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하는’ 젊은이들
종교의 기본은 믿음이다. 믿음 없이는 종교가 성립될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타인의 종교를 물을 때 “어느 종교를 믿느냐”고 묻곤 한다. 불교 역시 진리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되기에 1차적으로 불교는 ‘믿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렇다면 누군가 “불교를 한다”고 말하면 불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믿는 것’이 아닌 ‘하는 것’이라는 표현에 당황스러울 법도 하다. 혹은 ‘하다’라는 동사를 ‘불교를 철학-한다’거나 ‘소비-한다’는 접미사로 받아들일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기성세대와 달리 젊은 감각의 2030세대는 단순한 믿음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불교를 받아들이고, 또 풀어낸다. 나아가 불교라는 주제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 세상과 소통한다.
탈종교화·종교 사사화·불교인구 급감…. 불교는 분명 위기다. 타종교에 비해 인적 네트워크도 잘 조직돼 있지 않고, 사회 전반에 걸쳐 경제적 인프라를 형성한 것도 아니다. “대인관계를 맺을 때 또는 취업활동을 할 때 자신의 종교를 숨겨야 불이익이 없다”는 청년불자들의 외침이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청년들에게 메리트 없는 불교’인 셈이다.
그럼에도 앞서 언급했듯이 불교를 ‘하는’ 젊은이들이 있다. 사찰탐방을 코믹하게 편집한 영상이나 불교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영상을 제작해 알리고, 불교디자인으로 굿즈(goods)를 만드는 1인 기업을 창업하고, 불교미술과 서양미술을 접목해 독특한 세계관을 갖춘 예술가까지. 청춘의 특권인 도전정신으로 불교를 ‘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봤다. 〈편집자 주〉
“불교 전학생, 문턱 없이 찾아오길”
나투다픽처스 대표 강 산
2017년 3월, 소셜미디어 페이스북에 한 청년의 사찰여행 영상이 게재됐다. 드라마 도깨비의 촬영지이기도 한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숲길에서 드라마를 패러디하며 시작된 이 영상은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템플스테이를 체험하는 모습을 경쾌한 배경음악과 편집해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시작했다. 보는 이의 웃음을 유발하는 영상 속 청년의 유쾌한 행동은 덤. 대한민국 사찰여행 프로젝트 ‘아이고절런(IGO절RUN)’을 기획한 나투다픽처스 강산(29) 대표다. 현재까지 촬영한 영상만 수십 편. 어느덧 프로젝트 2년차에 접어든 그를 만났다.
사찰여행이 불어온 바람
“사찰여행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사람들이 흥미를 보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제 영상으로 그저 불교에 대한 흥미 정도만 이끌어주려고 했죠. 불교가 타종교처럼 신심이나 교리를 강요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렇게 템플스테이에 초점을 맞추게 됐고, 사찰여행이라는 테마로 촬영을 시작했습니다.”
불자도 아니었던 그가 이 일을 시작한 배경은 단순했다. ‘사찰에 가보니 좋더라. 너도 한번 가보라’는 취지. 처음엔 불교를 알린다기보다는 좋은 사찰을 소개해주는 것에 무게를 뒀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고절런에 이어 사람들을 모아 함께 사찰여행을 하는 ‘위고절런(WEGO절RUN)’과 불교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불리버리(불교+딜리버리)’, 청년들의 고민을 대신 전하고 이에 대한 스님의 조언을 담은 ‘선문선답’까지 불교적이면서도 다양한 콘텐츠로 확장됐다. 최근에는 불교계 음악회·전시회 등을 다녀오거나 연등회 관련 영상도 제작하는 등 활동범위를 불교문화전반으로 넓히고 있다.
강요 않는 불교, 편안함 매력
좋은 사찰 알리고자 영상 제작
불교계 ‘온라인 씬’ 취약하지만
가벼운 콘텐츠로 관심 독려를
사실 1년 전쯤, 그의 영상을 보고 인터뷰하기 위해 연락했을 때 불자가 아니라는 대답에 인터뷰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는 신심 깊은 불자가 됐고, 누구보다도 앞서 불교를 홍보하고 있었다.
