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떠난 월정사 산사수련_오마이뉴스(2009.09.15) > 언론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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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떠난 월정사 산사수련_오마이뉴스(2009.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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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0-06-21 14:33 조회9,55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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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을 좇지도 말고,

空에도 빠지지 말라.

하나에만 집착하면,

아무 것도 못 이루리.

止動은 止觀으로 돌아가고,

動觀과 통하니,

한 가지에 못 통하면

양쪽 모두 못 이루니.

 

-오대산 기린선원 남대 지장암에서-

 

오늘 집정리 하면서 정안 스님(지장암 주지)으로부터 얻어 온 글을 보았다. 가방 속에 오래 갇혀 있다 나온 글이다. 지난 여름 지장암을 찾아 가서 뭔가 한 말씀을 기대했지만, 山門을 뒤로 하고 온 후 마음의 갈증에 목말라했는데, 오늘 글을 읽고 스님의 참뜻을 알 것도 같다. 

 

'비록 생활이 어렵고 괴롭더라도 행복의 그림을 그려라. 그린 것처럼 현실로 다가오리라.

무상은 신속하고 오늘은 영원히 돌아 오지 않는 것, 백년을 부끄럽게 사는 것보다 하루를 살더라도 후회없이 살아라.'

 

'신문도 보지 말자. 휴대폰도 꺼 버리자. 가족도 친구도 직장일도 잊어 버리고 나를 돌아 보자. 볼 책도 가져 가지 말자. 비우고 오자. 새싹이 돋도록 한번 마음을 비워 보자.'

 

아내와 달랑 짐 보따리 하나씩 챙겨서 강원도로 떠났다.

바쁘게 돌아 다니지 말자는 마음으로 오대산 월정사로 갔다. 3박 4일 산사체험. 덤으로 붙은 산사 밖에서의 1박. 4박 5일의 순수 강원도 여행이었다.

 

  
비워 두자.
ⓒ 김진수
전나무 숲길

무성한 전나무 숲은 그윽한 향으로 다가 왔다.

기품 늠름한 그 자태에 압도 당한다. 얼마나 그리워했던 이 나무들, 이 숲인가.

입구에서부터 편안한 느낌이 든다. 나무가 있어 자연이 있는 게 아닐까?

 

  
인간의 탐심은 순간이다. 이 보이지 않는 탐심은 숨겨도 금방 틔어 나온다. 빈 의자에 아내가 앉아 버렸다.
ⓒ 김진수
전나무 숲길

월정사로 가는 숲길에서 3박 4일의 수련 기간 동안 어떤 생각에 몰두하면서 생활할까?

처음 여행을 작정한 순간부터 가졌던 의문을 아직도 결론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 주위 사람들에 대한 미움이 컸었지. 그리고 욕심이 끊이지 않았지. 그리고는 사회와 인간에 대한 원망을 키웠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눈이 어지럽고 마음은 늘 괴로웠지. 이런 것들은 왜 생길까? 조금이라도 이것들의 정체를 알고, 벗어나면 좋겠다.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있을 텐데, 주위 둘러 보지 말고 내 생각을 지켜 보기로 하자.'

 

  
나무가 있어 자연이 있는 게 아닐까.
ⓒ 김진수
전나무 숲길

나의 존재를 알려 주는 명찰에는 커다랗게 默言이란 글귀가 들어 있다. 4일 동안만이라도 묵언 속에 잠겨 보자. 내가 먼저 말하려고, 더 많이 말하려고 얼마나 덤벼 왔던가. 침묵과는 또 다른 말 없음으로 깊은 대화도 가능한 게 묵언이 아니던가? 말처럼 쉽지는 않다. 차수(오른 손바닥이 왼 손등 위를 모아 쥐고 가볍게 배꼽 아래에 대고 걷는 것)를 하고 시선을 부드럽게 콧등 위에 모으고 주위를 두리번거리지 않는다. 힘든다고 쉬 눕지도 어디에 기대지도 않는다. 급하다고 뛰지도 말며, 배고픔으로 찡그리지도 말자. 흰 고무신도 제 자리에 항상 가지런히 놓는다. 수행의 기본 자세부터 나를 긴장시킨다.

