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정사는 1951년 한국전쟁 당시 미군과 국군에 의해 21동의 건물이 모두 전소되는 참화를 맞았던 곳이다. 폐허 속에서 다시 새싹이 자라듯 월정사는 다시 일어섰다. 대중들은 사회와 소통하고, 수행의 정신을 세우기 위해 진력을 다했다. 하나 둘 불사가 마무리되고 이제는 자연명상마을을 통해 종교를 초월하고, 수행을 시대정신으로 불러일으키고 있다. 월정사의 단기출가학교는 출가열풍을 불러일으켰다. 그동안 이곳을 거쳐 간 단기출가자가 3천 명이 넘는다. 실제 출가한 사람도 200명이 넘었다. 월정사의 변화를 이끈 정념 스님을 만나 그간의 이야기와 자연명상마을을 조성한 배경과 새해 계획을 들었다.
사진 : 최배문 |
| 명상은 시대정신
정념 스님은 결제 중이었다. 주지 소임을 보고 있지만, 안거를 빼놓지 않는다. 인터뷰 시간도 오전 11시 참선을 마치고 점심 공양을 하는 동안으로 한정됐다. 참선을 하고 인터뷰에 응한 스님의 얼굴은 맑았다. 시간이 많지 않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자연명상마을을 만든 이유에 대해 스님은 담담히 이야기했다.
“2004년 주지에 취임하면서 월정사를 수행의 중심도량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혔어요. 사찰의 존립 목적이 그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원을 복원하고, 단기출가학교를 만들었죠. 템플스테이도 활성화시켰고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규모도 커졌습니다. 사회적으로는 명상붐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탈종교화의 흐름도 감지됐죠. 전통적인 수행법인 간화선과는 다른 위빠사나 수행이나 사마타 수행도 소개가 많이 됐고요. 자연명상마을은 그러한 시대적 변화의 결과물입니다. 이제는 종교를 초월해 누구든 수행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전통적 수행공간으로써 사찰과는 독립적인 곳이었으면 좋겠다고 바랐습니다. 세대를 막론하고, 종교를 따지지 않고 수행할 수 있는 대중 수행처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조성된 것이 자연명상마을입니다.”
월정사가 조성한 자연명상마을의 이름은 ‘옴뷔OMV’다. 영문 표기인 Odaesan Meditation Village를 친근하게 줄여 지은 이름이다. 산문을 들어서기 전 오른편에 지어진 성보박물관을 마주하고 있다. 전체 면적은 99,174㎡에 달한다. 150명이 함께 수행할 수 있는 100실 규모의 숙박시설도 갖추었다. 시설은 깔끔했다. 객실에는 명상을 할 수 있는 개별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스님들이 수행하는 선방을 모델로 한 시민명상홀 ‘동림선원’은 자연명상마을의 중심이다. 선원의 이름은 중국 루산에 있는 동림사東林寺에서 따왔다. 종교를 가리지 않고 지성인들 간의 대화를 마다하지 않았던 동림사의 정신이 스며들기를 바란 이름이다. 선원 옆으로는 월정사까지 산책로가 마련되어 있다. 방문객을 맞이하는 로비 ‘비움채’를 지나면 ‘지혜의 정원’을 중심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이름 붙인 객실동이 보인다. 오대광명탑이 들어설 예정인 붓다의 정원을 지나면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 선생이 방문객에게 문학과 글쓰기를 통한 수행을 가르칠 문학관도 숲 한 켠에 마련됐다.
“옴뷔에서는 종교적 의례를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월정사 조실을 지낸 탄허 스님은 생전에 ‘천하무이도天下無二道 성인무양심聖人無兩心’이라는 휘호揮毫를 많이 쓰셨어요. 천하에는 두 가지 도가 없으며, 성인에게는 두 마음이 없다는 뜻입니다. 여러 종교가 이름은 다르지만, 추구하는 가치는 서로 통한다는 의미입니다. 옴뷔가 추구하는 가치이기도 합니다.”
스님은 옴뷔가 종교에 구애받지 않는 플랫폼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어느 종교가 됐든 마음수행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품겠다는 바람이다.
사진 : 최배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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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중 사찰이 세상과 마주하는 방법
정념 스님은 사찰의 의미를 다시 정의하고 싶어 했다. 은둔과 신비로움이 아니라, 세상과 분리되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함께 해야 하는 곳이 사찰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스님이 그동안 걸어온 시간을 되짚어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월정사는 단기출가학교를 비롯해, 오대산 문화축전, 천년 숲 선재 길 걷기, 오대산 디카 촬영대회 등 세상과 함께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오고 있다. 노인요양원, 문수청소년회, 연꽃어린이집, 자연학습원 등을 운영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를 맡아 사회참여에도 열심이다.