“이 일을 하면 할수록 더 많이 알아야겠다는 책임감을 느껴요. 처음에는 불자가 아닌 일반인의 시점으로 보려 했는데 어느새 저도 삼배를 하고 있고, 신앙적으로 또 개인적으로 불교에 관심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법명을 받진 않았지만 제 스스로 저를 불자라고 표현해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변화된 모습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네요.”
강 대표는 두 달 전 ‘나투다픽처스’로 사업자등록을 했다.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아우를만한 명칭이 필요했던 것. 그 명칭도 ‘부처님이 나툰다’는 불교용어에서 차용했다. 즉 아이고절런이 영화라면 나투다픽처스는 제작사인 셈이다. 그렇다고 당장 수익을 창출하려는 목적은 아니다. 사고 팔 수 있는 성격의 콘텐츠가 아니기 때문에 그는 먼 길을 내다보고 있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 혼자 해도 즐겁지만 뜻이 맞는 사람들 있다면 함께하고 싶어요. 혼자여서 하지 못하는 아이디어가 많거든요. 아직 영상에 광고가 따라 붙을 만큼 조회수가 높진 않지만 차츰차츰 저만의 길을 개척해나갈 겁니다.”
불교서 ‘긍정적 시선’ 갖추길
인터뷰 내내 당찬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 강 대표. 이런 그에게도 어려움은 있었다. 더구나 그가 강조하는 ‘온라인 씬(scene)’이 활성화되지 않은 불교계였기에 대중의 소극적인 관심이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저는 1인 크리에이터이기 때문에 피드백이 굉장히 중요해요. 제가 볼 땐 좋은 것 같아서 기획하지만 대중은 그렇지 않게 느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불교계는 피드백이 많지 않아 가끔 혼란스러울 때가 있긴 해요. 지금은 어느 정도 적응한 편입니다.”
그는 영상을 제작하며 일반인 또는 불자들에게 많은 질문을 받았다. 사람들은 스님의 삭발이나 육식을 금하는 이유 등을 묻곤 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은 그에게 ‘촬영을 왜 계속하는지’ 묻는 것이었다. 그는 이때 이 질문에 대해 곰곰이 돌아봤고, ‘재밌기 때문’이라는 답을 내렸다. 그 이후 더욱 즐거운 마음으로 촬영에 나설 수 있었다는 강 대표다.
강 대표는 현재 영상을 유튜브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네이버블로그 등에 업로드한다. 연출, 각본, 촬영, 출연 모두 그의 몫이다. 이 같은 열정에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불교를 가볍게 다루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한 그의 생각은 제법 명료하다.
“지금의 불교도 충분히 좋지만 기존의 것만 고수하려는 분들이 계신 것 같아요. 나라마다 불교가 조금씩 다르고, 그 나라 안에서도 시대에 맞춰 불교는 변해왔는데 말이에요. 저처럼 ‘불교에 전학 온 사람’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을 콘텐츠가 늘어난다면 좋지 않을까요?”
요즘 들어 친구들에게 ‘달라졌다’는 얘기를 듣는다는 강 대표. 대부분의 스케줄이 불교와 관련된 것이고, 사찰을 찾아 마음의 평온을 얻거나 스님에게 좋은 얘기를 들으며 분위기가 달라진 걸까. 그는 “달라졌다고 말하는 친구들의 표현이 ‘변했다’가 아니라 ‘좋다’는 의미여서 값지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꿈꾸는 최종 목표는 모든 사람들이 긍정적 시선을 갖고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다.
“나투다픽처스 슬로건이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 평범할 수 있는 세상’이에요. 불교라는 종교가 저에겐 그런 이미지거든요. 불교를 통해서 사람들이 세상을 좋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