 

  
▲ 차수하고 걷기 하지만 곧은 생각에 몰두하기가 쉽지 않은듯 흐느적거리기도.
ⓒ 월정사
월정사

수행기간 4일 동안 대략, 3시 30분 기상- 4시 10분 새벽 예불 - 6시10분 아침 공양(한번의  발우공양)-명상 요가- 법문 강의- 문화 체험-울력(간상울력, 도량울력)- 108배- 전나무숲 맨발걷기- 타종체험-6시10분 저녁예불-수행록 작성- 유언장쓰기-달빛 포행-1km 새벽숲길 3보 1배- 오후 9시 취침 등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고단함이 고통 그 자체로 온 몸을 괴롭힌다. 정신의 맑음으로 승화시키기가 힘들다.         

 

수행의 근본은 고행이 아니던가? 고행을 통해 깨달음으로 나가는 것이다. 많이 들은 이야기가 있다. 불가에서는 잡념이 들 시간이 없단다. 불가에서 행하듯이 그런 자세와 정신으로 사회생활 하면 누구나 성공을 할 것이라고... 정말 그럴까? 나도 이곳에서 그런 생활을 얼핏 봤다. 3시쯤 일어나 몇시에 잠자리에 드는지는 잘 모르지만 끊임없이 수행정진하는 사미승을 보기도 했다. 그리고 요즘은 스님도 인물보고 뽑나? 젊은 스님들이 하나같이 미끈하다. 탁발한 머리 모양도 어쩜 알맞게 어울리는 짱구형일까? 몽골족은 평평한 납작형인데....

 

  
딱딱함과 부드러움의 조화, 정과 동의 조화.-스님들의 수행하는 자세가 바로 그런 것일까?
ⓒ 김진수
월정사

밥 한끼 굶는 것도 힘들고 부처님전에 바른 자세로 3배의 예를 올리는 것도, 108배의 예를 갖추는 것도 나중엔 발가락이 아파서 힘들다. 1킬로 거리의 3보 1배의 행진은, 중간에 그만했으면 하는 나약한 마음이 몇 번도 들었다. 제대로 된 3보1배도 아니면서 이 정도의 나태를 드러내니 난 아예 몇 번을 태어나도 불가의 근처에 가기도 글렀다. 하물며 목탁까지 두드리며 한치의 허트러짐도 없이 3보1배의 예를 꼿꼿이 행하는 스님의 자세는 경탄스러움 그 자체다.

 

  
▲ 삼보일배 비워야 한다. 끝없는 고행으로...
ⓒ 월정사
삼보일배

  
▲ 108배 나는 누구로 인하여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 가고 있을까?
ⓒ 월정사
108배

 월정사는 우리나라 화엄성지 오대산 남대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많은 가람을 거느리고 있다.

 

1000여년의 역사를 지닌 8각9층석탑에 나의 소원을 빌어 보자. 성보 박물관에 전시된, 조선의 7대왕 세조의 피묻은 비단 속옷을 보고는 세월의 무상함과 인간사 온갖 영욕의 허망함에 절로 어깨가 처진다. 동대 관음암, 서대 수정암, 남대 월정사 지장암, 북대 미륵암, 중대 사자암 및 적멸보궁 등 오대산은 우리 나라 불교 성지로 오대(동대 서대 남대 북대 중대)에 걸쳐 오만 부처님이 계시는 곳이란다.

