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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懸吐譯解 書狀』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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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3-12-12 11:15 조회7,343회 댓글0건

본문

『懸吐譯解 書狀』序
 
누가 와서 소금은 어떠한 것인가 물을 때에 싱겁지 않은 것이다 하면 遮詮이 될 것이다. 또 소금은 짠 것이다 하면 表詮이 될 것이다. 또 소금은 짜다 싱겁다 하지 않고 바로 소금을 쥐어 그의 입에 넣어 준다면 他人의 말을 기다릴 게 없이 스스로 알게 될 것이다.
 
八萬藏經이 遮詮과 表詮이라면 宗師의 徑截門 話頭는 直接 먹여 보인 것이라 하여도 過言이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華嚴의 十玄, 六相道理가 가장 圓妙하지마는 또한 死句라 하는 것은 理路와 義路에 見聞 解行 等 思議가 붙을 수 있는 까닭이어니와 麻三斤․乾屎橛․庭前栢樹子 等 千七百公案을 活句라 함은 理解와 論議가 붙을 수 없기 때문이다. 活句 아래에 알게 되면 佛祖의 스승이 될 수 있고 死句 아래에 알게 되면 제몸 구원도 넉넉지 못하다는 말씀도 이것을 意味한 것일 것이다.
 
이제 大慧禪師는 曹溪(六祖) 直下 正脈으로 相傳하는 第十七代 本分宗師다. 古今 祖師들이 看話法을 指示함에 있어서 누구나 다 이 大慧를 宗하지 않음이 없었거니와 特히 麗朝에 普照國師는 壇經으로 스승을 삼고 書狀으로 벗을 삼았다는 말씀이 있는 同時에 看話決疑論까지 著述하여 後學에게 보였다.
 
이 書狀에 보이신 바 十種病을 가리게 된 것은 話頭에 病이 있는 것이 아니요 다만 學者가 그릇 穿鑿을 내기 때문에 그 根性의 差別을 따라 갖가지 病이 붙게 되는 것이다. 오직 無字話를 보는 데에 十種病을 말씀했거니와 眞無之無와 有無之無의 二種病을 除外한다면 그 나머지 八種病은 어느 話頭 보는 데든지 다 붙게 된 것이다.
 
이 話頭를 보는 데 있어서는 百千方便과 億萬說話가 하나도 쓸데 없거든 하물며 번역이며 注釋이랴. 그러나 文句가 艱澁하고 宗旨가 深奧하여 初學者로서 魚魯를 분변치 못하고 菽麥을 가리지 못하는 弊習이 없지 않은 故로 大綱의 文脈을 紹介할 따름이니 만일 明眼人이 본다면 一場의 打罵를 免치 못할 것이다.
應化 三千三年 丙辰 正月 十五日
五臺山人 呑虛 씀
【번역】
누가 와서 소금이란 어떤 것인가 물었을 때, 싱겁지 않다 말하면 차전(遮詮)이 될 것이요, 또 짜다고 말하면 표전(表詮)이 될 것이요, 또 소금은 짜다 싱겁다 하지 않고 바로 소금을 쥐어 그의 입에 넣어 준다면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것도 없이 스스로 알게 될 것이다. 팔만대장경이 차전표전이라면 종사의 직절한 법문인 화두는 직접 먹여준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엄의 십현(十玄), 육상(六相)의 도리가 가장 원만하고 미묘하지만 또한 죽은 언구〔死句〕라 말한 것은 이로(理路)와 의로(義路)에 견문(見聞) 해행(解行) 따위의 생각과 의논이 붙을 수 있는 까닭이지만, 삼 세 근〔麻三斤, 마른 똥 막대기〔乾屎橛, 뜰 앞의 잣나무〔庭前栢樹子〕등 1천7백 공안을 살아 있는 언구〔活句〕라 함은 이치의 알음알이와 의논이 붙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언구에서 깨달음을 얻으면 부처와 조사의 스승이 될 수 있고, 죽은 언구에서 알음알이를 가지면 제 몸 하나 구제하기에도 넉넉지 못하다는 말도 이를 뜻한 것이다.
 
이제 대혜선사(大慧禪師)는 조계(曹溪: 6祖)의 정맥의 법통을 이어 온 제17대 본분종사(本分宗師)시다. 고금 조사들이 간화법(看話法)을 가르침에 있어서 누구나 모두 대혜선사를 종주로 삼고 있다. 특히 고려조 보조국사는 『단경』으로 스승을 삼고『서장』으로 벗을 삼았다.는 말씀이 있는 동시에『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까지 저술하여 후학에게 보여 주었다.
 
이『서장』에서 말한, 열 가지의 병을 가리게 된 것은 화두에 병이 있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배우는 이가 잘못 천착하기 때문에 그 근성의 차별을 따라 온갖 병이 생기게 된 것이다. 오직 무()자 화두를 보는데 열 가지의 병을 말씀하셨지만, 근본자리에서의 진공(眞空)의 무()를 말하는 무〔眞無之無〕와 유무(有無)의 상대개념으로 말하는 무〔有無之無〕의 두 가지 병폐를 제외한다면, 나머지 여덟 가지의 병은 어느 화두를 보든지 모두 붙게 되는 것이다.
 
이 화두를 보는 데 있어서는 백천 가지의 방편과 억만 마디의 말, 그 어느 것 하나 전혀 쓸모가 없다. 하물며 번역이며 주석이 필요하겠는가. 그러나 문자와 구절이 난삽하고 종지가 심오하여 처음 배우는 이로서는 이 글자인지 저 글자인지 분별하지 못하고, 이것인지 저것인지 가리지 못하는 폐습이 없지 않은 까닭에 큰 줄거리의 문맥을 소개할 뿐이다. 만일 눈밝은 사람이 본다면 한 차례 몽둥이와 꾸지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불기 3003년(1976) 병진 정월 15일
오대산인 탄허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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