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나’ 찾아 눈밭 3보1배… 108배…(동아일보)_2010.1.3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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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1-01-31 09:12 조회7,819회 댓글0건본문
오대산 월정사 일반인 단기 출가학교 가보니
“매일 17시간 고된 수행, 몸과 마음 시원해져”
오대산 월정사의 단기 출가학교 행자들이 삼보일배를 수행하고 있다. 2월 1일 졸업식을 갖는 이 학교는 육체적, 정신적 어려움 속에 자신을 찾는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사진 제공 월정사
“안 울겠다고 맘먹었는데 ‘바리캉’이 닿는 순간 심장이 덜컥 멈춰요. 머리카락이 툭툭 떨어지는데, 입술 꽉 물고 참는데도 눈물이 흘렀어요.”
28일 오전 오대산 월정사(月精寺)의 단기 출가학교에서 만난 여성 행자 원정(元淨·25)의 말이다. 여성으로는 이례적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4일 삭발한 그는 1cm 조금 넘을까 말까 한 머리카락을 쑥스러운 듯 자꾸 만지작거렸다. 남성과 달리 여성의 삭발은 선택 사항이었다.
○ “나를 찾고 싶어요”
왜 삭발까지 했을까. “어깨까지 기른 머리카락이 아깝지만 내 안의 부처님을 제대로 찾고 싶었어요. 대학 졸업 뒤 허송세월하며 보낸 시간을 반성하고, 앞으로 인생의 주인이 되겠다는 각오도 있고요.”
출가까지 결심한 것은 아니다. 그는 “불자 집안이라 출가를 반대하지 않지만 아직 세간에서 하고 싶은 일이 많다”며 “나중에 집착이 사라지면 정말 출가할지도 모르지만…”이라고 말했다. 대학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한 그의 꿈은 여승무원이다.
“‘달라이라마의 행복론’을 보면 행복은 혼자 느끼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느끼는 것이라는 구절이 있어요. 기내에서 멋진 미소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그런 행복을 주고 싶어요.(웃음)”
이날 오전 3시 40분경 월정사는 이름처럼 이지러진 반달의 푸르스름한 달빛과 차가운 바람 속에 눈을 떴다. 기온은 영하 20도 아래로 뚝 떨어졌다. 출가학교 행자들이 적광전(寂光殿)에서의 새벽 예불을 하러 차례로 모였다. 반야심경, 무상게에 이어 ‘시방삼세 부처님과 팔만사천 큰 법보…’ 하는 발원문 대중합송이 이어진다. 오전 5시경 108배와 참선. 대부분의 행자가 힘겨워하는 시간이다.
행자들이 108배를 채운 뒤 가부좌를 틀고 참선에 들어갔다. ‘이 뭐꼬’라는 화두에 집중하지만 방안의 온기와 수마(睡魔·잠)에 행자들의 머리가 아래로 뚝 떨어졌다.
딱! 대중의 정신을 맑게 한다는 소임을 맡은 청중(淸衆) 스님의 죽비 소리가 나자 행자들은 고개를 들고 허리를 곧추세운다. 잠시 뒤 다시 딱! “잠 깨고 공양하라고 친 게야”라며 청중 스님이 웃는다.
○ “힘들고 그래서 더 많이 배웠어요”
아침 공양이 조금 늦은 3명의 행자와 함께 식사를 했다. 법명과 함께 묵언(默言)이란 글자가 있는 명찰 때문인지 처음 입에 자물쇠를 채웠던 행자들이 차츰 말문을 열었다.
“인터넷이나 휴대전화…. 바깥과 담 쌓는 것은 할 만해요. 하지만 아직 9시 뉴스 볼 시간에 자고 오전 3시에 일어나는 일정은 힘들어요.”(27세)
“상원사서 적멸보궁까지 삼보일배로 2시간 걸려 오른 것이 기억납니다. ‘석가모니불’을 외치며 올랐는데 몸과 마음이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았어요.”(19세)
30대 중반의 또 다른 행자는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육체적, 정신적인 고통에 맞서 자신을 재점검하고 싶었다”며 나태한 삶을 반성하게 됐다고 했다.
27기를 맞은 이 출가학교에는 47명이 참여해 혹한 속에서 잠자는 시간을 빼면 거의 하루 17시간이 넘는 일정을 소화했다. 그럼에도 1년 4차례 모집하는 기수별 평균 경쟁률이 3 대 1에 가깝고 10 대 1까지 치솟을 때도 있다. 이 교육을 마친 뒤 기수생의 10% 정도는 정식으로 출가하고 있다.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은 출가학교가 사회의 변화에 맞춰 불교를 대중에게 제대로 알리는 계기가 되고 있다며 “행자들이 꼭 출가하지 않더라도 자기라는 작은 집을 벗어나 세상이라는 큰 집에서 잘 살아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오대산 월정사=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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