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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및 의궤

조선왕조실록 및 의궤

의궤(儀軌)에 대한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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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손진권 작성일06-09-15 14:36 조회7,5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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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儀禮)와 의궤(儀軌)

◆ 조선시대에는 국가의 주요 의례를 길흉, 흉복, 가례, 빈례, 군례 등 다섯 범주로 나누어 이를 五禮라 했다.

오례는 일정한 격식에 의해 그 의식이 집행되었으며, 이를 위해 의례의 규범을 기록해 놓은 것이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라 한다.

이는 8권 8책으로 세종 때부터 편찬되기 시작하여 세조 때 오례를 그림으로 설명한 도식(圖式)이 탈고, 성종 5년(1474년)에 이르러 편찬이 완료되었다.

각종 의례를 원만하게 집행하기 위하여 "국조오례의"를 참고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점이 많아, 세밀한 시행절차와 상세한 천연색 도설(圖設), 행사 비용과 참가자의 명단까지 수록하고 있는 실제행사의 기록인 "의궤"의 필요성이 요구된 것이다.

의궤는 말하자면 화보집을 곁즐인 의례의 실행 보고서이다.

◆ 임진왜란(1592~1598년)때 조선전기의 의궤들은 거의 소실이 되었다.

왜란 후에는 오대산, 태백산, 정족산, 적상산 등 깊은 산골에 사고를 설치하여 실록과 빈원보(왕실족보) 등의 전적을 관리했다.

이와 관련하여 의궤도 지방의 네 사고 중에서 두 곳을 선정하여 분상(分上)하는 관례가 생겨나게 된 것인데,
광해군대에는 오대산과 태백산 사고에 분상하였다.

◆ 인조대에는 의궤의 분상본이 최고 4건으로 늘어났고, 의궤의 분상처도 의정부보다는 의궤의 실무관서인 예서에 분상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지방 사고의 경우도 태백산이나 오대산뿐만 아니라 강화도 등으로 분성처가 다양해졌다.

인조대에 편찬된 어람용 의궤는 지금 프랑스 파리국립도서관에 있다.

◆ 정조 이후에는 활자본 의궤가 등장하였다.

◆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의궤를 소장하고 있는 공공기관은 네 곳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프랑스 파리국립도서관 그리고 일본 궁내청이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은 의궤를 소장하고 있는 곳은 서울대 규장각이다. 현재 위 네 곳에서 소장하고 있는 의궤의 종류는 모두 합하여 654종 정도로 알려지고 있다. 그 중에서 규장각이 소장하고 있는 의궤는 546종, 2700여 건에 이른다. 전체 의궤의 약83%를 소장하고 있는 셈이다.

◆ 프랑스 파리국립도서관에는 1866년 병인양요 때 강화도 외규장각에서 가져간 어람용 의궤 191종 297책이 있다. 이 의궤들 중에서 가장 오랜 것은 인조와 장열왕후의 혼인을 기록한 『가례도감의례』이고, 가장 늦은 것은 1849년(철종 즉위년)에 편찬된 『헌종경릉산릉도감의궤』이다.

◆ 일본 궁내청에 71종의 의궤가 소장되고 있다.

이 의궤들은 조선총독부가 규장각 소장 의궤의 일부를 '기증'이라는 이름으로 일본 궁내청으로 이관한 것이다. 이 의궤들은 대부분 오대산 사고에 소장되어 있던 것들로서, 오대산 사고 실록을 가져갈 때 함께 가져간 것으로 보인다. 궁내청 의궤는 대부분 고종대에 편찬된 것들인데, 유일본도 2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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