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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사고본 일제 강탈 ‘재확인’(현대불교) 2014.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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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4-11-17 07:36 조회6,68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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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사고본 일제 강탈 ‘재확인’
종걸 스님, 입수한 석존사리탑찬앙회 취지서 공개
신성민 기자 motp79@hyunbul.com
1914년 총독부 命으로 동경 이송
진신사리탑 정비 역사도 확인 의미
한암 스님부터 당시 유명 인사들
진신사리탑 정비 불사 나서 ‘눈길’

   
▲ ‘오대산 석존정골사리탑묘찬앙회 취지문’
2006년 일본에서 환수된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월정사 사고본의 일제 침탈을 재확인하는 문서가 발견됐다.

군산 동국사 주지 종걸 스님은 최근 경매를 통해 입수한 ‘오대산 석존정골사리탑묘찬앙회 취지문’과 ‘발기인 명단’ 등을 본지에 공개했다.

취지서에는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 강탈 경위에 대해 ‘1914년, 정부(총독부)의 명(命)에 의해 동경으로 이송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때의 상황은 〈월정사 사적기〉에도 그대로 기록돼 있다.

〈월정사 사적기〉에 의하면 “1914년 3월 3일, 총독부 소속 관원 및 평창군 서무주임 오케구치(桶口) 그리고 고용원 조병선(趙秉璇) 등이 와서 본사(월정사)에 머무르며 사고와 선원보각에 있던 사책(史冊) 150 짐을 강릉군 주문진으로 운반하여 동경제국대학으로 직행시켰다. 그때 간평리의 다섯 동민이 동원됐는데, 3일에 시작하여 11일에 역사(役事)를 끝냈다”고 기술돼 있다.

이에 대해 종걸 스님은 “조선총독부는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을 월정사의 인근 주민들을 강제 동원하여 주문진 선착장까지 등짐과 달구지로 운반한 뒤 배로 실어 갔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대산 월정사 사고본 환수에 주도적 역할을 한 혜문 스님은 “환수 당시 발견됐다면 일제 강탈의 주요한 증거가 됐을 것”이라며 “이를 재확인하는 면에서는 서지학적 가치가 있다”고 밝혔다.

또한 오대산 월정사 변화 양상을 점검할 수 있는 것도 이 취지서의 큰 의미이다. 취지서에 따르면 ‘석존정골사리탑묘찬앙회’는 5대 적멸보궁 중 하나인 오대산 월정사 중대(사자암)에 모셔진 진신사리탑을 정비하기 위해 1932년 1월 결성된 단체이다. 찬앙회의 궁극적인 목적은 막대한 부채로 허덕이는 월정사를 구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찬앙회취지서는 본 회의 취지(趣旨), 규약, 발기인, 찬성자 명단, 역원(役員, 임원) 등으로 구성돼 있다.

석전은 발기인에 ‘교정 박한영’으로 이름이 올라 있다. 발기인은 교정 방한암 외 53인, 역원은 회장에 중추원부의장 후작 박영효, 법주에 교정 방한암, 평의원에 용주사 주지 강대련 등 총 45인이다.

취지서 찬성자는 조선총독 자작 재등실(齋藤實)을 비롯하여 동아일보 사장 송진우, 육당 최남선, 중추원 참의 남작 박기양, 평남지사 원전관(園田寬) 등 138인으로 당시 최고 권력자에서 부터 정·재계, 학계, 언론계, 불교계 등 사부대중이 대거 동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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