 

  
▲ 성황각 우리의 토속신을 모신 사당. 불교가 토착화 하는 과정에서의 포용력을 보여준다.일명 국사당.
ⓒ 김진수
성황각

그리고 중대에 자리 잡고 있는 상원사는 세조와 깊은 인연이 있는 사찰로 그곳에 있는 상원사 동종은 1200여 전(신라 성덕왕 24년, 725년)에 조성된 것으로 가장 아름답고 오래 된  우리나라 대표종이다. 그리고 상원사는 조계종 초대 종정을 지낸 방한암 스님이 오대산으로 들어온 뒤로 이십칠 년 동안 두문불출하며 수도 정진하였던 곳으로 지금도 스님은  조계종의 정신적 지표역할을 한다고나 할까? 상원사가 6.25전쟁 중 소실의 참화를 피할 수 있었던 것도 방한암 스님의 의연한 기개때문이다. 그는 목숨보다 아끼던 상원사의 법당에서 찬바람 불던 늦가을 좌탈입망 [坐脫立亡]하셨으며 그런 스님의 최후 모습을 성보박물관에서 사진으로 대하고 숙연한 마음 금할 길 없다.  

 

그리고 불교 5대 적멸보궁 중 이곳 중대에 자리한 적멸보궁은 부처님 뇌사리를 모신 곳으로 많은 수행자들이 이곳의 험한 길에 3보1보의 예를 갖춘다니, 그 불심에 감탄할 뿐이다.

 

  
▲ 상원사 행운일까 불운일까?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세조는 끝없는 회한과 질병으로 인하여 불교에 귀의하여 많은 불사를 행함으로써, 참회의 기회를 가지고자 했다. 나라에 간경도감(刊經都監)을 설치하여 불서의 간행에 힘썼다. 그리고 이곳 상원사와 세조는 깊은 인연을 간직하고 있다. 지병을 고치려고 상원사에서 기도하던 중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나서 지독한 악창이 나았고, 상원사 참배중에 고양이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일화 등이 있다. 1984년에 발견된 문수동자 복장에서는 세조의 딸 의숙공주가 문수동자상을 봉안한다는 발원문을 비롯하여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그 발원문을 비롯한 많은 유물들이 현재 월정사 성보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 김진수
상원사

  
▲ 세조를 살렸다는 그 고양이석상 세조가 상원사에사 피부병을 치료하고 이듬해 찾았을 때의 일이다. 세조가 법당으로 들어서서 예불을 올리려는 순간 어디선가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나더니 세조의 곤룡포 자락을 물고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했다. 기이하게 생각한 세조가 병사를 풀어 법당을 살펴보자 불상을 모신 탁자 밑에 숨어있던 자객을 발견했다. 목숨을 구해준 고양이를 찾았지만 고양이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세조는 그 고양이를 위해 논 5백 섬지기를 절에 내리면서 해마다 제사를 지내도록 명했다. 이후 사찰에 딸린 전답을 묘전(猫田),묘답(猫畓)이라고.
ⓒ 김진수
고양이석상

그리고 월정사 바로 뒤편 계곡 건너 자리잡은 오대산 남대 지장암은 비구니 가람으로 주변의 풍경과 정갈함에 반했다.                                                                                   

 

주지스님인 정안스님의 따뜻한 미소와 따끈한 연닢차 한 잔도 잊을 수 없다.

첫 머리에 있는 내용은 지장암의 기린선원 기둥에 새긴 한글주련인데, 예쁜 글씨체로 쓰인 한글주련이 퍽 인상적이다. 읽어볼수록 깊은 내용에 빠져든다.

 

止動은 止觀으로 돌아가고,

動觀과 통하니,

 

그 의미를 정안스님께 들으면 우리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의문이 다소나마 해소될까? 수행차 들른 우리 일행에게 정안스님께서 한 말씀 하셨다.

 

"수행은 나의 조절이다.

받아들이는 모든 것을

어떻게 내 속에서 조절하는가이다.

한 생각에만 집착하지 말라.

한 생각 돌리니 극락이 여기에 있구나."

 

하지만 난 오늘도 핏발 선 눈으로 바쁘게 앞으로만 달려 가고자 아우성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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