“사찰은 항상 사회와 함께 가야 합니다. 자연명상마을을 만든 이유도 그렇습니다. 현대인들은 물질 문명, 도시 문명 속에서 마음의 병을 안고 있습니다. 옴뷔가 개원할 때 모토로 삼은 것이 ‘먹고, 놀고, 쉬기’였습니다. 큰 깨달음보다는 일단 지친 마음을 쉬게 하자는 것입니다. 밖으로 달려가는 마음을 붙잡아서 쉬게 하고 치유하자는 것입니다.”
스님은 인터뷰 내내 사찰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권위적인 모습을 내려놔야 할 때라고 말했다. 출가자 중심 문화에서 사부대중이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의 필요성도 지적했다. 탈종교화의 흐름의 저변에는 탈권위주의가 있다는 분석이었다.
“시대가 수평적인 문화로 바뀌고 있어요. 개인의 삶이 점점 중요시 되고 있고요. 화엄 사상이 그렇듯이 종교적 권위나 종교 구별보다는 차별 없이 일체를 수용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봅니다. 한국 불교의 미래도 거기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박제화되고 화석화된 불교를 새로운 불교로 바꾸어 낼 수 있는 구심점 역할을 하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스님은 옴뷔가 수행과 치유로 시작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불교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새로운 불교를 만들어가는 기운이 옴뷔에서 싹트길 원했다.
옴뷔 한 켠에 마련된 조정래 문학관도 그런 의미가 반영된 공간이다. 작가 조정래 선생이 머물며 인문학을 가르치고, 글쓰기를 지도할 공간이다. 부속품 같은 삶에서 벗어나 삶을 성찰하고 문학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는 공간이 되길 바라서다. 조정래 선생도 이 같은 스님의 뜻에 화답했다. 선암사에서 태어나 문학을 통해 일가를 이룬 조정래 선생도 월정사 전나무 숲이 우거진 곳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만년의 삶을 회향하기를 바란다며 뜻을 받아들였다.
| 명상과 간화선의 경계를 허물자
정념 스님은 옴뷔에서 다양한 수행 방법이 실천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불교 전통의 간화선에서 위빠사나, 사마타 수행도 함께 하기를 원했다.
“궁극적 진리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수행법은 각각의 특징과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혜를 구하고,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도 근본은 다르지 않습니다. 합리적 이성주의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수행법을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전에 틱낫한 스님을 월정사에 모시고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어요. 틱낫한 스님께서 그러시더군요. 모든 전통을 어깨에 짊어지고 나아가려고 하면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고요. 보편적으로 생각하고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공감했습니다. 새로운 불교를 만들어가는 힘, 혹은 불교의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선 좀 더 다양해지고 좀 더 단순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스님은 전통 수행공간인 사찰과 자연명상마을 옴뷔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그리고 그 공간이 사람 중심의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설명했다. 그래야 새로운 불교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 : 최배문 |
사진 : 최배문 |
| 현실적으로 남은 문제들
월정사 옴뷔가 개원했을 때 뜻에 공감을 하면서도 걱정을 하는 이도 있었다. 공간과 시설은 마련됐지만, 운영이 얼마나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걱정이었다. 옴뷔에 근무하고 있는 직원만 12명. 한 해 경상비로만 8억 원 정도가 소요된다. 커진 인프라에 걸맞는 경영과 소프트웨어가 필요한 시점이다. 스님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2018년 월정사의 템플스테이를 거쳐 간 사람이 1만 명이 넘습니다. 템플스테이를 운영하는 사찰로는 최고 수준이죠. 월정사가 운영해온 단기출가 프로그램이나 다양한 사회활동이 가져온 결과입니다. 오대산의 자연 환경이 가진 장점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합니다. 자연명상마을을 통해 하려는 일도 단순히 시설 운영으로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시대적 상황, 시민들의 필요, 그리고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것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시작한 일입니다. 쉬우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동안 월정사가 해온 일도 그랬습니다. 원력을 갖고 해나갈 일들입니다.”
스님이 인터뷰 내내 강조했던 키워드는 시대정신, 미래 불교, 새로운 불교, 패러다임의 변화였다. 변화해야 한다는 간절함이 묻어나는 말들이다. 월정사의 자연명상마을 ‘옴뷔’는 이제 6개월이 지났다. 첫 걸음을 뗀 셈이다.
불교는 길 위의 종교였다. 붓다는 없는 길을 만든 길 위의 성자였다. 옴뷔가 가야할 길도 그와 같을 것이다. 지금은 보이지 않는 길이어도, 길 없는 길이라도 옴뷔를 통해 이미 새로운 길이 하나 만들어지고 있다.
유권준 reamon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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