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밥상

시골에 계신 기미년 생 어머니는 아직도 곱게 비녀를 지르고 물빛 치마, 흰 모시 저고리, 보라색 양산을 들고 대문을 나섭니다. “한강 이남에 느그 엄마만큼 된장 잘 끓이는 사람이 없다.” 했던 아버지의 말씀도 문득 떠오릅니다.

위의 내용은 스님 이 쓰신 책 서문을 인용 해보았습니다.

스님의 부모님은 고향 어르신이라 어릴 때부터 보았고, 모친의 연세가 아흔이 넘었지만 아직도 정정 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어머니도 진짜 된장 하나는 잘 끓였는데, 지금은 영원히 만날 수 없는 부모님과 그 된장 맛을 볼 수 없다는 아쉬움 때문에 그 내용이 더 가슴에 남았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제가 태어나고부터 절에 다녔다고 합니다. 저는 불교에 입문하게 된 동기는 고등학교 친구모임에 나갔다가 월 정사에 다니는 친구가 같이 월 정사에 한번 가자고 해서 별 생각 없이 여행 간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월 정사에 갔는데 이제는 5년이 되었습니다. 불교에 입문하고 언젠가는 한번 찾아보고 싶었던 스님인데, 그 인연이 올 여름에 이루어 졌습니다. 스님은 우리 누님과는 친구이고, 또 스님의 동생은 고향친구지만, 그 친구도 고향 떠나고 해서 서로 연락처도 알 수가 없어서 잊고 지내다 친구가 지방 대학교 교수라는 것을 알았고, 인터넷으로 찾아서 그 친구와 통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친구와 통화도 반가웠지만, 스님의 안부를 물었더니 스님은 서울 관악산(길상사: 인헌동) 자락에서 수행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난 6월 선우 회 정기 법회 때 월 정사에서 한 권의 불교서적(정위 스님의 가벼운 밥상: 중앙m&b)을 구입하고, 도 반들에게 그 스님이 우리고향 동네 누님이라 자랑을 하였던 생각납니다.

꼭 한번 찾아 뵙겠다는 생각만 하다 지난주(07/28)에 우리부부는 길 상사를 찾아가서 첫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바로 알아보았는데, 스님을 전혀 모르시겠다고 해서 고향 동네이름과 우리누님을 이야기하니 너무나 귀한 손님이 오셨다면서 활짝 웃어주신다.

스님은 출가 하신지 올해로 35년째라고 합니다. 아무런 기별도 없이 갑자기 찾아갔는데 스님은 몇 칠 전부터 우리 누님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이 내용은 스님에게 허락 받고 글을 씁니다. 스님의 친정은 엄청 부자였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는 제재소도 하고 나중에는 대구에서 목욕탕을 운영하고 지금도 고래등 같은 기와집은 당당하게 고향을 지키고 있습니다. 스님이 처음 출가할 때 부모님과 가족들의 반대는 물론이고, 집안 어른들의 반대로 스님이 행자시절 세 번씩이나 강제로 잡혀와서 집에 가두었지만 결국은 스님의 뜻을 꺾지 못하고 출가를 해서 이제는 자연스럽게 친정나들이를 한다고 합니다. 이 내용은 벌써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그 이야기를 하였더니 스님은 그냥 빙그레 웃기만 합니다.

내가 가장 존경한 인물은 부모님이고, 이제는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불법을 전하는 부처님의 제자인 스님을 존경합니다. 가장 존경하는 사람 중에 그것도 스님을 찾았다는 그 기쁨과 행복으로 충만 합니다.

이제는 길상사(吉祥寺)의 첫 모습을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봉천동으로 잘 알려 진 동네라 처음 찾았을 때는 깜짝 놀랐습니다. 산속에 있는 절 집을 생각하고 갔다가 처음에는 당혹했습니다. 탑이나 불상도 없고, 도자기 파편으로 만든 모자이크로 외부를 치장한 모습은 안목 높은 예술가가 만든 미술관이나 아트센터가 아닌가 착각 했습니다. 실내공간인 지 대방은 공연 무대로 활용하고, 도자기 모자이크벽화로 만든 보리수와 미륵보살상이 인상적인 마당은 전시회 공간으로 적극적으로 쓰인다고 합니다.

종교와 관계없이 부담 없이 누구나 와서 쉬고 생각하는 멋진 공간이 아닌가 합니다. 이제는 절 집도 이렇게 가꾸어 가야 젊은 불자들에게 어필 할 것 같습니다. 스님의 높은 안목과 속 깊은 생각에 다시 한번 감탄하면서 스님과 아쉬운 작별을 하였습니다.

검이불루 화이불치(檢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지만 누추해 보이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고 쓴 스님의 책 서문 내용이 참 잘 어울리는 절 집이라 생각합니다.

2010-08-03, 남한산성 밑에서 허 진해(默 潭) 합장

추신: 이 글은 2010년에 자유게시판에 올린 내용인데, 두 번의 홈페이지 개편으로 선 우회 자료가 많이 분실해서 아쉬운 마음에 다시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