전 학장 스님이 법당을 우렁차게 울리며 이렇게 외쳤다. “보전에 주인공이 꿈만 꾸더니, 무명초 몇 해를 무성했던고. 금강보검 번쩍 깎아버리니, 무한광명이 대천세계 비추네.” 부처님이 출가해 스스로 삭발하면서 읊은 게송이다. ‘금강보검’과 ‘무한광명’이란 단어가 귀에 쏙 들어왔다. 과연 내 머리에 반사된 빛이 무엇이라도 비출 수 있을까? 아! 다시 잡념이다. 결혼 한 달 앞둔 20대 여성도 지난 2일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에서 진행된 단기출가학교 삭발식에 참가한 것은 출가에 대한 ‘로망’ 때문일 것이다. 아니, 그것은 젊은 시절 못 이룬 아쉬움을 풀기 위한 것이었다. 대학 시절, 출가를 꿈꾸고 가족들 몰래 결행한 적이 있다. 모든 것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어서 택한 길이었다. 막연했다. 그냥 지리산 절을 향해 밤차를 탔다. 밤 기차의 차창에 흘러가는 민가의 불빛을 보며 진한 소주를 마셨다. 새벽에 도착한 절 앞에서 발길을 돌렸다. 용기가 안 났다. 귀가하니 가족 누구도 밤새 무엇하고 오느냐고 물어보지 않는다. 그렇게 젊은 시절 한여름밤의 출가는 실패했다. 23일간 진행되는 이번 단기출가에 모두 47명이 참가했다. 20대 젊은이로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참가자들이다. 이름, 나이, 고향을 묻지 않는다. 그냥 행자다. 대화도 하지 못한다. 교육 기간 내내 묵언이다. 또 하심이다. 마음을 내려놓고, 아래로 향해야 한다. 삭발은 남자에게는 의무사항이고, 여자는 선택사항이다. 삭발식 전날, 여성 참가자 가운데 삭발하겠다고 손을 든 이는 16명 가운데 단 2명. 스님은 이야기한다. “평생 한 번의 기회입니다. 삭발을 하면 많은 좋은 일이 생깁니다. 지금은 좋은 가발도 많아요.” 막상 삭발식이 시작되니 모두 11명의 여성 참가자가 삭발했다. 그 가운데는 결혼을 한 달 앞둔 20대 중반의 여성도 있다. 단기출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약혼자가 보고 싶다며 나가겠다고 했단다. 학장 스님이 말렸다. 입학금(71만원) 반환도 안 된다며 삼천배 하면 나가는 것을 허락하겠다고 했다. 여성은 남았고, 마침내 삭발까지 했다. 물론 부모도, 약혼자도 삭발한 사실을 모른다. 무엇이 결혼을 앞둔 여성의 머리카락을 자르게 했을까? 나쁜 업을 없애려는 ‘욕심’은 그대로 삭발을 하고 행자가 입는 고동색 염의를 입으니 외모는 출가한 것 같다. 월정사 입구의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 전나무 숲길을 삼보일배로 간다. 큰 소리로 ‘석가모니불’을 외치며 같은 박자로 삼보일배를 한다. 소리가 작으면 다시 되돌아간다. 오체투지해야 하기 때문에 이마에 흙이 묻는다. 무릎이 까이고, 허리가 비명을 지른다. “부처님은 시끄러운 이를 먼저 보살펴줍니다. 그러니 크게 악을 쓰세요.” 소원을 빌며 ‘석가모니불’을 허공에 내지른다. 가슴속 깊이 뭉쳤던 응혈이 빠져나오는 것 같다. 길 가는 등산객이 애처로운 눈초리로 바라본다. 1㎞의 숲길을 가는 데 1시간 반이 걸린다. 마침내 대웅전 앞에 도착하자 서로를 껴안으며 감격한다. “몸이 고돼야 그동안 굳게 갇혀 있던 에고가 깨집니다. 에고가 깨져야 마음이 편해집니다.” 스님의 격려가 깊이 파고든다. 수계식이다. 행자 과정에서 하지 말아야 하는 다섯 가지 계율과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삼귀의계를 받고, 팔뚝 살갗을 태우는 연비의식이 있다. 남자 행자는 왼 팔뚝에, 여자 행자는 오른 팔뚝에 쌀알만한 뜸을 뜬다. 살이 타며 따끔한 아픔이 오는 순간, 지난 세월 지은 나쁜 업은 사라진다고 한다. 문수법당 안에는 향내와 살갗 타는 냄새가 가득 찬다. 비장하다. 자신의 몸을 태워 보시하는 것이 가장 큰 보시라고 했는데, 나는 나의 나쁜 업을 없애려는 ‘욕심’을 아직 벗어나지 못한다. 삭발과 팔뚝의 뜸 자국은 남들과 구별되는 스님의 특징이다. 삭발도 하고 계도 받고, 연비도 했으니 출가한 셈이다. 마지막으로 법명을 받았다. 이번 기수의 남자 행자 돌림자는 가이고, 여성 행자의 돌림자는 석이다. 나에게 주어진 법명은 가경이다. 불경을 뜻하는 경자이니, 계속 불문과 인연이 되는 것일까? 비록 단기출가였지만 종교담당기자의 인연으로 출가 체험을 했다. 고된 행자 생활을 나흘 만에 ‘초단기’로 마치고 집에 오니, 딸이 놀라며 큰 소리로 묻는다. “누구세요?” 평창/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여자 행자 등 단기출가학교 행자들이 삭발을 한 뒤, 팔뚝에 연비를 하고, 염의를 입고 수계식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고 있다.
월정사 입구의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 전나무 숲길을 ‘석가모니불’을 외치며 오체투지로 삼보일배로 간다. 1㎞의 숲길을 가는 데 1시간 반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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