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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懸吐譯解 圓覺經』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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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3-12-04 13:10 조회7,266회 댓글0건

본문

『懸吐譯解 圓覺經』序
 
一心이 三德이요 三德이 一心이라면 一만 있고 二가 없어도 圓이 아니며 二만 있고 一이 없어도 또한 圓이 아니다. 一을 들 때에 三이 갖추어지고 三을 말할 때에 體가 一이 된 것이라야 비로소 圓이 되는 것이다.
覺은 所覺이 있다면 勿論 覺이 아니려니와 所覺이 없어도 能覺이 아직 있다면 또한 眞覺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黃梅祖師의 十二覺詩에 말하기를 覺覺은 非覺覺이요 覺非覺도 非覺이라. 覺無覺覺覺이어니 豈獨名眞覺이리오. 覺을 覺했다면 眞覺을 覺한 것이 아니요 覺이 아님을 覺했다는 것도 또한 眞覺이 아니다. 眞覺은 覺을 覺했다는 覺이 없거니 어찌 홀로 眞覺이라 이름할 게 있으랴 한 것이다.
文이 豊富하고 義가 廣博함은 華嚴에 讓步하지만 當體를 指摘해 當機에 맞게 함은 圓覺에 짝이 될 게 없다는 古人의 評論도 있거니와 果然 이 經은 十二章의 問答發揚이 法마다 밝히지 않음이 없으며 疑마다 決하지 않음이 없어서 實로 一切 修多羅의 了義가 될 뿐 아니라 章章의 長行 끝에 偈頌이 붙어 있어서 持誦하기가 가장 쉽게 된 것이다.
그러나 圭峰의 疏는 너무도 浩繁하여 學究者가 摘葉尋枝의 勞와 入海算沙의 譏를 免치 못하게 되었다. 그러하여 李朝初에 涵虛和尙이 解를 지어 後世에 傳하시니 그 文이 簡하면서 義는 豊富하고 略하면서 意는 周圓하여 보는 者로 하여금 渙然히 氷釋하고 怡然히 理順케 했을 뿐 아니라 또 經文의 理解不能한 곳에 一一이 釋疑하여 秋毫의 疑心이 없게 하시니 可謂 先賢의 未發處를 發明한 光前絶後의 注解라 하겠다.
그리고 通潤禪師의 近釋은 古今疏注의 大義만을 추려서 直截簡易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編集함에 있어서 涵虛解를 正으로 하고 通潤近釋을 助로 하여 解는 原文까지 붙여 譯解하고 近釋은 譯文만을 붙여 두어 讀者의 便宜를 圖謀한 것이다.
이 經을 보다가 疑心이 나면 解를 보고 解를 보아도 풀리지 않으면 近釋을 參照하여 解와 釋이 必要가 없게 될 때에 비로소 經을 보는 사람이며 이 經까지도 마저 放下할 때에 저 三一無異와 能所兩忘한 圓覺의 境地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어찌 斷無明顯佛性의 大旨가 아니랴.
應化 三千八年 辛酉 壯月 日
五臺山人 呑虛 삼가 씀
【번역】
하나의 마음이 세 가지 덕이요, 세 가지 덕이 하나의 마음이라면 하나만 있고 둘이 없어도 원만함이 아니며, 둘만 있고 하나가 없어도 이 역시 원만함이 아니다. 하나를 들 때에 셋이 모두 갖추어지고, 셋을 말할 때 본체가 하나가 되어야 비로소 원만하다 할 수 있다.
깨달음에 소각(所覺)이 있다면 물론 깨달음이 아니지만 소각(所覺)이 없을지라도 능각(能覺)이 아직 남아 있다면 그 역시 참다운 깨달음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황매조사(黃梅祖師)12각시(十二覺詩)에 이르기를 각각(覺覺)은 비각각(非覺覺)이요 각비각(覺非覺)도 비각(非覺)이라. 각무각각각(覺無覺覺覺)이어니 기독명진각(豈獨名眞覺)이리오.라고 하였다.
이를 번역하면, 깨달음을 깨쳤다고 생각하면 참다운 깨달음을 깨친 것이 아니요, 깨달음이 아닌 것을 깨쳤다는 것 역시 참다운 깨달음을 깨친 것이 아니다. 참다운 깨달음은 깨달음을 깨쳤다는 깨달음이 없으니, 어찌 참다운 깨달음이라 이름할 게 있겠느냐?라는 것이다.
풍부한 문장과 드넓은 뜻이야『화엄경』에 비해 손색이 있다 하지만 마음의 당체(當體)를 가리켜 당기(當機)에 맞게 하는 것으로는『원각경』에 짝할 만한 것이 없다는 옛 사람의 평론도 있거니와, 그런 말처럼 이 경전은 12장의 문답이 모든 법을 밝혀 주지 않은 부분이 없으며, 의심마다 해결해 주지 않음이 없어서 실로 일체 수다라의 요의(了義)가 될 뿐 아니라, 장마다의 장항 끝에 게송이 붙어 있어 언제나 읽고 외우기가 가장 쉬운 책이다.
그러나 규봉의 소초(疏鈔)는 너무나 호번(浩繁)하여 배우는 자들이 잎새마다 훑어보고 가지마다 헤아려 보는 수고로움과 바다에서 모래알을 세고 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 때문에 조선 초기에 함허스님이 주해를 쓰시어 후세에 전하시니 그 문장은 간략하면서도 뜻이 풍부하고 원만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얼음 풀리듯 막힘 없이 이치를 깨칠 뿐 아니라, 또한 이해가 되지 않은 경문에 하나하나 의심된 바를 해석하여 털끝만큼도 의심이 없게 하시어 선현이 밝히지 못한 곳을 밝혀 주니, 오늘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다시는 있을 수 없는 주해라 하겠다.
그리고 통윤선사(通潤禪師)의 근석은 고금소주(古今疏注)의 대의만을 간추려서 직절하고 간단하다. 그러므로 이제 편집함에 있어서 함허해(涵虛解)를 주로 하고 통윤(通潤)의 근석을 보조로 하여 함허해는 원문까지 붙여 번역하고, 근석은 번역문만을 붙여 독자의 편의를 도모한 것이다.
이 경문을 보다가 의심이 나면 함허해를 보고, 함허해를 보아도 의심이 풀리지 않으면 통윤의 근석을 참조하여 함허해와 근석이 필요하지 않을 때, 비로소 경을 보는 사람이며, 이 경문까지도 모두 놓아버릴 때, 저 세 가지의 덕과 하나의 마음이 차이가 없는 도리와 능소(能所)를 모두 잊은 원각의 경지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무명을 끊고서 불성을 나타내는 큰 종지가 아니겠는가.
불기 3008년(1981) 신유 8월 일
오대산인 탄허 삼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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