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정사에서의 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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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Lavender 작성일11-10-06 15:15 조회12,495회 댓글2건본문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갔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 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 류시화의 ‘길 위에서의 생각‘입니다.
길에서 지친 나그네가 딱 저이거든요.
제가 원해서 선택한 외국 생활 10년...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더라구요.
어느 나라이든 갈 수 있는 자유를 선택함으로, 어디도 ‘내 집’이 아닌 외로움과 불안함을 대가를 지불한 듯합니다.
여기저기 날리기만 하는 민들레 홀씨마냥 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 느낌이었습니다.
불교에 생무지한 천주교 신자인 제가
지친 몸과 마음으로 하느님께 매달려 ‘~~좀 해주세요’ 하고 바라기만 하니
하느님께서 저를 부처님께 위탁을 보내셨나봅니다.
‘템플스테이’라는 것이 있는지도 전혀 몰랐으면서 구글에 우연히 'long term stay in a temple'로 검색을 해보았고
그리 인연이 되어 월정사에서 한 달간 자원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템플스테이에 오신 분들과 같이 삼배 배움을 시작으로 저의 월정사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주된 일들은 차담, 108배, 발우공양과 같은 템플스테이 프로그램 준비 그리고 청소와 빨래 등등 이었구요.
간간히 외국분들의 통역을 도왔으나 제가 불교에 대해 아는 게 없어 별 도움은 못 드린 것 같습니다.
짬이 날 때 들러본 전나무숲, 지장암, 상원사, 비로봉 그리고 별들이 가득한 밤하늘까지!
제가 여러 나라, 여러 곳을 가게 되는 이유를 설명하기에 충분했답니다.
세상의 좋은 것들을 많이 보고 마음에 담으라는 큰 복이지요...
이런 일상이 더해져 기약했던 한달이 다했습니다.
참으로 길고도 짧은 한달인데 지나고 나니 찰나와 다를 게 없네요.
봉사한다고 하면서 제가 얻어온 것이 더 많습니다.
템플스테이 프로그램 중간 중간 눈동냥 귀동냥 많이 하여 좋은 배움 얻었습니다.
하심, 묵언, 참선, 또 원각경 보안보살장같이 종교를 떠나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기억할 숙제도 받아왔습니다.
바쁜 시간 쪼개어 제게 좋은 말씀과 더불어 몸공부 마음공부하는 방법까지 알려주신 스님들도 여러 분 계셨구요.
집에 도착해서 기도했답니다.
‘하느님, 잘 다녀왔어요.
부처님께서 너무 잘해주셔서 좋은 말씀, 좋은 풍경 그리고 소중한 선물들 많이 받았는데
봉사한답시고 이리 많이 얻어 와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이 충만한 마음... 잘 기억하고 또 다른 사람들과 잘 나누겠습니다.’
돌고 도는 계절처럼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월정사이지요.
계절을 추억하며 책갈피에 꽂아둔 나뭇잎처럼
제 기억 한편에 소중하게 간직될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월정사에서 만난 저의 인연들...
모두모두
감사합니다.
댓글목록
원감 해욱스님님의 댓글
원감 해욱스님 작성일보라님의 한달 동안의 자원봉사 소감을 글로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보라님의 그 마음씨에 월정사 템플스테이가 더욱 빛이 나지 않았나 싶네요.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언제든지 월정사가 생각나면 놀러 오세요. 자원봉사로도 좋고요. 항상 좋은 일만 있길 부처님 전에 기원드립니다.
수행원 주임 홍인표님의 댓글
수행원 주임 홍인표 작성일
집에 잘 도착하셨다니,다행이네요!^^ 외국으로 떠난지 오래되서 서울지리도 많이 변해서 집 못찾을까...걱정했었는데..^^
보라님과의 인연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기억 저편에 자리잡고 있을겁니다. 한달 너무 수고하셨습니다.정말 감사합니다.
언제나 즐거운 일만 함께하길 두손모아 합장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